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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이슬 Dec 07. 2023

기획편집자의 일

사이클이 반복되지만, 매번 새로운


지난번엔, 출판사 입사와 기획편집자에 대해 간략하게 썼는데요.

그렇다면 (기획)편집자가 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게 될까요?



*주의! 아래는 제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출판사마다, 편집자 개개인마다 프로세스와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매우매우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어? 저 편집자는 저렇던데 이 편집자는 왜 이러지?라고 생각하시면 매우매우 곤란합니다.




책 한 권이 출간되는 과정을 쉽게 이야기하고자, 경력 편집자 한 명이 이직 후 첫 출근을 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여기서 경력이란 최소 2~3권 이상의 도서를 기획&편집해 본 것을 의미합니다. 신입이거나 이런 경력이 없다면, 사수 밑에서 기획과 편집을 먼저 배우고 난 뒤에 오롯이 책 한 권을 맡게 됩니다).


1. 기획을 해야 합니다.

경력자가 새로운 곳으로 출근을 시작하면, 전임자가 미처 끝내지 못한 원고 몇 개를 인수인계받습니다.

(신입이라면, 이런 원고를 맡되 사수 한 명이 붙거나 혹은 사수가 편집하던 원고를 함께 보며 실무를 익혀나갑니다)

당연히 1년 치 출간계획으론 턱도 없는 양입니다. 이 원고 몇 개를 이어서 편집하면서 자기만의 기획 건수를 늘려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출판사에 가면, 오롯이 내 책임의 원고가 출간되는 데는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획을 한다고 바로 계약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계약한다고 바로 원고가 들어오고, 출간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저는 기획을 '덕질'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가 실제 기획편집했던 책들을 예로 들자면, 제가 한창 덕질하던 모 연예인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SNS들도 구독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간혹 올리는 장문의 글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에세이 출간을 제안했고, 다행히 그분도 흔쾌히 오케이 하셔서 책이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한창 식물에 빠져있을 때엔 식물 에세이를 만들었고, 동물권에 관심이 있을 때는 동물권 에세이, 환경 문제에 마음이 갈 때는 환경 에세이를 기획하고 편집했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기획하고 만들어 내리라 굳게 다짐하고 있는 건 당연히 알코올 에세이지요!

(전 꽤 여러 출판사를 거친 터라, 예로 든 에세이들은 다 다른 곳에서 기획편집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절 찾아보려 해도 불가능하단 뜻이죠. 후후.)


대부분의 기획은 이렇게 '덕질'로 시작됩니다.

투고 원고 검토나 외서 검토도 사실 큰 범주에선 마찬가지입니다. 비건에 관심이 있다면, 비건 관련 투고 원고나 외서를 주의 깊게 보겠지만 관심이 아예 없는 편집자라면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그 원고를 다룰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편집자의 삶, 취미, 전공, 관심사 중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편집자는 원고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페스코와 락토, 플렉시테리안을 저자가 잘못 서술해 놓아도 편집자가 잡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진행한다면 편집자도, 작가도 모두에게 힘든 작업이 되겠죠.

전 사실 그래서 투고도 운칠기삼이라고 자주 이야기하곤 합니다. 내 글을 이해할 수 있고, 관심 있어 하는 편집자가 마침 내가 투고한 출판사에 근무 중일 그 작은 확률. 그러니 100곳의 출판사에 쭉 기계적으로 투고하기보다는, 내 글과 맞는 이야기를 꾸준히 출판한 출판사 5곳에 투고하는 게 확률이 훨씬 높겠지요.


2. 기획안을 써서 설득해야 합니다.

다시 기획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위에 예로 들었던 연예인, 식물, 동물권, 환경 중 가장 판매량이 저조할 것 같은 에세이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연예인을 선택하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 같고, 식물과 동물 그리고 환경 중 의견이 나뉘겠지요.

식물 에세이는 코로나 시기엔 엄청 잘 나갔지만, 사실 요샌 잘 팔리지 않습니다.

동물과 환경? 그걸로 BEP나 넘길 수 있겠어?라고 편집장이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이 책을 왜 기획했고, 왜 만들어야 하고, 왜 팔릴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재권자들을 설득해 나가는 일이 바로 기획 단계에 이뤄집니다. 바로 기획안을 통해서 말이죠.

출판사 내부용 기획안은 굉장히 상세한 편입니다.

기획의도, 타깃층, 러프한 가제와 목차, 예상 판매 부수, 어떤 판형에 어떤 인쇄를 할 것인지와 그에 따른 BEP 계산 등등. 이런 것들로 내부 마케터와 편집장, 임원들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내부에선 ok가 났습니다. 그럼 내부용 기획안을 바탕으로, 작가님께 제안할 외부용 기획서를 다시 만듭니다. 우린 이런이런 소재를 찾고 있었고, 선생님의 오랜 팬이고, 이런 제목의 이런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를 만들고 싶다고 러프하게 말이죠. 예상 BEP나 판매 부수, 판형 등은 내부용이므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계약이 된 후라면 모를까요.

기획안으로 내부 인원과 작가님을 모두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 출간 미팅을 하고 계약서를 써야겠죠. :)


3. 출간 미팅을 하러 갑니다.

편집장님과 임원도 ok, 작가도 ok 했으면 바로 계약서를 쓰면 되지 않느냐?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만나보고 이야기해 봤는데, 막상 작가님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시거나 서로 출간 일정이 맞지 않거나, 생각한 조건이 다르면 계약은 진행되지 않습니다. 다행히 이야기도 잘 통하고, 집필에 대한 의지도 있으시다면 무난히 계약이 진행되는 편입니다. 사전에 메일과 유선 등으로 출간 ok를 받은 후, 미팅을 진행하는 단계에서 엎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합니다.


4. 계약서에 도장을 찍습니다. 작가님과 편집자가 서로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미팅을 무사히 끝냈습니다. 계약서를 보내드리고, 날인이 완료되면 계약금을 송부해 드립니다.

이 계약서엔 출판기한과 원고인도일이 명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사실 잘 지켜지지 않으니 그냥 적당히 잡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어기시면 곤란합니다...

아무튼. 작가님이 원고 집필을 시작합니다. 편집자는 처음 함께 논의한 주제와 소재에 맞게 적당히 집필 방향이나 목차 등을 잡아드립니다.

편집자는 작가님 글 언제 쓰세요 또 술 드시는 건 아니죠?, 가끔 독촉도 해보고 이런 방향은 어떨까요, 아이디어도 드리고, 저번에 보내주신 꼭지 글 진짜 우주최고짱이었어요 이대로만 써주세요, 응원을 해드리기도 합니다.

작가님은 열심히 글을 써주시기도 하고, 자주 일이 생기셨다며 차일피일 미루시기도 하고, 글이 안 써져요 나는 쓰레기야ㅠㅠ 하소연하시기도 하고 이건 뭐 워낙 다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편집자와 작가님의 케미가 어느 정도 맞아야 한다는 점인 것 같아요. 이건 계약 전 메일이나 통화, 미팅 때 어느 정도 서로 파악이 되었겠죠. :)


5. 원고가 들어왔습니다! 편집을 시작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6개월 만에 초고가 들어왔습니다. 내부에 알리고 담당 디자이너와 마케터가 배정됩니다.

편집자는 1교를 시작합니다. 교정 교열, 윤문, 방향 수정, 원고 재배치 등등은 이때 이뤄집니다.

교정 교열 작업에 대해서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사가 하나 있는데, 참고해서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1등 출판사의 '숨은 主役',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3/26/2015032604166.html


'새 책을 낼 때 보통 3~4번 원고를 읽으며 오류를 잡아내는데 최종 교정 교열이 B선생의 몫이다. 단지 오탈자만 잡아내는 단순 작업으로 오해 마시길. 여기서 핵심은 팩트 체킹(사실 확인)이다. '임진왜란 때 백성은 감자를 삶아 먹으며 굶주림을 견뎠다'는 문장이 있다고 가정하자. 감자는 1820년대에 조선에 들어왔으므로 이 문장은 거짓임을 밝힐 수 있어야 진정한 교정 교열이다.'


여기서 3~4번 읽으며 오류를 잡아내는 과정을 보통 편집, 혹은 1교, 2교, 3교라고 지칭합니다. PC교, 재교, 삼교나 뭐 기타 등등 출판사마다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른데, 뜻하는 바는 같으니 중요하지 않고요.

이 과정 속에서 오류를 잡아내고, 오탈자를 잡아내고, 만약 초고의 완성도가 기대 이하라면 재작업을 요청드리기도 합니다. 단, 기사와 마찬가지로 가장 마지막 확인은 담당이 아닌 다른 편집자가 합니다. 이를 크로스교, 혹은 크로스체킹이라고 하는데 이미 원고를 3~4번 읽으며 눈에 익어버리면 잡아내야 할 것도 잡지 못하고 여상히 넘기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당연히 저도 다른 편집자 원고의 크로스교에 시간을 어느 정도 할애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류가 엄청나게 나왔다? 명복을 빕니다...


6. 표제, 부제 및 표지 디자인 잡기

1교, 2교, 3교를 작가님께 보내드리면 회신까지 적게는 며칠, 몇 주가 소요됩니다. 그사이 편집자는 초고를 보며 어울릴 만한 표제와 부제를 정리합니다. 전 4~5개 정도 뽑는 편입니다.

작가님께도 보여드리고, 편집회의에 안건으로 올려 제일 괜찮은 제목 한둘을 남깁니다. 임원에게 결재를 올려 최종 확정합니다. 이후 담당 디자이너에게 알리고, 참고할 만한 표지 레퍼런스와 디자인 요소 등에 대한 의견을 전달합니다. 어디까지나 '의견'이기에 디자이너가 반영을 할 수도, 쓸데없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아무렴 어떻습니까. 디자이너는 사랑입니다.)

표지 시안도 보통 3~4개가 나옵니다. 여기서 또 작가님 및 내부 상의 후 괜찮은 디자인 한둘을 더 살려봅니다. 물론 고를 게 없다면 다시 작업해야겠지요. 필요하다면 외부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의뢰하기도 하고요.

앞표지가 정해지면, 책등과 책날개, 뒤표지도 그에 맞는 디자인을 논의하고, 그 안에 들어갈 텍스트들(뒤표지 책 소개글이나 작가 소개글, 추천사 등등)도 확정해야 합니다. 이쯤이면, 보통 원고 편집 작업은 완전히 끝나 있어야 합니다. 이때, 내지 디자인과 목차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디자이너에게 의뢰합니다.

표지를 먼저 하는 곳도 있고 내지를 먼저 하는 곳도 있고, 그건 출판사마다 조금씩 달라요.


7. 마케팅 회의를 합니다.

편집이 끝나고 디자인 윤곽이 나왔다면 출간일도 어느 정도 정해졌을 겁니다. 최소 3주 전에는 마케팅 회의를 잡아서 진행해야 합니다. 사전 연재를 할 건지, 서평단을 모집할 건지, 굿즈를 만들 건지 등등에 따라 시일이 필요한 마케팅도 많기 때문입니다. 책의 성격에 맞는 마케팅 방법들을 쭉 추려서, 담당 마케터와 상의합니다.


8. 제작사양을 결정합니다.

만약 책 본문에 사진이 많다면 본문은 4도. 디자이너님이 색감이 잘 표현되는 표지와 내지 종이를 추천해 줍니다. 넵, 따르겠습니다. 본문이 180p로 다소 얇게 나왔습니다. 조금 두꺼운 종이를 씁니다.

원하는 날짜에 인쇄가 가능한 인쇄소를 알아봅니다. 견적을 받습니다. ok, 너로 정했다!

인쇄소에 최종 내지, 표지를 올립니다. 인쇄용으로 변환한 최종 검판 PDF를 받습니다. 이상 없나 하루 동안 꼼꼼히 살펴봅니다. ok 진행해 주십셔.

그 후 감리(모니터의 색상과 책으로 인쇄되었을 때의 색상이 다를 수 있으므로 직접 인쇄소에 가서 살피는 일)를 가기도 하고, 디자이너만 가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되었다면, 마감 끝! 퇴근 후 소주를 마셔줍니다. 무조건입니다.


9. 부속 작업을 합니다.

책이 인쇄에 들어갔습니다. 인쇄되어 나오고, 서점에 깔리는 데 보통 1주일 정도 걸립니다. 양장이나 4도, 혹은 인쇄소 일정에 따라 2주가 소요되기도 하고요. 이 사이에 편집자는 서점에 들어갈 보도자료, SNS에 올릴 카드뉴스, 상세페이지, 보도용 자료 등등 여러 텍스트를 작성해 디자인 의뢰를 합니다. 마감 직전과 직후가 제일 바쁩니다. 직전에 삐끗하면 인쇄가 잘못될 수도 있고, 직후에 삐끗하면 가장 중요한 초반 판매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살려주세요.


10. 작가님과 책 제목을 열심히 검색해 봅니다.

책이 나왔고, 서점에 깔렸고, 마케팅도 시작되었습니다. 작가님만 수시로 본인의 책을 검색해 보는 게 아닙니다. 편집자들도 자기가 마감한 책들을 수시로 검색해 봅니다. 독자님들의 좋은 리뷰가 달리면 남몰래 하트도 누르고 튀고 그렇습니다.

아무튼, 판매추이나 판매지수, 리뷰 개수 등을 열심히 살펴봅니다. 관련된 기관이나 언론 등에 책을 소개하거나, 실물 도서를 증정하며 추천도서 선정을 노려보기도 합니다. 선정되면 재빨리 마케터와 작가님께 공유해 널리 널리 알리라고 독촉합니다. 세종도서 공고 등이 뜨면 내부 회의 때 이 책은 짱짱이다 초판 벌써 다 나갔다 꼭 신청해야 한다 어필도 해봅니다. 다행히 재쇄를 찍게 되면 엣헴, 작가님 벌써 재쇄를 찍게 되었지 뭡니까 하하, 혹시 수정할 내용 있으신가요? 여쭤보고 재쇄 고고.


1~10을 보통 여섯 번 정도 하면 한 해가 끝납니다.

중간에 가끔 판권이 해외나 영상 쪽으로 팔리는 이벤트도 일어나고, 원고 수급이 밀리기도 하고 갑자기 들어오기도 하고, 말도 안 되게 잘 팔리기도 하고 전혀 안 팔리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외서면 번역가분도 구해야 하고 외부 디자이너나 일러레분과 일하기도 하고 트렌드나 핫한 드라마 영화도 파악해 두면 좋고 뭐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침 12월이네요.

전 올해 다섯 권의 책을 마감했고 이번 달 마지막 주에 올해 마지막 책의 마감일이 잡혀있습니다.

딱 여섯 권을 만든 거죠.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네요. :)

아무튼, 편집자의 일 년 끄읏!




이 글을 쓰면서 먹은 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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