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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n 13. 2024

2화. 어차피 인생은 나도 처음이야


나 오늘 꼭 할 말이 있어.


#1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파. 사실 외면해 왔어. 내 사회적 역할에 '간병인'까지 끼워 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래놓고 붙는다는 수식어가 '사랑하는'이라니, 참 이기적이지. 그렇다면 사랑하는 이라는 수식어를 빼야 하나? '누군가가 아파'로 말이야. 그러기엔 너를 사랑하는데.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후회하게 될 것 같아. 나의 회피형 사랑에 대해 말이지. 더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어. 내가 좀 더 다가가야 했어. 자로 이리저리 재지 말고, 내 감정의 손익을 따지지 말고 솔직해야 했어. 

사실 나도 '너에게 기대고 싶어'라는 말보다 '나에게 얼마든지 기대도 돼'라는 말을 듣고 싶었어. 내 내면의 아이는 아직 다 성장하지 못했거든. 순전히 외관만 어른이야. 게다가 내 인생도 나는 처음 살아보는 거고.


처음 살아보는 인생에서 잠깐 너에게 기대 볼까 생각했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더라. 따뜻한 어깨대신 목발을 던져주었어. 난 오늘도 내일도 그 목발을 버팀목 삼아 너를 사랑해야 할지도 몰라. 

처음 사는 인생에 억울하지는 않냐고?

억울하지. 그래도 어쩌겠어. 난 어깨대신 목발이 있고. 너는 나의 사랑이 필요한걸.


#2

일상을 이벤트로 채우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인데도, 그게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 내 일상이 이벤트라면 누군가의 일상은 비애로 채워질 수 있거든. 그걸 알면서도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나는 "어차피 인생은 나도 처음이야"라는 말을 핑계삼을 수 있을까? 나도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니, 내 인생이 조금 이벤트가 되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씩 웃으면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니지. 너의 인생도 처음일 테니.

엄마로 사는 나도, 네가 사랑하는 나도, 교사로서의 나도, 내 인생은 처음 살아보지만, 그걸 핑계 삼을 수 없는 거야. 한 번쯤은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표현하고, 사랑하고, 떼를 쓰고, 게을러지고, 제멋대로 이고 싶은데, 너의 인생도 처음 사는 인생일 테니 난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야. 


그래서 난 이렇게 살고 있어.

110%의 내가 아닌 80%의 '나'로 출력을 유지하면서. 


"아주 잠깐이라도 나에게 기대어줄래, 네 모든 것을 벗어놓고 말이야"

영화 같은 대사를 들어보기를 기대하는 것보단

내가 너에게 말해줘야겠지


내 인생뿐만 아니라 너의 인생도 어차피 오늘이 처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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