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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Dec 02. 2023

울산 낙서암에서

여유(餘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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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토요일 오후 산속 깊은 계곡에는 떨어진 낙엽에 덮여 보일 듯 말 듯 천천히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산속 물 작은 시냇가의 시린 바윗돌과 차가운 흙냄새, 떨어진 나뭇잎 향으로 가득하다.

  

그 시냇물도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멈춰 졸졸 내던 소리마저 얼어붙어 꼼짝없이 그 계절을 그곳에서 보낼 것이다.


하지만, 봄이 되면 차디찬 계절을 함께 했던 그 시냇가 주위의 들꽃 피는 것도 보지 못하고 또 흘러 어디론가 저 아랫개울로 가버릴게 틀림없다.

물론 흘러내려가면 그곳에는 더 많은 꽃들이 있을 수도 있어 더 머무르지 못함이 마냥 아쉽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함께한 그곳에서의 들꽃 향기가 그립기는 할 것도 같다.
어쩜 얼어붙어 머무를 수 있었던 시간들이 더 소중했었을 수도 있다.

그 시냇물은 얼었다 녹으면 흘러 내려가야 하는 이치를 잘 알기에 때가 되면 망설임 없이 흘러가는 것일 거다.



한참을 차로 올라왔다.


다른 크고 넓고 잘 만들어진 큰길로 해서 산 정상까지 자동차로 올라갔다가 조금만 내려오는 방법도 있지만, 한참을 꼬불꼬불한 밭사이 길과 먼 산길을 둘러 따라 올라왔다.

그렇게 오르는 게 기분이 더 좋다.

물론 자동차로 올라오는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 내려오는 것보다 한참을 돌아 이것저것 보면서 또 생각하면서 올라오는 게 더 좋다.

그래도 딱히 다른 이유는 모르겠다.

단번에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보다 삥 둘러 조금씩 천천히 올라가는 길이 더 멀지만 좋을 뿐이다.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생각도 정리할 수 있는 여유가 고마운 길이다.


넉넉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그 정도 넓이의 산속 구불구불한 산길.

그 잡다한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하면 만나게 되는 작은 암자.

여기는 울산 함월산(蔚山 含月山) 높은 산자락에 터를 잡은 조그마한 암자인 낙서암(樂西菴)이다.

낙서암 대웅전(樂西菴 大雄殿)


오랜 역사에 비해 절집 규모는  참 작은 암자이다. 

전각(殿閣)은 아미타불을 모신 대웅전(大雄殿) 주 법당(法堂)과 함월산의 산신을 모신 산령각(山靈閣)이 전부인 그런 작은 암자다.

대웅전과 산령각, 딱 두 개뿐인 전각이지만 여유공간들이 딱 적절히 배치되어 작다는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그 여유공간에 쉴 수 있는 데크와 의자들, 추운 날씨에도 든든한 화목난로까지, 이 암자 스님의 부지런함과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놓여 있는 공간보다 훨씬 더 여유롭다.

점심공양시간이라고 하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끽다거(喫茶去): 차나 한잔 하고 가시게

그런데, 스님과 암자에서 일하시는 보살님께서 꼭 공양하고 가라고 하신다.

밥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양할 수는 없다.

밥이 아니면 과일이고 떡이고 다 먹고 가라고도 하신다

그 따뜻한 정에 결국은 밥도, 국도, 떡도, 과일도 다 먹고 말았.


언젠가 어디서 들었던 부처님 말씀, '배고픈 이에게는 (불)법보다는 밥이 먼저'라고 하신 게 기억나는데, 그 말씀 그대로 실천하고 계셨던 게 아닐는지.

늘 자식들 배고플까 봐 걱정하시던 우리네 어머님들 마음하고 꼭 닮아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향기 가득한 여래의 높은 말씀들보다, 오늘 먹었던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더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절에서 먹는 밥은 참 맛있다.

고기도 없고, 계란조차 보이지 않만, 늘 맛있다.

여기 낙서암 정 많으신 스님과 보살님 덕에 부처님 뵙는 것보다 공양 밥이 더 생각나니 큰일이긴 하다.

그래도 진리가 항상 어려운 곳에 머물러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것 같아 배부른 여유가 더 고맙다.


대웅전보다 조금 높은 곳에 산령각이 있다.

산령각에 계신 산신은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의 바람과 힘든 이들의 소원을 듣고 들어주셨을 거다

낙서암 산령각(樂西菴 山靈閣)

그래서 그곳으로 오르는 길이 다소 험해도 오르고 내려오는 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보여 좋다.


처음 이 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고 이 땅에 존재했던 불교와 너무도 이질적인 산신마저도 포용하고 베풀 수 있는 불교의 여유로움이 좋다.

공양 한 그릇의 그 넉넉한 여유로움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 서로 상처받 않고 지금까지 해던 그 역할을 충실히 계속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강하고 깊은 뜻도 느껴진다.

진리는 하나임을 조용한 산령각에서도 보여주고 계신다.


늘 욕심을 버리라고 하지만, 여래의 큰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또 욕심을 낸다.

그 욕심이라고 해봐야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께서 그랬던 것처럼 자식에 대한 걱정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아마 산령각의 산신님은 그 간절한 소망들을 또렷하게 들으시고 언제나처럼 수고해 주시리라 부담 지우며 인사하고 돌아 나온다.


공양 후 스님께서 만드신 암자 앞 난간 데크에 앉아 커피 한잔을 나눈다.

찬 바람이 불어 화목난로 옆에 앉아 또 내어주신 귤을 먹다 보니, 어느 멋진 카페에 앉아 있는 것 같아진다.

이런 시간들이 필요하다.


늘 아래로만 흘러가야 했던 시냇물도 세찬 바람에 얼어붙어 여기서 머무르며 차디 찬 겨울 그 시절을 보내는 이유는 그 시간 잠시 멈춰 여유로움을 찾는  아닐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야만 하는 물의 변하지 않은 진리 속에서도 잠시 얼어붙어 머물 수 있는 여유를 보여주고 있는 게 틀림없다.


얼어붙음또 잠시 멈춤은 뒤쳐짐이 아니라, 여유(餘裕)였던 것이었다.

잠시 늦어졌을 뿐 머문 곳에서 소중한 것들을 만들고, 또 나중에는 그리운 것들도 만들면서, 결국은 큰 바다로 흘러가 그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짧아도 소중한 여유였다.


작은 암자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좋다.

텅빈 충만


여기 이곳 조그마한 암자에서의 잠시 멈춤도 그런 소중한 여유로움이 맞나 보다.


돌아 나오는데 또 그 보살님 몇 단 인지도 모를 만큼의 파를 한가득 챙겨 주신다.

차 안이 온통 기분 좋은 파향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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