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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동아줄과 선악과

애착기지의 균열

by 소해

생존.

인간의 최종목표인 생존,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유년시절 부모의 불화, 학대, 방임, 가난에도 아이는 희망을 꿈꿨다. '얼른 어른이 돼서 돈을 벌면 가난한 환경에서 누리지 못한 것들 누리고 안정적이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 거야.' 그런 희망을 안고 오늘은 아빠가 술을 안 마실까, 걱정하며 위험한 집으로 돌아갔다. 세상은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아빠 몰래 전화기의 버튼을 눌러 경찰을 부르면 출동한 경찰은 아빠를 밖으로 빼 서로 담배 한 대 물다 다시 집으로 보냈고, 폭력의 정도가 심했을 때는 경찰서 유치장에 잠깐 가두었지만 엄마의 처벌불원서에 바로 풀어줬다. 경찰은 셀 수 없이 집에 왔고 우리 집은 가정폭력으로 유명한 집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보호해 주는 어른은 없었다. 작고 연약한 어린아이가 지낼 곳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폭력이 난무한 집뿐이었다.


어른이 되었는데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난 썩은 동아줄 말고는 기댈 곳이 없었고, 회사생활도 내 생각처럼 원활하지 않았다. 아빠를 닮아 낮은 사회성과 극단적인 감정선은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싶다는 충동으로 이어져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수십 번을 스스로 모래성을 무너트리고 다시 짓는 삶이 반복되었다. 좋은 가정을 꾸리고 싶은 꿈도 쉽지 않았다. 다행히 적당히 큰 키와 어떤 그룹에서도 꼭 이쁘다는 말을 들었기에 연애의 시작은 쉬웠지만 ‘유지’가 어려웠다. 외모 말고 진정한 나를 이해해 주고 성장시켜 줄 남자를 찾았지만 그런 남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어릴 때 받지 못한 사랑과 인정을 남자를 통해 채웠고, 변덕이 심하고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지 않으면 화를 내는 모습에 남자는 지쳐 떠났다. 불안정하고 외로운 나. 그게 20대의 나였다.


남편을 만나고, 남편의 미숙하지만 진실된 사랑과 시부모님의 책임감 있으시고 아낌없이 우리 부부를 사랑해 주시는 모습에 나는 조금씩 안정되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둘 다 미숙해서 사소한 문제가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서로에게 할 말, 못할 말 구별하지 못하고 막 뱉어내고, 소리를 질러 위협하고, 뻔뻔하게 아닌 척하며 서로의 마음에 멍울이 지게 만들었다.

서로 잊지 못하는 각자의 멍울들이 있다. 내가 추측하건대, 남편의 가장 큰 멍울은 내가 다른 남자를 가슴에 품었다는 것이다. 오래 알고 지낸 남동생이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알았고 남편과 만나면서도 꾸준히 연락하고 얼굴을 봤던 동생. 친한 여동생의 구남친이자 내 전남친의 직장후배이기에 복잡한 관계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호감이 있었으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알면 알수록 그리고 처음부터 아니마와 아니무스처럼 서로가 서로의 이상형이었다. 그런 마음이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 없다고 은연중에 자꾸만 새어 나왔고 상견례를 했고 곧 혼인신고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당시 내 마음은 남편과 연애하고 동거하며 알게 된 날 것의 남편의 실체와 싸움 속 오간 쓰디쓴 상처들의 기억으로 남편에게 이성적 사랑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다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면서 만약 이 사람을 만났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으로 이어져 호감을 품었던 마음을 서로 고백해 버렸다. 동생은 완전히 정리하고 자신에게 오기를 원했고 동생을 만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 밖에서 집에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집 앞을 서성이는 남편을 보게 되었다. 남편은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매우 불안해 보였다. 남편을 본 난, 아무렇지 않은 척 친구를 만났다고 둘러대며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고민을 하며 막상 남편을 떠날 생각을 하니 남편은 내 집이었다, 내 가족이었다. 남편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정된 기분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남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래서 다른 남자가 좋다는 거야?” 남편은 배신감을 잠깐 느낀 거 같다가 눈물을 흘렸다. “꺽꺽”되며 아주 슬프게 울었다. 그리고 나에게 ”네가 선택하는 거지만, 내가 못해준 게 너무 많아 아쉬워 살아가며 채워줄 테니 함께 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내가 상상하던 반응은 남편이 나를 욕하고 때리는 것이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남편은 정말 애처롭게 울었다. 그 진심 어린 울음에서 그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느껴버렸다. 남편에게 씻으러 들어간다고 하곤, 화장실에서 샤워기를 틀어놓고 한참 동안 나도 펑펑 울었다.


그렇게 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싸워댔다. 워낙 서로 기질도 성격도 성향도 다른지라 서로에 대한 이해나 공감이 어려웠다. 나와 달라서 좋았던 그였는데 나와 다르니 티키타카가 안되었다. 항상 남편에게 드는 아쉬움인데, 관심사가 다르니 함께 즐길 것이 별로 없었다.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업무나 인간관계면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잘 하자 남편의 집안일참여도에 불만이 커졌다. 무의미하지만 남편과 나를 계산적으로 따졌을 때, 내가 아깝다는 착각, 결론을 내렸다.

내가 회식을 한 날이었다. 난 10시에 들어왔는데 집에 남편이 없었다. 홀로 한참을 남겨진 강아지는 내가 오자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회식한다고 미리 말했는데 왜 집을 챙기지 않은 거지?' 화가 났는데 남편이 12시에 술에 만취해서 집에 들어왔다. 상사들이 술을 먹여댄다 했다. 당시 남편은 상사의 다혈질과 비난에 비위를 맞추느라 한참 마음고생하던 시기였다. 나는 집을 챙기지 않은 남편이 짜증 났고 만취한 남편은 완전 꽐라가 돼서 토를 하고 상사한테 나를 왜 괴롭히냐고 오밤중에 전화를 하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회생활은 잘한다고 늘 생각하던 남편이었는데 그런 모습에 깜짝 놀랐고 남편을 혼내려던 난 몇 시간을 술주정을 들어야 했다. 짜증 나서 이혼하자고 했고 그래 이혼하자 하며 서로 비난과 막말이 이어졌다. 술에 취한 주정뱅이는 나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폭언과 욕설을 했다. 미친 인간, 진절머리가 난다. 저런 행동은 동거 때부터 가끔씩 있어 낯설진 않았다. 술에 취해서 가누지도 못하는 몸뚱이와 정신머리, 익숙했다.

낯설진 않던 그날은 매우 특별한 날이 된다. 남편의 욕설에 화난 난 남편을 모욕했고 남편은 나를 위협했다. 나에게 귀가 찢어질 정도의 윽박을 질렀고 다가와 내 멱살을 잡았다. 눈치는 살짝 봤는지 살살 잡기는 했지만, 주방에서부터 잡고 끌고 가 거실에서 살며시 내려놓았다.

가정폭력이라고 정의한 나는 남편을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역시나 가정폭력에서는 집안일로 치부하는 대한민국의 법치에선 있으나 마나 한 분리조치로 남편은 잠깐 집밖으로 나갔을 뿐이었다. 잠금장치를 해두길 다행이지, 30분을 넘게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려고 하는 남편 때문에 문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나는 전화를 해 자다 깬 시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남편은 시댁으로 보내졌다.


남편은 다음날, 시어머니와 함께 집에 들어와 무릎을 꿇고 울었다. 그리고 자의로 머리를 빡빡 밀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술도 앞으로 절대 입에 안 댈 것이라고 했다. 아빠를 증오하면서 정작 아빠 같은 인간을 만나버린 것 같아 나는 그날 남편을 용서했음에도 꽤나 오래 괜찮지 않았다. 남편을 용서한 이유는 내가 남편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주지 못하고 계속 자극한 것 같아서, 한창 힘들 시기였는데 그럴수록 내가 들어줬어야 했는데, 비난과 충고만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로 이혼생각은 더 강하게 들었고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나에게 비빌 언덕은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었다. '엄마, 나도 엄마처럼 남편에게 당했는데 어떡해야 해?' 전화할 수 없었다, 가족 중 누구에게도.

같이 일하는 팀장님이랑 드라이브를 할 때였다. 팀장님과 연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팀장님, 누군가를 안다는 건 '선악과'같아요. 그 사람의 좋은 점, 나쁜 점을 다 삼켜야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를 안다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쉽지 않다고 하지만 선택했으면 품어낼 수 있어야 한다. 애정하던 글방의 선생님은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약해 보여 불안하지만 은근히 강한 것 같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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