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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보 Nov 11. 2022

29. 우울감의 우선순위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29. 우울감의 우선순위          



이 제목으로 글을 쓰는 것도 오랜만이다. 그동안 일상의 분주함으로 인해 우울감이 꽤 뒤로 밀려나 있던 탓이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우울감을 정리하여 글로 적을 시간도 없을 만큼 그럭저럭 바쁜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우습다. 그전까지 내 일상의 가장 높은 우선순위는 글쓰기, 구체적으로는 글을 통해 이 미적지근한 우울감을 파헤치고 널어놓는 작업이었다. 스스로 우울감의 합리성을 따져봄과 동시에, 적어도 남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덜 부끄러운 범위 내로 우울감을 한계짓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감시당하고 까발려진 우울감은 그전처럼 마구잡이로 날뛰지 못하고 적정선에서 몸을 웅크리게 되었다. 덕분에 일상을 회복하고 새로운 도전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동안 우울함으로 인해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갈피를 잡고 나니 우울함이 자연스레 뒤로 밀려났다. 
우울함으로 인해 아무 일도 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우울함에 빠졌던 것인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도 아니고 원.


그러다 오늘 제대로 고꾸라졌다. 준비가 미진했음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오늘 본 면접은 최악이었다. 상대는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았고, 나는 상대가 원하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나는 상대의 기대보다 한참 모자랐고, 상대는 내 염려보다 훨씬 바빴다(무성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처음부터 경험 차원으로만 여기자고 생각한 도전이었지만, 막상 제대로 된 시도조차 해보기 전에 끝나버리니 허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준비 만전인 다른 지원자들을 보며 스스로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부딪히고 실패한 덕분에 부족한 점, 채워야 할 점들을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라 여기자.     

꽤 아프게 넘어졌는데 예상외로 우울감이 얌전하다. 결국 이 감정도 나를 돌보고 위로하려는 한 부분이었던 걸까. 고맙기도 하지. 그래도 술은 한 잔 해야겠다. 앞으로 또 얼마나 긴 시간 움츠려 있어야 할지 모르니까.          


※  오늘의 잘한 일     


- 슬퍼하지도, 스스로를 미워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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