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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이슬 Dec 21. 2023

도서 판권의 수입과 수출

에이전시 레터와 환율

기획편집자가 매일 해야 하는 업무 중 '에이전시 레터' 검토라는 게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에이전시사에서 보내주는 메일인데, 간단하게 말하면 해외 도서 소개 자료입니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런던, 볼로냐 도서전 등 국제적인 행사가 있는 달에는 도서전 기간뿐만 아니라 전후에도 메일함이 터져 나갈 정도로 수없이 많은 레터가 들어오는데요.

정말 많으면 하루에 50통 내외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에이전시 레터 예시



국내 도서 에이전시만 해도 수십 곳에 이르고, 에이전시마다 취급하는 나라, 분야가 다르고

중요하게 보는 도서들이 다르기 때문에 소개 자료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어떤 에이전시에서는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반려동물 카툰 에세이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다른 에이전시에서는 인도에서 입소문이 난 장르 문학을 다루는 식이죠.

해당 국가의 베스트셀러 상위권 도서들을 추려 간략하게 소개하기도 하고,

베스트셀러 한 권을 보다 상세하게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만약 에이전시 레터가 50통이라면, 그 안에 소개된 도서는 못해도 500권은 됩니다.


독자들이 국내 서점에서 만나보는 외서의 90%는 이 에이전시 레터의 소개로부터 시작되는데요.

나머지 10%는 눈 밝은 편집자가 아마존 등 해외 도서 사이트를 직접 찾아보고 컨택하기도 하고,

독자들이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 너무 재밌는데 왜 국내엔 출간이 안 되는 거예요!!! 내주세요!!' 하기도,

외부 기획자나 번역가 등이 직접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외서를 출판사에 소개해 주시기도 하죠.


그러니까 기획편집자는, 매일 국내 작가들의 투고 메일을 살펴보고, 에어전시 레터들을 읽고,

아마존 등 주요 해외 도서 사이트를 살펴본 후에야 그날의 업무가 시작되는 겁니다.



에이전시 레터 소개 자료 중, 마음에 드는 도서가 있으면 해당 도서를 소개한 에이전시사에 검토 자료를 요청하는데요.

그러면 에이전시사에서는 해당 도서의 본문, 표지, 언론 기사 등을 추려서 보내주는데, 당연히 외국어입니다.

대부분 일본어나 영어지만 프랑스어, 인도어, 중국어 등으로 된 자료도 분명 있습니다.

(얼마 전에 중문으로 된 원고를 검토하다가 죽을 뻔했습니다...)

해외 도서를 주로 취급하는 출판사에서 '외국어 능력'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번역은 번역가분들께 맡기지만, 원문과 번역된 원고를 대조해서 봐야 하고

출간 여부를 결정하기 전 원서와 소개자료 등을 보고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그렇다고 영어만 읽을 줄 아는 편집자가 일본어로 된 도서를 검토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파파* 만세)

번역기를 열심히 돌려보거나, 해당 언어에 능통하신 분께 소정의 검토비를 드리고 도서 요약을 부탁하기도 하기 때문이죠.


물론 요새 번역기는 이렇지 않습니다...




반대의 케이스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 출판사에서 출간된 도서 중, 해외에서도 반응이 있을 만한 책들을 추려 국내 에이전시에 소개하는데요.

(이 소개 자료는 한글이 될 수도, 영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팀이 따로 있는 큰 출판사라면 알아서 잘 번역해서 소개해 주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번역기나 외국어 능력자분의 힘을...)

그러면 이 소개 자료를 에이전시사에서 해당 국가의 언어로 바꿔 해외 출판사들에게 소개합니다.

특히 요새는 K-드라마의 반응이 좋아서, 넷플릭스 등에서 상위권에 든 도서의 판권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갑니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했지만, 국내에서도 수만 권이 팔린 <파친코>처럼요.


※ 저작권팀이 없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도, 경쟁력이 있어 보이면 외국어 소개자료를 에이전시사에서 열심히 준비해서 소개해 주기도 합니다. 보다 상세한 번역이 필요하다면 '독점 중계권'을 요구하기도 하는데요.(에이전시에서도 번역에 추가 비용과 인력이 들어가는데, 기껏 열심히 소개했더니만 타 에이전시를 통해 오퍼가 들어가 버리면 여러모로 손해이므로) 이는 하나의 에이전시에 해당 도서를 독점으로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게 바로 환율입니다.


12/20 기준 환율. 다시 1,300원 밑으로 내려갔네요.


어제 기준 환율은 1,299원입니다.

수입이든 수출이든, 도서 판권 비용은 90%? 정도는 달러를 기준으로 거래됩니다.

(만약 옆나라 일본이라면 엔화가 기준이 되겠죠?)

가장 믿을 만하고, 해외 어디서나 통용되는 화폐기 때문인데요.

도서 판권은 수출이든 수입이든 보통 3,000$에서 시작해, 3만 달러가 되기도, 10만 달러가 되기도 합니다.


비교하기 편하게 1만 달러를 기준으로 한다면,

환율이 1,299원일 때 1만 달러에 판권을 수입하고자 하면 원화로 1,299만 원이 됩니다.

2015년, 미 증시가 급락했을 때는 환율이 1,100원 전후였는데 이때 기준이라면 1,100만 원이죠.

원화로 200만 원 정도의 차이가 나네요.

당연히 1만 달러가 아니라 그 이상의 비용이 든다면 차이는 더 커집니다.


때문에 만약 달러가 1,300~1,400원대라면, 출판사에서 외서 검토를 더욱더 깐깐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엔화가 800원대라면, 상대적으로 일본서 검토 및 기획은 좀 더 널널해지겠죠.

반대로 국내 도서의 (서양권) 수출은 보다 적극적이 됩니다.

예전이라면 1,100만 원에 팔렸을 책을 지금은 1,300~1,400만 원대에 팔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외서를 기획할 때는 환율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죠.


특히 인기 있는 외서 판권은(드라마화가 확정됐다거나, 한국계 외국인 작가가 썼다거나, 넷플릭스에서 상영이 된다거나 하는) 비딩(bidding)이 붙습니다. 문제는 입찰가가 비공개라는 거죠.

각 출판사마다 에이전시사에 최종 비딩 가격을 달러로 제시하는데,

A 출판사에서 5천 달러를 제시하고 B에서는 7천, C에서는 1만이라면 C사에 최종 낙찰되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최종 입찰가는 에이전시만 알고 있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손익분기점을 따져가며 눈치 게임을 해야 합니다.(최종 입찰가라도 알려달라!!! 얼마 전에 1만 달러를 제시했다가 비딩에서 실패한 책이 한 권 있는데, 대체 어디서 출간되나 내가 지켜본다...)


물론 이 판권의 가격은, 그냥 주는 돈이 아니라 선인세입니다.

국내서와 마찬가지로 인세를 미리 지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계산하고 이 책이 국내에서 얼마나 팔릴 수 있을지 가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1만 부 팔릴 거라고 예상하고 선인세로 1만 달러를 줬는데, 500부도 안 나갔다면...

해당 외서를 기획한 편집자의 입장은......(명복을 빕니다)


반대로 편집자가 기획한 국내서의 판권이 미국에도 팔리고, 일본에도 팔리고, 중국에도 팔린다면

기획자와 편집자도 좋고, 출판사도 행복하고, 작가님은 더더더 행복한 Win-Win-Win이 되겠죠.

책이 잘 팔린다면 인세가 추가로 발생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판권의 수출만으로도 수천~수만 달러의 선인세가 발생하므로 아무튼 좋습니다.


아무튼.

수학도 극혐, 경제도 극혐, 외국어도 극혐이었던 뼛속까지 문과였던 사람이지만,,,

출판계에 발을 들였을 때는 책이랑 한국어만 보면 될 줄 알았지만,,,


출판계에 오면... BEP 계산하려면 엑셀도, 수학과도 친해져야 하고, 환율도 주시해야 하고, 외국어도 영 까막눈이면 안 되고... 정규교육과정에서 왜 경제경영 기초와 외국어, 수학, 과학, 국어가 골고루 있는지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경제서 편집자나, 과학서 편집자라면 더더욱!)


돔황챠,,,!




이 글을 쓰면서 먹은 안주.

(저번 주에 소소한 퀴즈를 냈었는데 아무도 못 맞추셨습니다... 동해 쪽에서 도치 혹은 심퉁이라 불리는 생선이었답니다.)


다음 글은 성탄 이후겠네요.

다들 따뜻한 연말, 행복한 성탄절 보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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