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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Dec 29. 2023

이야기의 시작

생각이 많은 한 병장의 이야기


 2022년 9월 19일 새벽, 잠이 오지 않은 나는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시간,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소주 한 병과 담배 한 갑을 비웠다. 입대 전 사회에서의 마지막 유흥이었다.


 그날, 나는 군인이 되었다.


 논산훈련소와 후반기 교육대, 그리고 사단 보충충대를 거쳐 이곳 해안감시장비운용대에 도착했다. 경직된 자세로 행정반에 앉아 대기하던 중 병사 두 명이 행정반으로 들어왔고, 그중 선임으로 보이는 이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네가 00이구나! 내 이름도 00이야!"


 당황한 나는 그 병사의 오른쪽 가슴에 박힌 이름표를 보고 그 말을 이해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행정반으로 들어온 병사 2명은 당시 레이더 2분대 분대장과 차기 분대장이었다. 그리고 운명적이게도 나는 레이더 2분대가 되었다. 나의 본격적인 군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약 4주간의 교육을 받고 2022년 12월 11일 새벽, 나는 레이더 운용병으로서 처음 근무에 투입되었다. 중간에 담배를 피우고 온 나는 앉을자리가 없어 뒤쪽에 앉아 장비에 앉아있는 선임들을 바라보았다. '11명' 우리 분대에 남아있는 선임의 수였다. 이들이 다 전역을 해야 내가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은 시간이 너무나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은 새벽 4시, 본격적으로 바빠질 시간이 되었고 나는 감상에 빠질 정신도 없이 다시 근무에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근무가 끝난 후 며칠 뒤 취침 시간, 문득 생각에 빠졌다. '1년이 넘게 남은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주말 없는 3교대 근무이지만,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았다. 근무와 작업시간 외에는 충분한 개인정비가 보장되었고, 충분한 책과 운동시설, 연등할 장소도 있었다. 사회에서는 좀처럼 읽지 않던 책을 꺼내 읽고, 열악한 시설이지만 선임들을 따라가 운동을 했다. 휴가 때는 군에서 제공하는 강의를 듣거나 군대에서 정리한 생각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매일을 그렇게 보내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나는 분대장이 되었고, 병장이 되었고, 곧 있으면 내 맞후임에게 분대장직을 넘겨준다. 이제 분대에 선임은 없고, 후임은 8명이다. 선임들에게 끌려가듯 체단실에 가던 나는 작업이 늦게 끝나도 혼자서라도 체단실에 가 10분이라도 운동을 하고, 휴가 때 책을 사 와 밥 먹을 때도 책을 읽게 되었다. 신병 때는 무서운 선임들에게 말도 걸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간부님과도 농담을 주고받게 되었고, 남은 날을 헤아리며 절망하는 후임들에게 장난 섞인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주게 되었다.


 그리고 장기휴가를 두 달여 남은 어느 날 취침시간, 신병 때와 비슷한 생각에 빠졌다. '군생활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행히 내가 할 줄 아는 것 중 하나가 글쓰기이다. 그 무렵 집에 더 일찍 가고 싶어 대장님을 찾아뵈었고, 면담 후 대장님께서는 후임들에게 해줄 만한 이야기를 풀어서 에세이를 써오라는 지시를 주셨다. 처음에는 휴가를 받기 위해 시작했으나, 내용을 정리하면서 1년 남짓한 시간을 돌아보니 하고 싶은 말이 꽤나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휴가 생각은 뒷전으로 갔고 어떤 얘기를 덧붙일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와 같은 생각에 글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이 글은 나의 군생활을 자랑하는 것도, 인생에 대한 교훈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른 병사들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에 입대했지만, 그래봐야 내 나이 스물넷이다. 군생활 조금 열심히 했다고 인생을 깨달았다 하기엔 오만하기 그지없는 나이다. 그저 같은 20대 남성으로서 또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좋은 일도 많았지만, 후회할 일도 많았다. 그러나 그동안의 후회와 기쁨,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 그간의 생각과 군대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모아 4개의 챕터와 8개의 장으로 나누어 정리하였으니 편하게 들어주길 바란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군인의 본분에 대해 이야기한다. 군대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잊지 말아야 할 군인의 본분과 지금 하는 일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한다.


 두 번째 챕터는 습관에 관한 내용이다. 군대에서만큼 규칙적으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매일이 같은 루틴의 반복이며, 시간이 불규칙한 교대근무도 적응하면 루틴이 된다. 이러한 반복은 지루할 수 있지만, 습관이 되어 우리 삶에 스며든다. 좋은 습관은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반면, 삶에 악영향을 미치는 나쁜 습관도 있다. 이러한 습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내가 군대에서 들인 두 개의 습관을 소개한다.


 첫 번째 습관은 운동이다. 단순히 건강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정신과 삶의 자세에 대한 내용도 있기에 운동을 싫어하는 이라도 읽어보길 권한다. 두 번째 습관은 독서다. 군대에는 생각보다 책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부대에 있는 책 중 3권도 읽어보지 않은 이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나도 입대 전에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군대에서 들인 독서습관을 바탕으로 독서의 효과와 이유에 대해 말한다.


 세 번째 챕터에서는 사람을 대하는 법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군대에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 사회를 경험한다.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에 대해 내가 이해한 바를 설명한다. 이후에는 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속한 조직이 유지되는 방식과 조직의 건강한 발전방향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담겨있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1년 6개월 동안, 그리고 전역 후에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관해 이야기한다.


 흔히 말하는 군생활 꿀팁 같은 실용적인 내용은 많이 없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군생활뿐만이 아닌 인생에서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내용들을 담았기에 조금 재미없더라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럼 본격적으로 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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