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적인 성향
지나친 통제는 불안에서 야기한다. 나는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안을 느꼈고, 불안을 느낄까봐 상황을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삶과 인간관계는 내가 원하던 시물레이션대로 움직이지 않고 곳곳에서 변수가 튀어나와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통제되지 않을 때 어느 날은 분노와 슬픔을 폭발시켰고, 대부분의 날은 무기력했다. 부모님이 싸울 때 방에 들어가 이불속에 숨어들 듯이 말이다.
앞서 이야기한 남편과 했던 부부상담결과지에서 나는 파트너 지배성이 높게 나왔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통제적인 성향이 문제가 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남편을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은 '살만 빼면 더 멋있을 텐데... 내가 살 빼게 만들어야겠다.'였다. 다 괜찮은데 남편의 아쉬운 몸매 하나에 사귀고 나서 자주 남편에게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데이트할 때 서점에서 운동책을 사주고 기념일 때는 다이어트줄넘기를 선물로 줬다. 남편도 종종 운동하며 노력하는 모습은 보였지만 결국 남편의 몸매는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았다. 장난이지만 돼지라고 놀리기도 하고, 여전히 몸매지적하며 운동하라고 하는 나를 그때마다 잘 받아주는 남편, 성격이 좋네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남편과의 티격태격은 다르다, 늘 별것도 아닌 걸로 시작이 되는데 그게 뭐라고 서로 그렇게 싸우는지. 어느 날은 예전 연애했을 때 갔던 장소를 남편과 둘이 다시 갔는데, 나는 처음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근데 남편이 와봤다면서 그때 사진도 찍고 카페도 가고 그러지 않았냐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그 사람이 내가 아닌 것 같은 거다. 남편과 다른 여자와 온 걸 헷갈린 거 아니냐고 하니까 아니라고 분명히 자신이 기억한다고 펄쩍펄쩍 뛰었다. 사진을 뒤져보면 답이 나오겠지, 해서 사진을 올려봤더니 남편 말이 맞았다. 나는 남편이 제대로 설명을 안 하고 헷갈리게 설명을 해서 기억을 못 했다고 해명했고 남편은 여전히 펄쩍펄쩍 뛰며 자기가 맞지 않냐고 억울하다고 우겼다. 그렇게 둘이 티격태격하는데, 나는 이기적이지만 남편이 본인이 맞아도 내가 틀렸나 보다~ 하면서 유하게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저렇게 따지며 달려드니 너무 싫은 거다. 남편은 아닌 건 아닌 거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지지 않고 밀어붙이는 고집 센 성격이라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는데 저런 모습이 여전히 보기가 싫다. 나의 통제적인 성향은 남편이 내가 원하는 반응을 해주며 내가 싫어하는 남편의 모습이 안 나오게 만들고 싶다. 하지만 남편의 황소고집은 절대 꺾이지 않았다. 이런 점들이 같이 살면서 내내 힘들었다. 남편과 말싸움이 붙으면 항상 밀리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화가 났다. 남편의 쏟아지는 말들에 정신없이 당하고 있다 보면 정말 마음이 상했다. 내가 말을 하나 올리면 남편은 지지 않고 또 하나 아닌 둘 이상을 올릴 것이고 그러면 싸움은 더 심해지고 끝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말을 안 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면 최소한 한 명은 조용하고 상황은 정리될 테니까...
어느 날은 남편이 또 별것도 아닌 게 시발점이 되어 와다다다다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숨 막히게 열이 받았다. 미친 사람처럼 악 소리를 지르고 개비던 빨래를 다 집어던졌다. 쌍욕을 했다. 남편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다. 많이 놀랬는지 그날은 조용했다. 그 후론 너무 화나면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남편을 대했고 그런 날은 와다다다가 멈출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