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팍 종이 위의 글씨를
지우개로 지우다 지우다
글자는 없어진 지 오래인데
종이까지 지우는 나는,
지우개 똥인지 종이의 살점인지
파악도 못하는 나는
그 말이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길 바랐다
글씨를 지우다 종이를 지우다
허벅지까지 벅벅 지워도
아프지 않았다
지워진다면, 사라진다면.
뒤늦게 알았다
그것은 집착, 회한, 갈증, 내 자신에 대한 부재, 공동의
또 다른 명사라는 것을
나르시시즘에 근거하는 자기 갈망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無形의 어리석은 울렁임을 최초로 명명한
어리석은 당신 또한
나에겐 無形이다
종이의 살점처럼, 지우개의 파편처럼
콧바람에 사라질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