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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이 개인 사업하면 망하는 이유

by 경아로운 생각


내가 현직에 있을 때 ‘사업해도 잘할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으면 그렇게 좋을 수기 없었다. 지금 하는 일을 잘함은 물론 나중에 회사를 떠나서도 성공할 거라는 뜻이 담긴 듯했다. 그래서인지 내 가슴속에는 늘 창업의 꿈이 있었다. 일단 하기만 하면 잘할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막상 퇴직하고 보니 딱히 되는 일이 없었다. 이력서를 넣는 족족 거절만 당했다. 몇 개 자격증을 땄지만 제대로 써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퇴직 후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는 어디 가고 현실의 벽 앞에서 괴로워하는 날들이 반복됐다. 결국 나는 마지막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오픈한 지 1년도 안 되어 폭삭 망하고 말았다. 매달 천만 원에 가까운 마이너스 가계부를 보는 일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밤마다 엑셀 시트를 펼쳐 놓고 씨름하다가 새벽을 맞이했다. 심신은 피폐해졌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땐 몰랐다. 내가 왜 사업에 망했는지. 이유는 단 한 가지, 내게는 진작에 버려야 할 한 가지가 있었다.


내가 창업 결심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비전 수립’이었다. 1년 뒤부터 10년 후까지, 시기별로 구체적인 성장 시나리오를 계획했다. 어느 시점에 어떤 부서를 만들고, 몇 년도에 다각화를 할 건지까지도 꼼꼼하게 구상했다. 그때는 허구한 날 컴퓨터 앞에 앉아 문서 작업만 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거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오픈하자마자 하루하루 버티기조차 힘들었다. 손님은 오지 않았고 매출은 극도로 저조했다. 매달 수백만 원 광고비를 쏟아부어도 효과가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돈 쓸 일은 왜 그렇게 많은지, 이전 세입자에게 인수한 에어컨은 사용 연한이 다되어 크게 손 봐야 했고, 낡은 수도꼭지에서는 녹물이 흘러나와 정수 장치를 다시 해야 했다. 한마디로 불안 불안했다. 10년은커녕 1년 뒤에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비전은 무슨, 고객 문의 전화가 없는 날이면 억장이 무너져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업 전 ‘리스크 관리’도 내겐 중요한 사항이었다. 한창 잘 나가는데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우선은 상표권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상호를 특허청에 등록했다. 소음 문제로 이웃과 갈등이 생길까 봐 방음 공사도 마쳤다. 소리가 얼마나 새어 나가는지를 직접 점검하여 벽체와 바닥 마감재를 선정하고 시공했다. 또한 근로계약서도 빼놓지 않았다. 적법하게 작성되었는지 인사팀 출신의 지인에게 확인을 받았다.


하지만 사업하는 내내 위험스러운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가 만든 상호를 따라 쓰지 않았고 시끄럽다고 위아래층에서 쫓아오지도 않았다. 직원들은 일하는 내내 나에게 미안하다고만 했다.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매일 점심을 사다 주고, 1년도 못 채운 상태에서 기준에 맞는 퇴직금까지 챙겨주는 나를 되레 위로했다. 아직도 특허청에서 상호에 관한 권리 유지 안내문을 받으면 씁쓸해진다.


결정적으로 나는 ‘품격’이란 것에 집착했다. 내가 만든 회사의 이미지를 좋게 관리하려 애를 썼다. 대기업 임원 출신이 하는 사업장은 기준 이상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남에 있는 지하철역 도보 3분 위치에 사무실을 구했고 간판의 폰트 하나에도 신경 썼다. 로고 디자인은 전문가에게 맡겼다. 명함도 두꺼운 수입지를 사용하여 누가 봐도 비싸 보이게 제작했다.


그토록 정성을 쏟았건만 정작 사무실에 찾아오는 사람은 한 달 해봐야 열 손가락 안에 들었다. 계단을 오르는 인기척에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지만 대부분은 지나가는 소리일 뿐이었다. 사무실 문이 열릴 때마다 들리는 벨 소리가 어느 날은 전혀 들리지 않은 적도 있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무슨 품격이란 말인가. 품격은 보여줄 대상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었다. 품격이란 단어를 내가 제대로 이해는 했던 걸까 의심스러웠다.


내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사업의 본질이 아니라 스토리에 집착했다. ‘임원 출신이 만들었다’라는 것, 그 문구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웠다. 커리큘럼보다는 내 커리어를, 실력보다는 내 타이틀을 강조한 셈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잠깐 관심을 가졌어도 그 때문에 지갑을 열지는 않았다. 상품의 내용물이 아닌 겉 포장지 값을 받으려는 장사치에게 속아 넘어가는 고객은 없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내가 사업하기 전 벗어던져야 할 것은 ‘임원 마인드’였다. 아니 ‘임원처럼 보이려는 마인드’였다. 그 시절 나는 오늘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미래 비전을 말했고, 이번 달 전기세를 걱정하면서 격식을 차리기 급급했다. 큰 기업처럼 모든 것이 세팅돼야 시작할 수 있다는 분수 모르는 완벽주의는 끝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이후 나는 주변에서 누군가 창업하려고 하면 적극적으로 뜯어말렸다. 특히 기업에서 관리만 해온 임원 출신이라면 더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 일을 잘했다고 해서, 사업도 잘할 거란 기대는 착각이었다. 거기에 회사 밖에서는 전혀 도움 안 되는 임원 특유의 사고방식이 더해지면 실패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걸 나중에 알았다. 그래서 폭삭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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