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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로운 생각 Dec 16. 2023

퇴직 후 자격증, 무엇이 좋을까

자격증에 관한 불편한 진실


‘하나 추가요’ 다이어리에 선을 또 하나 그었다. 새로운 자격증을 딸 때마다 성적표처럼 노트에 기록한 지 1년 만에 총 10개의 줄이 그어졌다.      


직장인 시절 언제부터인가 회사를 곧 떠나게 될 거라는 감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생각은 임원이 되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부장 시절에는 오히려 임금피크제 시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여유 있게 일했는데, 임원으로 승진하자 이제 뒤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임원 2년 차 때, 내가 회사의 중심부서와 거리가 먼 자리로 이동한 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남은 시간이 불과 1년이 되지 않을 거라 여겨져 초조함도 더해갔다. 그제서야 회사를 떠나면 무엇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자격증이었다.     


‘어떤 자격증을 딸까.’ 퇴직 전 자격증 하나쯤은 준비하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는데 대체 무엇을 선택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도통 모르겠어서 자격증이란 단어를 포털에 검색하니 쉽게 취득할 수 있는 기관과 항목이 줄줄이 나왔다. ‘이렇게나 간단하다고?’ 온라인 수강만으로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이 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자격증에 목마른 나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그렇게 몇 주 저녁 약속과 맞바꾼 온라인 민간 자격증이 4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내친김에 오프라인 교육 단체가 발급하는 민간 자격증에 도전했다. 매주 한 번씩 총 열 번, 2시간씩 수업을 들으면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성적에 따라 취업을 연계해 준다는 조건도 맘에 들었다. 수료식 때 받은 자줏빛 융단 표지의 자격증이 거실 벽장에 꽂히는 순간 더 큰 욕심이 생겼다. 왠지 좀 더 난도 있는 시도를 하고 싶었다.         


피부미용사, 그래서 도전한 첫 국가 자격증이다. 다른 과목과는 달리 생활 속에서 많이 접했던 분야라 수월할 것 같았다. 두꺼운 책을 사서 밤낮없이 1차 필기시험부터 준비했는데,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최종 2차 실기 시험은 포기했다. 결정적으로 필기 시험장에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다. 응시생이 많아 몇 개 교실이 넘칠 정도였는데 그중 내 나이는 제일 많은 축에 속했다. 설령 자격증을 딴 들 혈기 왕성한 그 친구들과 경쟁할 자신이 없었다. 이미 실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 실습 후 기진맥진해지는 스스로를 불신하던 차였다. 가속으로 달리던 자격증 운행에 제동이 걸리는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나의 자격증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이거다 싶으면 무조건 달려가 신청부터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지금 내가 가진 자격증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시간도 비용도 아끼지 않았지만 제대로 사용했던 기억은 많지 않다.       


뒤늦게 자격증과 관련하여 내가 깨달은 점이 있다. 자격증은 실력과는 별개였다.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제대로 일하려면 한동안 실습을 거쳐야 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분명 자격증은 땄는데 희한하게 내 머릿속에는 관련한 지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재취업 시, 기업에서 자격증과 관련한 실무 경험을 요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디서든 취업을 위한 취업을 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였다. 당장 피부미용사만 보더라도 오십 줄에 들어선 완전 초보인 나를 채용할 곳은 없을 듯했다. 나이만으로도 이미 나는 낙제점이었다.      


경쟁 또한 치열했다. 언젠가 신문에서 모 자격증의 경우, 국내 오프라인 영업점은 수만 개인데 최근 십 년간 그 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수십만 명에 이른다는 뉴스를 보았다. 장롱 면허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퇴직자가 막상 자격증을 따도 앞길은 막막하다는 주제를 다룬 기사였는데 깊이 공감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의 경쟁은 퇴직 후 자격증의 세계로까지 이어졌다.      


퇴직 후 삶을 위한 자격증, 유용하다. 하지만 앞서 기억할 점은 자격증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따놓기만 하면 탄탄대로가 열리는 마술 보따리가 아니다. 제대로 활용하려면 따기 전보다 취득 후에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어쩌면 몇 배의 노력을 쏟아야 할지도 모른다. 일단 자격증을 따려고 마음먹었다면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도 함께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나처럼 맥락 없이 무턱대고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 착각에 빠져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현실에 안주하게 하기도 한다, 내 실력은 뻔한데 자격증 하나로 마치 내가 엄청난 실력을 갖춘 양 착각하는 순간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내 다이어리에 표시된 점점 희미해져 가는 10여 개의 선이 그 증거이다.       


자격증은 분명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투자한 노력만큼 내게 새로운 씨앗을 물어다 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하다. 단순한 이 원칙이 자격증에도 적용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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