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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Mar 30. 2024

우리 가족 이야기는 언제나 '새드 엔딩'

부모자녀관계를 흔드는 가족서사의 맹점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진술이 모두 다르다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 ‘라쇼몽’은 1950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인데요. 고전 중에서도 수작이라 불리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의 주요한 내용은 사무라이인 타케히로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건데, 문제는 현장에 있던 세 사람(타케히로와 그의 아내, 그리고 산적)의 진술이 모두 다르다는 거죠. 


산적은 타케히로와 결투를 하다 그를 죽인 것이라고 말하고, 타케히로의 아내는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고백합니다. 마지막으로 무당을 통해 나타난 죽은 타케히로는 스스로 자결을 했다고 밝혀 진실은 미궁 속으로 사라지죠.


세 사람은 왜 같은 사건을 놓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이 영화는 '우리가 알고 믿는 진실이 과연 진짜 사실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전의 글에서 '경합하는 진실'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믿는 진실의 허구성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https://brunch.co.kr/@459430a354354ac/39


오늘은 가족들이 말하는 서로 다른 진실이 부모자녀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구조적 가족치료 전문가인 미누친은 사람들은 가족과 관련된 기억을 이야기할 때, 일부는 실제적 진실이지만 나머지는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화 '라쇼몽'에서처럼 가족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하나인데, 그것에 관해 아빠와 엄마, 아들과 딸이 말하는 내용이 서로 다른 거죠.      


딸: 엄마가 나 어렸을 때 발가벗겨서 내쫓았잖아. 여자애를 팬티만 입혀서 집 밖에 두는 게 말이 돼? 

엄마: 내가 언제 팬티만 입고 너를 내쫓았다고 그래? 

딸: 초등학교 때, 심부름 가는 길에 돈 잃어버렸다고 그랬잖아!

엄마: 네가 돈 잃어버려서 내가 찾아오라고 내쫓은 거지. 

딸: 그때 옷에 주머니가 없어서 손에 돈을 들고 갔으니까 잃어버렸지. 그리고 옷 다 벗긴 후에 돈 찾아오라고 쫓아냈잖아. 

엄마: 무슨 옷을 다 벗겨. 내복은 입혔지. 

딸: 팬티만 입고 있었다니까!

엄마: 누가 보면 내가 진짜 그런 줄 알겠네. 너 이상해. 나도 똑똑히 기억하는데, 왜 그런 거짓말을 해?

딸: 거짓말이 아니라고! 엄마가 이상한 거라니까!     


그날에 대한 딸과 엄마의 기억은 같지만 다릅니다. 

미누친의 말처럼 심부름을 간 딸이 돈을 잃어버려 엄마에게 혼이나 집에서 쫓겨난 부분은 '실제적 사실'이지만, 내복을 입었는지 아니면 속옷만 입고 집 밖에서 벌을 선 건지에 대해선 딸과 엄마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죠.      


혹시 서로 믿는 진실이 달라 아이와 갈등을 겪은 적이 있으세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같은 사건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할까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긍정적 착각’ 때문입니다.        

   

테일러와 브라운은 사람들이 실제보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Taylor, Brown, 1988).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한쪽으로 치우쳐 사실을 왜곡하는 편향도 갖고 있지 않다고 믿는 거죠.

즉,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상대가 알고 있는 사실보다 더 옳다고 착각한다는 겁니다.   

   

만약 엄마가 추운 겨울에 속옷만 입힌 채로 딸을 집 밖에 세워뒀다는 게 사실이라면, 엄마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수치심을 느낄 겁니다. 그러니 딸을 내쫓은 건 맞지만 날이 춥고 나이가 어리니 내복 정도는 입혀서 내보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자신의 행위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거죠.     

 

당시 상황을 입증할 증거가 각자의 기억뿐이라면 두 사람이 긍정적 착각을 할수록 갈등만 심화되겠죠.    

  

두 번째는 ‘자기 위주 귀인 편향’ 때문입니다.      


자기 위주 귀인 편향은 성공은 자신의 공헌으로 여기고, 실패의 책임은 부정하는 경향을 뜻하는데요.      


사례에서 딸이 돈을 잃어버렸기에 내쫓은 것이 정당하다고 엄마가 생각하거나, 돈을 잃어버린 이유가 엄마가 주머니 없는 옷을 입혔기 때문이라고 딸이 믿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태도며, 이는 자기 위주 귀인 편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 위주로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경향으로 인해, 진짜 사실을 외면하고 자신이 아는 진실이 전부라고 믿을 때가 많죠.              

  

미누친은 가족들이 서로에 대해 매우 좁은 정의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우리 가족 구성원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라고 하면,  

    

우리 아이는 내향적이에요. 

우리 엄마는 잔소리꾼이에요

우리 아빠는 술을 좋아해요. 

우리 가족은 같이 있으면 어색해요. 

우리 가족은 먹는 걸 좋아해요.      


라며 개인이 가진 다양한 특성 중 일부분만 강조해서 말한다는 겁니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을 때 지적과 비난으로 시작되면, 이들이 갖고 있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즉 '가족서사'가 동화같이 행복한 이야기는 아니란 걸 알 수 있죠.      


가족 구성원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비극적이고 안타깝고 슬프기만 합니다. 아무도 해피엔딩을 꿈꾸지 않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가족에게 정해진 ‘이야기 공식’을 깨야 합니다.     

 

우리 가족이 되풀이하는 관계 공식을 깨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아이언맨, 아쿠아맨, 슈퍼맨, 베트맨' 등 영웅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구조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먼저 어릴 적에 남들보다 비범하게 태어나서 탄탄대로가 펼쳐지나 했더니, 일반 사람은 감당할 수도 없는 역경이 찾아오죠. 이때 기다렸다는 듯 은인이 나타나 위험에서 빠져나오고, 악당을 물리치며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됩니다.    

  

외모와 인종, 성별만 다를 뿐 영웅서사만의 이야기 공식은 동일하죠. 


가족서사도 그렇습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세요.     


'잔소리하는 엄마와 이를 말리는 아빠, 혹은 무관심한 아빠, 반항하는 오빠와 우울한 여동생'


자신이 맡은 역할을 반복해서 수행하며, 똑같은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나요?  


한 번쯤 다르게 행동할 만도 한데, 왜 하나의 틀에 고정된 상호작용을 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걸까요?  

   


바로 ‘인지적 구두쇠’라는 뇌의 기능적 측면 때문입니다. 


뇌의 기억용량은 제한적이라 최소한의 정보를 신속하게 이동시키는 전략을 사용하는데, 이를 ‘인지적 구두쇠’라고 부릅니다.  

 

무단결석한 아들에게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아빠의 뇌는 ‘또 시작이군, 지금 말리지 않으면 아들 녀석은 화를 내고 딸은 울겠지.’라며 신속하게 엄마의 입을 닫게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며 끝까지 하고 싶은 말을 쏘아대죠. 


이때 아들의 뇌는 ‘또 시작이군. 지금 강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잔소리를 멈추지 않겠지.’라며 평소에 하던 대로 가방을 내던지고 문을 발로 차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그러면 딸의 뇌는 ‘또 시작이군. 내가 울어야 그나마 빨리 상황이 정리되겠지.’라며 매번 그랬던 것처럼 침대에 엎드려 엉엉 소리를 내며 웁니다.      


만약 아빠의 뇌가 

‘아내가 화가 날만한 상황이니 우선 아내의 마음을 잘 달래고 아들이 왜 무단결석을 했는지 대화를 해봐야지. 딸은 다툼이 생기면 긴장을 많이 하니 방에서 음악을 듣고 있으라고 해야겠어.’라며, 원래의 패턴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게 되면, 뇌는 새로운 정보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전에 비해 저장해야 할 게 너무 많아 보이죠?

그러면 유사한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인출하기가 어려우니, 비교적 간단하고 익숙한 ‘아내가 잔소리하면 빨리 입을 닫게 하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을 선택하는 겁니다. 


결국 번거롭고 복잡한 과정을 회피하고 최소한의 에너지를 써서 정보를 저장하고 꺼내려는 '인지적 구두쇠'라는 뇌의 속성으로 인해, 가족 간에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바꾸지 못하는 거죠. 


일상 속의 대화를 보면, 가족 구성원들이 얼마나 고정된 역할과 패턴으로 상호작용을 하는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밥 먹어.

이따.

지금 먹어.

싫어.

지금 먹으라고 치우고 나가야 하니까.

먹기 싫다고.

안 먹는다는 거지?

안 먹어.

그럼, 밥상 치운다.   

  

숙제해.

싫어.

빨리 해.

싫다고.

차라리 빨리 하고 놀라고.

숙제하기 싫다고.

안 한다는 거지?

안 해.

그럼, 휴대폰 압수야.

  

어떤 대화를 하든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당연히 가족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동일하겠죠. 


그런데, 단 한 곳만 바꿔도, 우리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래. 이따 밥 먹어. 

그래. 놀고 나서 숙제해.     


부모가 아이에게 항상 ‘yes’라는 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비극적인 결말로 향해가는 아이와의 관계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고정된 대화의 패턴을 바꿔야만 합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내가 조금이라도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딜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새롭게 바뀐 나의 행동을 저장하고 바로 꺼낼 수 있게 계속해서 시도해 보세요. 

그러면 '인지적 구두쇠'인 뇌는 이전의 부정적인 대화 패턴을 삭제하고 새로운 방식을 저장할 겁니다. 


모든 것을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단 한마디, 단 하나의 행동만이라도 이전과는 다르게 해 보는 겁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나의 영웅인 아이를 위해, 은인이 되어주는 건 어떨까요?


영웅이 영웅의 삶을 살 수 있는 건 '은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위기를 극복해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서사를 가질 수 있도록, 아이에게 은인이 되어주는 건 어떨까요? 

부모만이, 부모라서, 부모이기에,
목숨 걸고 영웅을 돕는 소명을 감당할 수 있는 거겠죠. 

나의 영웅, 나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참고문헌

Minuchin, S., Nichols, M. P. (2013). 미누친의 구조적 가족치료(오제은 역). 서울:(주)학지사. 

Fiske, S. T., Taylor, S. E. (2010). 두뇌로부터 문화에 이르는 사회인지(신현정 역). 서울: 도서출판 박학사. 


사진출처

https://www.pexels.com/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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