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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Oct 15. 2023

양산 미타암에서

관망(觀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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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정말 빠르다.


여행을 계획하고 그 날짜를 기다리면, 시간이 참 안 간다.

손꼽아 기다리는데도 아직 많이 남아 있곤 했다.

그런데, 막상 여행 당일되면 그때부터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가 버린다.


가을이 그렇다.


언제나 가을 참 좋은데, 가을은 정말 빨리 지나가버려 늘 짧게만 느껴진다.


도시의 큰 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큰 산속으로 들어 버린다.


세상의 소음들이 나무 사이로 흐르는 바람에 의해 흐려져 의미를 잃어버린다.

가을들 하나하나가 조금씩 흐드러지고 있는 넉넉한 산도로를 오른다.


구입한 지 오래되지 않는 자동지만 힘겨운 소리를 내며 오르 있다.

엄청 많이 오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제법 높이 오른걸 보니 경사가 만만하지는 않았나 보다.

고맙게도 절집 앞 주차장은 그래도 넉넉하다.


여기는 원효(元曉)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천성산(千聖山)의 위용을 한껏 뽐내는 양산 미타암(梁山 彌陀庵)이다.

이곳 천성산과 미타암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나온다고 하니, 전해지는 뜻이 참 오랜 곳이다.


양산 미타암(梁山 彌陀庵)

천성산은 신라 원효가 당나라 스님 1,000 명을 데리고 수도하며 성인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해서 천성산(千聖山)이라고  한다.

기장 척판암(擲板庵)에서도 원효와 당나라 1,000명의 스님과 관련된 이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 이 산은 분명 원효와 깊은 연이 있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이쯤 되면 원효는 한류의 원조(신라니까 신류인가!!).

그 큰 나라에도 원효의 큰 가르침을 받으러 먼 이곳까지 왔으니 말이다.

그런 사연들을 알고 여기 미타암에 오르니 높은 산 절벽에 위치한 암자(庵子)가 새롭게 보인다.


마침 점심 공양(供養) 시간이라 대웅전 여래께 인사도 잊고 곧바로 공양간으로 향했다.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한 그릇을 비우니, 그제야 절 아래 펼쳐진 설레는 풍경들에 눈이 시리다.


미타암에서 본 양산시 서창동

참 바쁘고, 복잡하고, 또 때론 시끄럽기까지 한 세상사에서 가끔씩 이런 시간들이 있어 주니 고맙고 또 행복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작지 않은 마을이 고요 속에 잠겨 있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comedy in long-shot.(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 채플린의 말이 생각났다.


이렇게 멀리서 또 높은 곳에서 보니, 우리들 삶 속 고단함들의 크기가 너무 부풀어 올랐었구나 싶어 진다.


지금 보고 있는 저 너무도 작아진 모습들이 어쩌면 실재(實在)하는 삶의 무게와 크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너무 가까이서 그 무거운 것들을 보다 보니, 실 하는 것들을 과장 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우리는 너무 예민하게 크게 보며 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면서 말이다.


당장 크게 느껴졌던 어려움도 시간이 흘러 멀어지다 보면 그냥 웃을 수 있는 작은 추억정도로 변해버린 것들이 많은 걸 보면, 잠시 혹은 한 발짝 물러서서 보는 여유도 살아는데 꼭 필요해 보인다.




여기 동굴 법당에는 보물로 지정된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이 계신다.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된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彌陀庵 石造阿彌陀如來立像)이다.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彌陀庵 石造阿彌陀如來立像)

언젠가 봄에 가 보았던 경주 감산사에 계셨던 국보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慶州 甘山寺 石造阿彌陀如來立像)과 꼭 닮은 여래(如來)시다.


물론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지금 경주 감산사에 계시지 않고,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계셔서 그곳 경주에서 볼 수 없어 못내 아쉬웠는데, 여기 쌍둥이처럼 닮은 아미타여래를 뵐 수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나아졌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계신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을 뵙게 되면 정말 너무 반가울 것 같아 벌써 설렌다.

두 분 여래는 분명 인연이 있을 거라 꼭 서로의 안부를 전해드릴 것을 약속드렸다.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점심공양이 거의 끝난 오후 절집은 조용하다.

까마득한 산 아래 큰 마을의 웅웅 거리는 소리도 여기서는 들리지 않아 고요는 더욱 짙어진다.


고요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지운다.

그 자리를 차분한 생각들이 자리한다.

미타암에서 본 양산시 서창동

이 느낌으로 산아래 일상들을 다시 차분하게 해나가야 한다.


일상의 많은 어려움도 결국 먼 훗날에 작은 추억으로 변해갈 거라 믿으며 한참을 또 앉아 있다.


고요한 산사의 가을을 아껴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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