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기업 임원의 극한도전
몇 달 동안 극심한 두통과 피로로 견딜 수가 없었다.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미루다 병원을 찾으니 의사가 불면증이 원인이라 말했다. 그러며 우선은 두 종류의 약을 권했다. 호르몬 약과 수면제, 처방전을 받아 들고 나오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문득 친정아버지가 생각났다. 젊은 시절부터 술 없이 못 사셨던 친정아버지는 연세가 드셔서는 수면제 중독에까지 빠지셨다. 간혹은 정량 이상의 수면제를 드셔서 받아온 수면제가 모자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친정엄마는 여기저기 약을 구하러 다니셨다.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불편한 몸을 이끌고 문밖을 나서셨던 엄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수면제가 지긋지긋하다. 아니, 중독이 너무나도 두렵다. 대상이 무엇이든 한번 길들여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한때 올곧은 선생님이셨던 친정아버지조차도 알코올과 수면제로 인해 말년이 대단히 처참하셨다. 그런 내가 수면제 처방을 받다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제일 약한 단계예요. 위에 백 단계가 더 있으니 걱정 마세요” 약사가 수면제를 내어주며 내게 말했다. 무엇을 걱정하지 말라는 걸까. 적어도 꼭 필요할 때만 약을 먹으라는 말 같지는 않았다. 일단 약하게 시작해 보고 잘 듣지 않으면 더 센 용량으로 바꾸는 게 좋다는 말 같았다. 알겠다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퇴직 후 새길을 찾아 나선 뒤로 내 앞에는 줄곧 산들이 있었다.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나타났고, 높이도 다양했다. 잠시 평탄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새로운 산이 시작되는 낮은 지대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란 장애물과 마주한 기분이다. 생각해 보니 올해 들어서 제대로 한 일이 별로 없다. 계획은 잔뜩 세웠어도 한 달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돌아보면 시작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일도 일이지만, 아직 살 날이 많은데 조용히 나락을 향해 가고 있음을 스스로가 느낀다. 어쩌면 지금이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인생의 분수령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 이만 보 걷기. 조금은 과하지만 내 몸이 백기를 들게 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 일단은 백일을 채워보려 한다. 세상 어떤 적수보다 막강한 적, 이만 보 걷기는 나와의 새로운 싸움이 될 듯하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해 스스로에게 주는 답이다.
나는 또다시 높디높은 벽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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