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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이슬 Dec 14. 2023

팔릴 책 vs 만들고 싶은 책

중도 유지하기

한 해가 또 끝나갑니다.

인사고과 한 해 동안 기획한 책들의 성적표가 곧 나온다는 의미죠.

그와 별개로 내년 상반기 일정을 슬슬 확정하고, 하반기에 들어올 예정인 원고들의 진행은 이상 없는지,

원고 청탁을 했던 묵묵부답인 작가님들은 소식이 좀 있는지,

기획안을 보고 OK 했던 작가님들은 계약서를 보내왔는지,

내년 하반기 이후에 출간할 새로운 기획거리는 뭐가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를 체크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계약서까지 썼다고 해도, 언제 어느 원고가 펑크 날지 모르기 때문에

1년 치 메인 기획뿐 아니라 서브, 서브의 서브까지 미리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기 때문인데요.




연말연시면 새삼 화두가 되는 게 '팔릴 책 vs 만들고 싶은 책'인 것 같아요.

기획편집자들은 한 해 동안의 성적을 판매 부수와 손익표라는, 숫자로 된 성적표를 통해 아주아주 객관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죠.


사실 팔릴 책과 만들고 싶은 책 사이에서 고민하는 건 모든 출판노동자들의 연중 고민거리입니다.

새삼 연말연시에 더 화제가 되는 건,

연말에는 이 두 가지 사이의 균형을 잘 잡은 사람이 성과를 냈을 테니 주목받았을 터고,

연시에는 이 두 가지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서 출간계획을 세워야 하나 고민하기 때문이겠죠.


사실 출판노동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선 의견이 꽤 달라서,

책도 결국 상품이라며, 외모지상주의에 빗대어 신랄한 견해를 펼치는 사람도 있고,

작고 소중한 곳으로 이직해서 맘 편히 지내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둘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어느 견해를 가지고 있든, (본인이 돈 많은 출판사 대표가 아니라면)

도서의 상품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출판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1년간 6권의 책을 기획하고 출간했는데 단 한 권도 BEP를 넘기지 못한 편집자가 있다면,

아마 해고될 가능성이 크겠죠.

포트폴리오에 넣을 도서도 마땅치 않을 테니 이직도 쉽지 않을 거고요.

행여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해도, 기획과 편집 재량 폭이 확 줄어들 것은 명약관화입니다.




여기 세 사람의 기획편집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1) 4권의 책을 기획해서 모두 BEP를 넘긴 편집자 A.

2) 4권의 책을 기획해서 2번은 BEP를 넘기고, 2번은 그렇지 못했던 편집자 B.

3) 4권의 책을 기획서 모두 BEP 근처에도 가지 못한 편집자 C.


만약 같은 주제로 세 명의 편집자가 기획안을 올린다고 했을 때,

A의 기획안은, 기획서 안에 욕만 써놓지 않았다면 아주 무난하게 통과될 겁니다.

B의 기획안은 자기 하기 나름이겠죠. 글빨이든 말발이든 그 아이템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른.

C의 기획안은, 엄청난 말발과 글빨로 아이템을 설득력 있게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손 쳐도, 아마 통과되기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경쟁력 있는 소재에 보장된 작가가 아니라면요.

설령 어찌어찌 통과가 되었다고 해도, 편집 과정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참견들을 모두 쳐내긴 버겁겠죠.



그래서 출판인들은 항상 고민합니다.

매번 인플루언서에 연예인만 섭외해서 비용 왕창 들여가며 팔릴 책만 만들다 보면 재미가 없고,

(물론 그 전에 컨펌받기도 어렵지만요...)

그렇다고 개인 취향에만 맞춘 내고 싶은 책이나, 소수자의 인권과 같은 꼭 내야 하고 만들고 싶은 책만 기획하자니 결재도 안 나고 목숨도 간당간당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건 극단적인 케이스고, 당연히 좋은 책이고 내고 싶은 책이면서

상품성까지 갖춘 도서들도 많습니다. 그런 책들이 대개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죠.

하지만 매번 베스트셀러를 기획하고 만들어 낼 순 없기에 고민이 깊어지는 건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기획할 때 팔릴 책과 만들고 싶은 책을 번갈아 가면서 기획안을 올리거나 둘을 적당히 섞습니다.


전에 꽤 많은 쇄를 찍은, 같이 작업했던 작가님의 차기작 하나.

술꾼 알코올 에세이 하나.

몇 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무슨 유명한 문학상을 타고 모 신문 베스트셀러인 외서 하나.

술꾼 안주 에세이 하나.

대충 이런 식이죠.


꼭 내고 싶지만, 누가 봐도 상품성에는 의문을 표할 주제라면 적당히 섞든가, 포장을 잘해야 합니다.

가령 시설퇴소아동을 소재로 에세이를 기획한다면, '우리는 모두 친구'라고 외치는

포*몬과 콜라보해서 상품성과 노출 가능성을 좀 더 끌어올린다든지 하는 식이죠.


사실 기획을 하다 보면 소재 찾기나 작가님 섭외보다는

이 기획을 잘 포장해서 내부 결재권자들을 설득하는 게 더 어려울 때도 많답니다.


아무튼 뭐...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답이 없다! 정도가 되겠네요. :)



어쩐지 급 마무리인 것 같지만,

주말부터 날씨가 급 추워진다니 다들 건강 조심하셔요!




이 글을 쓰면서 먹은 안주.

(좌측은 아귀포, 우측은 생선을 살짝 데친 건데, 무슨 생선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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