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을 놓친 길을 잃은 아이.
성경에는 그런 말이 있어.
사람은 자기가 한 행위의 열매를 먹고 살아간다고.
당신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어?
끝까지 최대한 눈을 뜨기 싫어서 악몽이라도 잠은 달콤하니깐, 꿈을 꾸다 어쩔 수 없이 현실로 기어 나올 때, 이불 위에 주저앉아 이제는 진짜 출근을 해야 되나 망설이다 화장실로 향할 때.
가글만 겨우 한 채 세수도 화장도 안 한 여자는 아무 옷이나 집어 있고, 빠른 속도로 걸어 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카드를 찍고 환승할 지하철을 향해 놓칠까 뛰어가고,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속 겨우 한 사람 숨 쉴 공간을 만들어내. 그러다 다시 밖으로 빠져나와 길게 사람들이 줄 서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피해 계단으로 껑충껑충 올라가지.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회사는 잠깐의 양치시간은 가져도 된다며 나에게 허락하니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얼른 하는 구질스런 양치질.
언니, 우리는 같은 이름을 공유하잖아.
엄마는 우리에게 같은 글자를 이름 사이에 새겨놓았고 그 글자는 우리의 근본 없는 가문을 만들었어. 우리 아빠의 이름 속 한 글자. 고아원 원장이 붙여준 아빠의 성과 이름은 원래 아빠의 성과 이름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 없는 뽑혀버린 근본.
참 불쌍한 사람. 참 불쌍해서 이해해줘야만 하는 사람.
내가 아는 아빠는 친모가 버리고 간 병원에서 발견된 사람, 아이들이 죽어가던 60년대 열악한 고아원에서 살아남은 사람, 국민학교만 졸업한 사람, 기술을 배운 사람, 그나마 믿을 건 반반한 인물뿐인 사람, 언행이 거칠어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
결국 엄마에겐, 엄마를 필요로 하는 나마저 떠나면 안 될 운명 같은 참 불쌍한 남자.
둘은 만난 지 얼마 안돼 동거를 시작했고 여러 태아들이 계속 찾아왔대. 엄마가 임신을 할 때마다 아빠는 엄마를 병원에 끌고 가 낙태를 시키고... 반복된 낙태에 또다시 임신을 했을 때 이번마저 낙태를 하면 의사가 다시는 임신하지 못할 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하자 엄마는 아빠한테 이번 아이는 낳자고 빌었대. 그렇게 아무도 원하지 않는, 엄마만 원하는 생명은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된 거야. 엄마는 아빠의 이름 속 한 글자를 물려줬고 그렇게 아빠와 언니는 연결되기 시작한 거야.
참, 정신없는 아침에도 출근 전 꼭 빼먹지 않는 일이 있어. 빼먹으면 나를 하루종일 초조하게 움직이는 것. 10년째 먹는 정신과약은 오늘도 넌 안전한 하루를 보낼 거라고 말해. 엄마가 채워주지 못한 텅 빈 공허를 수천 알의 알약으로 채웠어.
"넌 왜 사니?"
인간중독에 빠진 사람이 탈출하려면 방법은 3가지래. 첫 번째는 다른 인간대체제를 찾거나 두 번째는 일에 중독되거나 세 번째는 일상에서 행복을 얻는 것. 사람은 과거, 특히 불행한 과거에 계속 생각이 매여있으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으니 현재에 집중해야 삶을 잘 살 수 있다는데, 재미없는 지금의 삶에서 글쎄, 어떤 행복을 찾아야 하나 생각이 꼬리를 물고 가지를 뻗쳐가다 그래 나는 당신들을 욕해야겠어. 그리고 당신들을 욕하는 당위성을 찾고야 말겠다고.
엄마는 아빠를 이해해야 한다고, 입술이 터지고 몸을 파는 창녀취급을 받더래도 주방에 가 식칼을 뽑아 드는 아빠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그러지 말라고. 참 불쌍한 아빠이기에 엄마는 아빠를 이해해야 했고, 우리는 불쌍한 엄마를 이해해야 했고, 불쌍하지 않은 나는 결국 이해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