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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Nov 08. 2024

들숨의 습도


너의 여름은 어땠니? 

나의 여름은 축축하고 무거웠다. 수많은 고치 속에서 숨을 쉬었지. 습한 공기 속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란 쉽지 않았다. 

적절하지 않은 습도는 꼭 내 처지 같았어. 오고 가는 들숨과 날숨에는 산소보다는 수증기가 많았지.

마치 다른 이들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삶을 맞춰가는 내 인생길의 잡음같이.    

 

여름이란 그런 것이다. 때로는 산소보다 수증기가 많은 것. 숨쉬기는 불편하지만 이론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북태평양 고기압이 몰고 오는 수증기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름 내내 우리를 둘러싼다. 

모든 사람들은 생각하지. 여름이란 무더운 것이라고. 

나는 그저 하루 이틀의 선선한 공기를 바랐던 것뿐인데 곧 이단아가 되었고.     


북태평양 고기압은 결코 하루 이틀의 건조한 날씨를 가져다 줄 수 없다. 

알고 있지만 희망할 뿐. 알고 있지만 꿈을 꿀 뿐. 내가 희망하면 희망할수록, 꿈의 곁에 다가가려고 애쓸수록 고기압은 점점 키가 커졌다. 육중한 거인같이 나의 한반도를 먹어버렸고.     


그래서, 너의 여름은 어땠니? 때때로 가을바람이 지나간 적은 있니? 

여름인 줄 깜박한 그 거대한 고기압이 잠시 눈을 붙일 때, 너는 그 틈새로 가을을 만났겠지.


내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 계절을 말이다.     

 

내 손등의 멍처럼 파란 하늘이 보인다면, 그곳에서 숨을 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전해듣고 싶다. 너에게. 

나의 폐가 날개 같은 공기에 적응하는데 두어 시간 쯤 걸리겠지만, 개의치 않을 것이다.

건조한 공기를 폐 속에 가득 채워 조금 더 가벼워질 것이다. 

입 밖으로 나오는 뿌연 수증기 대신 새파란 휘파람을 내뱉을 것이다. 

     

의 오지 않는 당신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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