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보릿고개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은 '물가 상승으로 직장인들의 점심값 지출이 늘어난 상황'을 일컫는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던 직장인들이 다시 출근을 하게 됐는데 이전보다 점심값이 비싸지면서 부담을 느끼게 됐고, 이에 도시락을 싸 오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메뉴를 선택하는 직장인들이 증가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점심을 뜻하는 '런치'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이 합쳐져 이렇게 '런치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보리'와 '고개'가 합쳐져 '보릿고개'가 되었듯이. 이는 즐거운 점심시간이 한순간에 고민과 번뇌의 시간으로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 점심을 밖에서 사 먹을 수밖에 없는 직장인이라면 이를 피해 갈 수는 없다.
2021년 7월, 작년에 육아휴직에서 복직할 때 목표했던 바가 있다. 바로 직장 근처 맛집 블로거 되기. 서울 도심이고 관광지 근처라 식당이 많았고, 그럼에도 회사도 많은 곳이라 직장인 점심 먹을 만한 곳이 많았다. 블로그로 부수입 파이프라인 좀 뚫어보겠다고 매일 혼자 먹는 점심 맘 편히 블로깅이나 하며 즐기자는 생각에 열심히 식당을 발굴하고 다녔다. 수십 군데의 식당을 전전하면서 싸게는 6천 원, 비싸게는 만 만 이천 원 정도의 식대로 메뉴를 골랐다. 평균으로 치면 8천 원이면 쌀국수, 순댓국, 돈가스 등의 일상 점심을 먹을 수 있었고 만 원 이하에 연어덮밥이나 회덮밥과 같은 메뉴를 먹을 수 있는 혜자 맛집을 찾기도 했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특히 근 6개월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더 이상 6천 원에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어졌다. 6천 원에 음식을 팔던 곳은 7천 원으로, 어떤 곳은 1년 사이에 6천 원짜리 볶음밥이 8천 원이 되었다. 7천 원, 8천 원이던 메뉴는 말할 것도 없다. 비싼 메뉴는 상승폭이 더 커서 2천 원~4천 원씩 올랐다. 서울사랑상품권이니 서울페이니 방법을 찾아도 결국 비싸진 식대는 낮출 수가 없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나머지만 다 오른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참고로 2023년 공무원 봉급 상승률은 1.7%라고 한다.)
평균 식대가 9천 원~1만 원에 육박하자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아기 반찬도, 어른 반찬도 안 해 먹는데 도시락을 싸오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 측면에서 불가능했다. 결국 선택지는 편의점 도시락밖에 없었다. 4천 원~5천 원대에 사 먹을 수 있는 편의점 도시락은 그래도 양이 넉넉하고 맛도 괜찮았다. 저번 달에 서울시에서 맞벌이 부모들을 위한 GS25 편의점 도시락 20% 할인 쿠폰이 있어 3천 원~4천 원대면 도시락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1시간이라는 짧은 점심시간에 하필 가장 멀리 있는(CU랑 세븐일레븐은 코앞에 하나씩 있다) GS25에서 도시락을 사 와야 한다는 점을 빼면 아주 만족스럽다. 언제 질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편의점 도시락 종류가 다양한 편이라 쿠폰 발급 한 달 차 만족도는 아주 높다.
직장인에게 있어 비용 절감에 식대만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커피값이다. 원래도 비싼(4천 원 이상) 커피는 지양(지향 X)하는 편이지만 이제는 3천 원대 커피도, 2천 원대 커피도 지향할 수가 없게 되었다. 4천 원짜리 밥 먹고 3천 원짜리 커피 마시면 약간 자괴감 든다. 이럴 거면 8천 원짜리 밥 먹는 게 낫지 않나... 하고.
그래서 사무실에 있었지만 외면해왔던 캡슐커피머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카페인 만땅이고 밍밍하지만, 그래도 공짜니까. 기호식품을 기호에 따라 마시지 못하는 건 서글프지만, 한 푼 두 푼 모아 살림에 몇 푼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면 서글픔보다 큰 뿌듯함이 온다. 모으려면 더 버는 게 아니라 덜 써야 한다. 왜냐면 더 벌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상 파이프라인은 그렇게 쉽게 뚫리는 것이 아니었다. 월급이 나오는 파이프나 튼튼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가도 올랐지만 금리도 올라 예적금이 인기다. 원래 모든 재테크를 예적금으로 했지만 주변에서 난리라 더 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넣지도 못할 예금 이자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쪽쪽 빨다 보면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안 든다. 직장인들이여, 아끼고 또 아껴서 돈을 모아 보자. 런치플레이션이라는 보릿고개를 지나면 황금빛 가을 논밭같은 플렉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