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인간
원가족이 아닌 성별도 다른 타인과 같이 살며 나와 다른 모습들을 경험하고 이해해야 한다. 나의 결혼생활 말이다.
연애 8개월, 동거 2년, 결혼 2년 참 많이도 싸우며 서로를 알아갔고 그럼에도 아직 잘 모르겠고 낯선 남편. 동거하고 1년 되었을 때였나, 남편과 '프리페어인리치'라는 검사를 함께 했다. 가족관계 안에서 부부와 커플관계를 알아보는 검사로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의 원인을 파악해 해결할 수 있게 돕는 검사이다. 부부관계에 대한 한 어플에서 발견한 심리검사인데 우리 커플에 도움 될 것 같아 검사신청했다. 신청하니 얼마 안 돼 검사지가 왔고 해당하는 문항에 다 체크하고 며칠 뒤 결과지와 함께 상담가의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상담가는 결과지를 그대로 읽기만 하는 수준이었어서 해설은 별로였지만 결과지가 인상 깊었다. 관계 역동에서 회피성이 나는 '평균'인데 반해 남편은 '매우 높음'이 나온 것이다. 또한 파트너 지배성에서 둘 다 '매우 높음'이 나왔다. 회피성은 문제를 축소하려 하거나 혹은 문제에 직면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말하고, 파트너 지배성은 자신의 파트너가 얼마만큼 자신을 조정하고 지배하려 한다고 느끼는지에 초첨을 맞춘다.
항상 남편에게 문제를 지적하면 돌아오는 말이 있었다. "너도 그랬잖아."
그냥 미안하다, 안 그러겠다고 말하면 끝나는 문제인데, 그놈의 "너도 그랬잖아"는 서로 주색잡기를 하게 만들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했다. 남편은 "항상", "맨날", "늘" 이런 단어를 증오했다. 내가 언제 계속 그랬냐고, 안 그런 적도 많다고. 사소한 집안일 실수에도 이런 반응이니 우리는 정말 많이 싸웠다. 남편은 한 번도 자취하거나 독립한 적이 없었기에 집안일 초짜였고 나는 자취경험이 나름 길었기에 항상 물건을 바로바로 치우고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는 습관이 있었다. 남편은 집안일을 쌓아놓았다가 한 번에 처리하는 경향이 있었고 ADHD가 의심 가는 게 일을 하면 꼭 하나씩 흔적을 남겼다. 내가 그냥 하면 되는 일이었다. 말 안 하고 그냥 남편의 실수를 조용히 처리하면 되는 것이었다. 근데 나는 이해가 안 갔다. '대체 왜 하지 말라고 해도 했던 실수를 반복하는 거지?' 남편은 진짜 억울하다고 했다. 억울한 것은 못 참는다고.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 했다, 어디서 맞으면 꼭 한대라도 다시 돌려줬다고. 나는 생각했다. '뭐가 그렇게 억울하지? 받아들이면 되잖아.' 자신의 실수나 치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편이 난 참 이해가 안 갔다.
잠깐, 남편의 '회피성'이 '매우 높음'이라면, 내 애착유형이 '혼란형 인간'인 것처럼 남편은 '회피형 인간'일 수 도 있는 거잖아?
회피형 절친과 회피형 전남친, 회피형 가족을 경험한 '회피형 인간 콜렉터'인 나로서 일반적인 회피형의 양상은 잘 알고 있다. 갈등을 회피하고, 잠수 타고, 거리를 두고, 자기반성 없이 상대방 잘못으로 귀결시키는 그들의 이기적인 모습. 남편은 갈등이 생기면 남 탓을 하고 잠으로 도피하고 회피하는 모습들이 보였지만 내가 떠날 것 같으면 비굴하다시피 사과하고 진지한 대화에서는 자신의 속마음과 생각을 꺼내보았다.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좀... 갈등에 미숙하고 불안해하는 어린아이의 모습과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은 잘 유지하는 어른의 모습이 공존했다.
완전히 회피형 인간이라 정의하기엔 애매한 회피형 인간인 남편. 혼란형 애착에 관심을 가지기 전 나르시시스트에 관심이 많았던 난, '성격장애'라는 개념을 알고 있었다. 성격장애는 총 3가지의 군으로 나뉘는데 사회성이 떨어지고 특이하고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a군, 정서가 불안정하고 감정이 극단적인 b군, 불안이 강해 회피하거나 집착하는 모습이 보이는 c군이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b군 성격장애에 해당하고, 혼란형 애착과 관련이 깊은 경계성 인격장애도 b군에 해당된다.
오카다 다카시의 "나는 상처를 가진 채 어른이 되었다"에서는 혼란형 애착의 특징과 경계성 인격장애의 연관을 설명한다.
불안정 혼란 유형은 일관성 없고 무질서한 행동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이다. 완전히 무반응인가 싶다가도 심하게 울거나 분노를 드러내곤 한다. 또한 어깨를 둥글게 웅크리는 등 부모의 공격을 두려워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거나, 반대로 부모를 갑자기 때리기도 한다. 이 유형은 학대를 받고 있는 아이나 정신 상태가 매우 불안정한 부모의 아이에게서 쉽게 볼 수 있다. 안전기지가 오히려 위험한 상태이기 때문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부모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이의 행동을 무질서하게 만든다. 이 유형의 아이는 이후 경계성 인격장애를 겪게 될 위험성이 높다.(35)
불안정애착과 성격장애는 이어지고, 성격장애에 대해 깊게 알고 싶던 난 관련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