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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n 11. 2024

1화. 난폭운전

퇴근이다. 운전석에 앉는다. 

시동을 켠다. 그리고 머리칼을 바짝 모아 머리끈으로 다시 묶는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주차장에서 급히 후진을 한다.


학교 정문을 통과하며 안도한다. 아 오늘도 살아서 나가는구나. 

좌회전 깜빡이를 켜는 둥 마는 둥 하고 무리한 좌회전을 감내한다. 

무언가가 울컥하다. 마구마구 엑셀레이터를 밟고 싶다. 앞에서 정속도로 느긋히 가는 차량이 왠지 얄밉다.

이유도 모르겠다. 

충돌을 모면할 만큼의 틈새만 남기고 앞질러간다. 못됐다 참.


시속 50킬로미터 카메라 앞을, 보란 듯이 59킬로미터 시속으로 통과한다. 엔진에서 부에엥 소리가 난다. 

분명하다. 이건 자학이다.

알면서도 엎치락뒤치락 곡예운전을 한다. 그렇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렇다고 울컥한 마음이 잔잔해질까?

답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지하 주차장에서 가만히 시동을 끄고 생각에 잠긴다.

며칠째 가라앉지 않는 오른쪽 허벅지의 두드러기에 대해서,

오늘 끝마쳤으나, 내일 또다시 샘솟을 투두리스트에 대해서, 

자동차가 아닌 내가 달려온 듯한 내 심장박동수에 대해서,

20분간 지속된 도로 위의 무모한 '짓'이 얼마나 한심 했는지에 대해서,


한숨을 쉬고 차에서 내린다.

조수석의 노트북을 두고 내려서 열 발자국 갔다 돌아와 다시 차문을 열었다 닫았다.


집에 도착했는데도 난폭운전은 멈출 줄을 모른다. 남편의 전자 담배 냄새가 유난히 메스껍다.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저녁 먹기를 포기한다. 반려견이 엎어놓은 작은 쓰레기통을 보고 있노라니, 꼭 내 처지 같다. 아내역할을 운운하며 나의 행태에 한숨을 내쉬는 최측근이 꼴도 보기 싫다. 어제 벗어놓은 작은아이의 양말은 꼭 이럴 때 눈에 띈다. 물 좀 떠달라는 아이의 말에 "하. 루. 종. 일 서비스업을 해야겠냐"라고 쌀쌀맞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는다. 


그렇게 사랑했던 것들이 조금씩 나에게 멀어져 간다.


아, 뮤즈가 없이도 글이 써지는구나, 마른세수를 하다 감은 눈을 파르르 떨었다. 

조금 울고 싶었다. 

이번주에 넘어야 할 산들이 아직 몇 고비가 더 있는데, 벌써 울고 싶어 졌다.

데스크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내 무릎팍의 냄새를 맡았다. 


그래, 난 지금 네가 필요해.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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