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멀 사남매맘 Aug 16. 2023

누군가를 위한 미니멀라이프가 아닌..

갑자기 온 손님들과 많아진 책을 통해 다잡은 마음

주말 사남매 독점육아를 담당하고 있다. 독점육아 동지를 만나러 75km를 달려갔다. 작년에 이사를 해서 멀어졌는데 육아동지는 우리 집에 오려면 1박 하러 와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4남매가 차에서 많이 힘들어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먼 거리도 움직일 수 있다. 친구네서 그동안 있던 일들을 나누고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손님들을 데리고 집에 가도 되냐는 전화였다. 한 번도 초대 한 적 없는 이들이고 아침에 대충 정리하고 나와서 흔쾌히는 아니지만 그렇게 하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그동안 비우려고 모아둔 물건들이 현관에 즐비하게 놓아져 있었다. 4남매 데리고 급하게 나오느라 버리지 못한 가득 찬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싱크대에 있는 게 생각났다. 내가 먼저 가서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남편이 손님들보다 30분 먼저 가서 정리를 하겠다고 해서 현관과 음식물 쓰레기 정리를 부탁했다. 옆에서 전화내용을 듣고 있던 친구는 ‘아~ 너무 싫다. ’라고 했다. 갑자기 남편이 누구 데리고 온다고 말하면 싫다고 했다. 솔직히 나도 싫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에 누가 언제 와도 괜찮은 집일 거라는 마음이 들었다.


막상 집에 와보니 설거지해놓았던 그릇들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책장 위에 아이들이 늘어놓은 물건들 등등 내 눈에 정리되어 있지 않은 물건들이 많았다. 부끄러웠다. 1년 넘게 매일 비우고 정리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아직도 누가 갑자기 온다고 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은 집에서 살고 있다니.. ’그래도 예전에 미니멀라이프 실천 시작하기 전보다는 낫지 ‘ 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집의 상태가 나의 마음의 상태를 보여준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 방학이었고, 남편의 2박 3일 출장이 두 번이나 있었고, 코로나에 걸리기도 했던 여름이었다. 4남매를 가정보육하며 잠깐이라도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난장판이 되는 집이라 마음을 놓으면 안 되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집안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정해 놓은 시간에만 집안일을 했다.

오전 10시까지, 오후엔 7시 반까지만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하루를 채워갔다. 집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했을 손님들의 생각까지 생각해 가며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는데 다음 날이 되니 객관적으로 어제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네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을 거르지 않고 했다는 것에 칭찬해 주고 완벽하게 원하는 상태의 정리된 모습이 아니었다고 해서 자책하지 말아야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깨끗한 집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함이 아닌, 나와 가족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면 그걸로 만족해야지..


다음 날 아침, 책이 현관에 많이 쌓여있었다. 누군가 물려주신 걸 받아온 모양이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주신 마음은 참 감사하지만, 이미 책장에 너무 많은 책이 있어서 책을 더 비워내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내 마음을 모르는 아이들은 새로운 책이라며 마냥 즐거워했고 하나씩 닦아 책장에 꽂아두고 읽기 시작했다. 책 가지고 집을 만들고 도서관놀이라며 책에 둘러싸여 놀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미니멀라이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물건의 개수가 극단적으로 적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것들을 관리할 수 있을 만큼 가지고 사는 삶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새로운 책이 많아졌다며 신나 했고 나는 들어온 만큼 있던 책들 비우기를 결심했다. 관리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책장에 들어갈 양만큼만 소유하고 지내길 다짐해 보았다. 자기 전에 책이 많아져 불편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물건들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매일 하고 있는 인증할 것들을 인증하고 운동하며 ’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를 알게 해 준 '멋진롬'님의 책을 유튜브를 통해 다시 들었다. 새롭게 ‘수행’이라는 단어가 꽂혔다. ’ 미니멀라이프 하는 과정이 수행이구나 ‘를 깨달았다. 매일 불필요한 물건들을 비워내며 더 가지려 하지 않기. 꼭 필요한 물건들만 소유하고 가볍게 살아가며 소중한 것들에 집중하는 삶을 연습하는 ‘수행’의 과정이 미니멀라이프인가 보다. 수행의 과정이 고되지만 즐기면서 하고 싶다. 지금 이어가고 있는 모임 ‘정리축제’의 이름처럼. 축제는 즐겨야 제 맛이니..

오늘도 비워내는 수행을 축제처럼 즐기며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전 28화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