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 Dec 05. 2022

엄마의 짝퉁 가방

모두가 익히 아는 것처럼 호치민에선 명품 이미테이션이 아주 흔하다.

오죽하면 내가 명품백을 사려 고민할 때 주변에서 말린 이유도, 아무리 비싼 가방을 호치민에서 들고 다녀봤자 다들 짝퉁이라고 지레짐작할 거라는 거였다.

티 나는 저가 제품부터 값이 좀 나가도 진품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의 S급 제품까지, 종류도 많다. 한국에선 주로 온라인에서 파는 것 같은데 여긴 여행객이 몰리는 시내 번화가에도, 내가 사는 외곽의 한인타운에도 그런 걸 파는 가게가 아주 흔하다.


나는 짝퉁이 싫다. 물론 당연히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있어 보이고’ 싶지만, 그렇다고 가짜로 날 치장하고 꾸며내고 싶지 않다. 안 그래도 결핍으로 똘똘 뭉친 나 자신이 더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 남들이 신경 안 써도, 남들이 몰라도 내가 아니까, 들 때마다 날 못살게 괴롭힐 것만 같다.

근 몇 년 동안 내 가치를 높이려 무던히 노력하고, 결코 높지 않은 자존감과 맘 한 켠의 크나큰 결핍을 매우려 애쓰고 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돈을 벌지 않아 살 능력이 없던 때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돈을 벌고 보니 나는 명품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저걸 그 돈 주고 왜 사? 라는 생각을 한 지 고작 2년 만에 나는 “얼마 동안 얼마를 모아서 저 가방을 사야지” 같은 걸 목표로 두고 열심히 돈을 모으며 시간 날 때마다 가방을 찾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25살에 250만원짜리 구찌 가방 하나를 샀다. (그러고 보니 좀 상징적인가?)


엄마는 명품엔 관심이 없다고 했다. 가방에도 욕심이 없으셨다. 그냥 대충, 아무 천 소재의 스포츠 힙색이나 인조가죽 소재의 내 크로스백을 들곤 했다. 명품백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던 때도 그 돈을 아까워하셨고, 집이 어려워졌을 땐 당연했고, 이제는 내가 돈을 벌어 모은 돈으로 사드리려고 해도 한사코 마다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내 고집대로 작년 어버이날에 엄마한테 명품백 하나를 쥐어 드렸다. 괜히 더 관심 없는 척, 슬쩍 쳐다보시면서 건성으로 대답하시는 엄마 앞에서 “이거 괜찮아?“, ”그럼 이건 어떤데?“ 하면서 한참 만에 겨우 엄마 취향을 도출해 내 결정했다. 엄마의 첫 명품백인 루이비통 백은, 내가 태어나서 산 물건 중 가장 비싼 것이었다.

어버이날 선물을 미리 주는 거라는 말과 함께 주황색의 커다란 루이비통 쇼핑백을 건넸을 때, 엄마는 곧바로 받지 않고 잠깐 멀뚱히 쳐다만 보셨다. 엄마는 이런 거 필요 없으니 환불해오면 좋겠다며 한참을 고집 부리시다가, 실랑이 끝에 겨우 받아줬다. 그리곤 고맙다며 훌쩍이며 우셨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짝퉁 가방을 발견했을 때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안방 서랍 속 루이비X, 구X 가방은 베트남에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엄마가 친구 분과 함께 사 오신 거였다. 베트남에 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면 10년 전쯤일 거다. 엄마가 몇십만 원의 비싼 돈을 주고 S급을 사 왔을 리 만무하다. 서랍 속 가방은 싸구려 티가 났고, 한눈에 짝퉁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허접한 마감새였다.


“다들 사길래 같이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엄마도 그냥 한번 사봤어.“

멋쩍은 듯 변명같이 툭 던지는 말에

나는 더 속이 상했다.


그래도 내가 우리 엄마한테 예쁘고 좋은 명품백 하나 선물해서 다행이다. 내심 안도하고 위안 삼았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엄마가 찾아왔다. 쉬폰 소재의 반팔 꽃무늬 원피스 차림이었다. 늘 엄마가 입는 스타일, 엄마의 동년배들보다는 내 또래가 입을 법한 영한 옷차림이다. 그 옷 위에 크로스로 걸친 가방은 내가 싫어하는 서랍 속 가방이었다.


“왜 이 가방을 들고 왔어...“

나도 모르게 한숨 섞인 투정인지 원망인지 모를 말이 튀어나왔다.


“그냥, 태블릿 PC를 넣으려고 보니까 이 크기 가방이 딱 좋아서.“

오히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한다.


안절부절못하고 주변 시선을 의식하는 건 나뿐이었다.

왠지 억울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하루종일 크기가 넉넉하고 수납력이 좋은 명품 가방을 찾아봤다. 엄마가 다시 그 가방을 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걸 대체할 몇백만 원짜리 가방을 찾는 데 온 신경이 쏠렸다.


내가 정말 부끄러워하는 게 뭔지,

나는 왜 혼자 안절부절못해야 했는지,

오히려 이런 내 행동이 더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 하던

‘억지로 치장하려는’ 바로 그 모습이 아닌지.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남겨진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