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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발견하다

의존하는 아이

by 소해


과도한 통제는 불안에서 시작된다.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불안을 타인과 환경을 통제함으로 잠재우는 것이다.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왜 불안한지 이유를 찾아야 한다.


나와 남편은 앞서 한 심리검사인 프리페어인리치에서 파트너지배성이 ‘매우 높음’이 나왔다. ‘파트너지배성’이란 자신의 파트너가 얼마만큼 자신을 조정하고 지배한다고 느끼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지배적이고 통제적이며 배우자의 삶을 주도하는 데 상당한 관심이 있다고 결과가 나왔다.

남편은 잔소리에 욱한다. 그리고 나는 잔소리를 잘한다. 나의 잔소리는 주로 지시적이거나 판단식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이거 치워.” 또는 “왜 자꾸 안 치워.” 내입장에서는 잔소리에 알겠다고 인정을 하고 행동을 교정하면 되는데, 반항하고 되려 욱하고 화내며 큰 싸움까지 번지게 만드는 남편이 이해가 안 갔다. 돌아보니 남편은 자신의 자유를 침범하고 지휘하려는 나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고, 나는 집을 안 치우고 했던 실수를 계속 반복하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남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우리는 싸움에서 칼과 방패 중 둘 다 칼이었고 칼의 대화를 했다. ‘칼의 대화’란 ‘비난’, ‘경멸’, ‘과도한 일반화’를 말한다. 칼의 대화를 나누니 당연히 우리는 자주 싸우고 한번 싸우면 작은 일도 크게 만들어 마음에 상처를 새겼다.


같이 살기로 한 이상 맞춰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노력은 이해에서 시작된다. 남편은 왜 이렇게 ‘자유’를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지 생각을 해본다. 시아버지는 남편이 어린 시절 매우 엄하셨다. 어렸던 남편과 아주버님 두 형제는 시아버지를 무서워했다. 남편은 어린 시절 시아버지가 퇴근해 집에 들어올 때가 되면 긴장되었다고 한다. 남편은 지금까지 시아버지한테 존댓말을 하고 눈치를 본다. 아주버님이 성인이 되어 시아버지와 크게 부딪히고 일찍 독립하신 것에 비해 남편은 나랑 동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내가 아는 시아버지는 보수적이고 표현에 인색하지만 정은 있으신 분인데, 그런 시아버지가 가끔 나한테 상처되는 말을 하실 때마다 한 번도 남편이 앞에서 중재를 한 적이 없다. 이런 점들을 돌아봤을 때 아마 남편은 살면서 시아버지에게 큰 반항은 안 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사람 안에는 세 가지의 자아가 있다고 한다. ‘부모 자아’, ‘아이 자아’, ‘어른 자아’. ’부모 자아’는 부모가 나에게 했던 행동과 말, ‘아이 자아’는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감정, ‘어른 자아’는 이성적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이 세 가지가 자아 안에 공존을 하다가 가끔 ‘때’에 안 맞는 자아가 무의식적으로 표출되어 나타난다. 조절하기 위해서 각각의 자아를 인식하여야 한다. 남편은 나한테 “억울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남편이 나의 잔소리에 억울해하고 욱하고 화를 내는 건 엄했던 아버지의 통제에 눌려있던 ‘아이 자아’가 터진 게 아닐까,


우도 라우흐플라이슈의 "가까운 사람이 의존성 성격장애일 때"에서는 의존성 성격 유형의 특징과 일반적인 의존성 성격장애와 대비되는 의존성 성격장애 유형을 설명한다.

인간관계에서 의존성을 보이는 사람들로, 의존성 성격 장애 환자들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일정 정도의 의존적 성향을 보이고 충성심이 매우 강하며, 타인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주변 사람들과 그들의 평가에 매달리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이들 대부분은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협동심이 강하며 남을 잘 돕고, 이타적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다. 성격 장애 환자와 비교하면 이들의 자존감은 훨씬 안정적이다. 이들 역시 불안하고 의존적이긴 하지만 의존성 성격 장애 환자처럼 극단적일 정도로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지는 않는다.(19-20)

"독립적이고 자기가 다 알아서 하는 건 좋은데, 무슨 말만 하면 물어뜯을 듯이 달려들고 한마디만 거들어도 민감한 반응을 보여." (중략) 화를 내야만 무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린아이인 것이다.(124-125)

비록 환자의 자신감이 관계 의존성을 상쇄하기 위한 과도한 몸짓이라 해도, 어쨌거나 그 단단한 갑옷은 환자가 불안과 의존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127)

남편은 처세에 능하고 남들이 듣고 싶은 말을 잘, 재밌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 재주로 어느 집단에 가도 분위기를 밝게 띄우고 감초역할을 잘 해내 사랑받고 능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눈치를 많이 보고 싫은 소리나 거절은 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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