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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로운 생각 May 03. 2024

아뿔싸! 내가 백주대낮에 양말까지 벗다니

어느 대기업 임원의 극한 도전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무거웠다. 내리 3일째 매일 2만 걸음을 걷고 있지만 내 몸에 긍정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밤잠을 자는 동안 자주 깼고 깊은 잠도 이루지 못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걷고 나면 천근만근 피로한데 여전히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괜한 일을 하나라는 생각이 잠을 더 못 이루게 만드는 것도 같았다. 며칠이나 걸었다고 과한 기대를 하는 걸까. 잠은커녕 무릎만 뻐근해진 터라 심기가 불편했다.    

 

‘도대체 왜 아직이지?’ 고민하며 자주 가는 뒷산에 올랐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인지 운동화의 무게도 버겁게 느껴졌다. 가벼운 신발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걸어오시는 어르신 한 분이 눈에 띄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것이 한눈에도 연세가 있으셨지만, 보폭의 넓이며 걷는 속도가 확실히 남다르셨다.     


피곤에 절은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질 찰나, 두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앗! 맨발!’ 어르신은 신발을 신지 않으신 상태였다. 성큼성큼 가벼워 보이시기까지 하는 당당한 모습이 그 때문인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로부터 불면증에 맨발 걷기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았다. 순간 저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동안 맨발 걷기에 대한 내 생각은 나이 드신 분들이나 하는 자칫 부상당하기 쉬운 비위생적인 운동이었다.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땅바닥을 맨발로 걷는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행여 다치거나 감염이라도 되면 뒷감당이 더 큰 짐이었다. 아무리 맨발 걷기가 이롭다 해도 위험부담을 안고 싶지는 앓았다.      


‘터벅터벅’ 그런 내가 어느새 벤치로 향하고 있었다. 늘 지나쳤을 뿐 처음 다가가는 자리였다. 깨끗해 보이는 한쪽 면에 앉으니 의외로 편안했다. 그리고 잠시 뒤, ‘스르륵’ 신발에 이어 양말까지  벗기 시작했다. 내 못난 발등이 서서히 드러나려는 찰나,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환한 대낮에 바깥 장소에서 양말을 벗다니 나의 두 발도 하얗게 질린 것 같았다.


첫발을 내딛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깟 맨발 걷기가 뭘 그리 대수라고 그냥 양말을 훌러덩 벗고 냅다 걸으면 될 일인데 주저하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혹시 누가 볼까 봐 쭈뼛거리는 모습도 가관이었다. 주변엔 아무도 없는데 마치 못된 짓을 하다 들킨 것마냥 심장마저 콩닥거렸다.    

      

‘와~’ 나는 아직도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어렵게 발바닥을 땅에 대는 순간, 기분 좋게 느껴지는 찬 느낌이 정말로 새로웠다. 평소 발이 시려 맨발로는 거실 바닥도 밟지 못했는데, 이상하게도 땅바닥은 차갑지만 전혀 불편하지가 않았다. 이후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흙의 감촉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맨발 걷기는 전에 맛보지 못했던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한참을 걷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맨발 걷기를 무턱대고 터부시 했을까.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으면서 왜 나란 사람은 못 할 짓이라고 선을 그었을까.     


어쩌면 사는 동안 내가 이렇듯 지레 밀어낸 일들이 많았을 듯했다. 그를 통해 먼 길을 돌아왔을 테고 여러 사람과도 소원해졌을 터였다. 무엇보다 새로운 일을 시도조차 못했던 상황도 있을 것 같다. 만약 살면서 무엇인가가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적어도 도전의 대상 자체가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이제 나는 맨발 걷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벌써 10일째, 하루 이만 보를 걷다가 여건이 되면 자연스레 양말을 벗는다. 더는 내 모습이 부끄럽지도 남들 눈이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모든 원인은 내 안에 있었다.      

   



#매주 금요일 발행됩니다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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