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의 우물우물-아홉 번째 긷기
이틀 연속 비가 내린다. 축축한 기운에 메말랐던 콧속이 조용히 열린다. 대륙의 중심을 파고든 북극 한파가 하강할수록 깔때기처럼 좁아진 덕에 이곳은 아슬아슬하게 혹한을 피했다. 그렇다고 춥지 않은 건 아니다. 바깥에 내다 놓고 깜박 잊어버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부리나케 가지고 들어온 화병 속 이파리가 동해를 입어 검게 변했다. 살얼음마저 껴 있던 그중 하나는 결국 시들어버렸다.
이미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사망했다. 폭설을 견디지 못한 전봇대가 넘어져 사람을 덮치고, 도로를 주행하다 꽝꽝 얼어붙은 차에는 할퀸 듯 바람자국이 파였다. 한국의 가족들에게선 자꾸 괜찮냐는 안부 문자가 온다.
그런 날들이 오래갔으면 한다. 전기와 물이 원활히 공급되고, 도로는 마비되지 않아 부러 식재재를 쟁겨놓지 않아도 초조하지 않은 날. 라면 한 봉지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물 한 모금 마시겠다고 다른 사람의 얼굴에 총구를 겨누지 않아도 목마르지 않은 날들이 말이다. 아주 오래오래, 얼어붙은 이파리 정도나 푸념하며 살면 좋겠다. 그게 내 꿈이다.
#무해함일기 #CQ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