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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로운 생각 May 24. 2024

5월을 이렇게 보내면 무조건 후회합니다

가정의 달을 잘 보내는 방법

  

그날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근무중이었다. 단순 계약직이었지만 퇴직 후 재기를 꿈꾸며 어렵게 결정한 자리였다.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나 업무도 손에 익었고 배우는 점도 있어 당분간은 계속 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에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친정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아빠가..." 당황하셨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셨다. 어렵사리 들어보니 당장 친정아버지를 응급실로 모셔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체없이 119에 전화를 걸어 필요한 조치를 하고는 나도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 도착후 진료를 받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마침 코로나라 대기 환자가 많았고 절차도 까다로웠다. 겨우 침대를 배정받은 뒤에도 의사를 만나기까지 한참이었다. 기다리는 동안에 이미 지친 느낌이었다. 꼼짝없이 누워만 계시는 분의 손발이 되어드리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처음 해보는 병 간호가 서툴기만 했다.           


그런 내가 보기에도 답답했는지 선뜻 도와주려는 이가 있었다. 한 중년남성이 시트를 구하느라 두리번거리는 내게 무얼 찾는지를 먼저 물었다. 친정아버지가 계시는 바로 건너편 환자의 보호자였다. 얼핏 보니 본인의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잖아도 바로 직전에 주무시는 어르신 옆에서 흐느끼는 모습을 본 터라 낯이 익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정이 기가 막혔다. 그분은 몇 년 전 퇴직을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 때문에 도저히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시간 조정이 가능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하였다. 수시로 조퇴하는 사람을 누가 반기겠냐는 것이 적어도 본인이 원하는 바는 아닌 듯 보였다.  

        

그분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셨다. 그때문에 사람들 눈 밖으로 벗어나면 날카로운 도구로 당신의 몸에 상처를 내신다고 했다. 아물만하면 스스로를 해하시는 바람에 잠시도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없다고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 손에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듣는 내내 그간의 애씀이 느껴져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수고를 함께 분담할 다른 가족이 없는지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가장 큰 걱정은 돈이라고 했다. 생활하기만도 빠듯한데 수시로 드나드는 병원비를 감당해 내기가 너무도 힘들다고 말했다. 시설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도 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처음 보는 내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은 듯 했다.          

 

나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 깊이 공감되었다. 일하는 중간에 불려 나와 속이 상했다. 사장에게 일찍 퇴근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거북했고 하다 말고 나온 업무도 염려되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혹시나 발목을 잡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퇴직 후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친정아버지를 돌보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서 회복하시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비단 친정아버지를 위하는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친정아버지의 병환은 점점 나빠지셨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적으로 내가 보살펴드려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혹시 모를 위급한 상황을 대비하여 친정집 근처에서 온종일 머물러야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내 속은 점점 타들어 갔고 나의 시계는 멈춘 듯 했다.    

    

부모 리스크라는 말이 있다. 부모님을 돌봐드리는 일이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하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한때는 이 표현이 대단히 불편했다. 이보다 더 큰 불효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친정아버지 간병을 하고보니 이해가 갔다. 전혀 근거없이 나온 말이 아니며 나야말로 그 부모리스크의 당사자라고 생각했다.      


5월이 되면 내가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이유이다. 더는 뵐 수 없는 친정아버지를 잠시나마 짐처럼 느꼈던 그 시절 나 자신이 몹시도 밉다. 자기의 앞날에 장해를 주는 사람에 대해 리스크라는 말을 써야 한다면 오히려 내가 부모님께 크나큰 리스크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께 비슷한 말이라도 들어본 적이 없다.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하셨는데도 싫은 기색 하나 보지 못했다.   

   

혹여라도 우리네 부모님께서 당신들에 대해 공공연히 이런 표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아실까. 그렇다면 대단히 서운하실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속상함은 감추신 채 나는 괜찮으니 너희들만 잘살라고 하실 수도 있다. 우리의 부모님은 그런 분들이시다.    

 

주말에는 친정엄마를 찾아뵈어야겠다. 혼자 지내시는 엄마가 내게 바라시는 바는 이전처럼 두둑한 용돈은 아닐 것 같다. 이번엔 특별히 더 밝은 표정을 한아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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