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명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명품을 찾고, 명품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은지 나는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집사람은 명품을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명품이라고 할 만한 가방이나 물건들이 눈에 띄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명품을 사 모으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고 한다.
명품 좋아하는 것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내 친구들 중에서도 파텍필립이라는 명품 스위스 시계를 가졌다고, 가질만하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10여 년 전에 명품 시계 수집이 취미이던 모 국회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이 되었을 때 그 집에서 압수한 시계 목록을 보았는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이름의 시계가 참 많았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롤렉스 시계‘가 최고의 명품인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할 무렵에 금장 롤렉스 시계가 오른쪽 팔에 있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물건의 가격은 기본적으로 효용, 즉 사용가치에 의하여 결정되는데 명품의 가격은 사용가치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명품 가방이나 시장에서 산 중소기업에서 만든 가방이나 사용가치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명품 가방은 가격이 워낙 비싸니 오히려 사용에 불편하다. 비가 오면 머리를 가릴 수도 없고 품에 넣고 비를 안 맞게 해야 하니 사용가치는 더 없는 셈이다.
교환가치는 어떤가? 명품은 사용가치와는 관계가 없지만 가격이 높을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이른바 ‘베블렌 효과’에 따라 사람들의 선호가 많아 교환가치-거래 가격-는 아주 높다.
수요는 선호가 결정하는 것인데 이 좋아한다는 근원을 따져보면,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남들이 좋아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인 경우가 더 많다. 남들이 명품으로 인정하고 좋아하니까 나도 거기에 따라가는 것이다.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내가 좋아하지도 않을 것들이 곧 명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명품을 가지면 자존감도 높아진다고들 한다. 남들이 선호하는 것들을 나도 가졌다는 그런 소유 욕구는 충족되겠지만 그것 때문에 자존감이 생긴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로는 자존감이 아니라 명품 소유대열에 합류하였다는 동류의식에 불과한 것이며 자본주의, 상업주의의 동조압력에 굴복당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발달될수록 이런 동조압력은 더 커진다. 조직이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체감, 동질감이 필수적이고 개인은 그 속에서 안정과 안도감을 가진다. 그래서 회사, 국가 등 모든 조직에서는 공동체를 강조하고 함께 참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심지어 강제하기까지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상품 제조사는 자기가 생산한 제품을 소유하여 명품족에 합류할 것을 강요한다. 여기에 개인은 점점 더 위축된다. 소위 국뽕으로 시민을 단결시키는 것과 같이 명품이라는 상징적 도구를 통하여 자존감이 생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기망행위가 아닐까?
위축되고 초라해진 개인이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의 본모습이다. 그래서 철학이 인간의 실존을 찾아 나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개인의 존재-자존감-는 명품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자아 찾기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