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죽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은 속으로 수천수만 번은 했고 자살시도도 상상으로는 수없이 했다.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건 운이 좋아서기도 하지만 겁이 많아서다. 몇 번은 시도도 해봤지만 죽지는 못했다. 작은 용기를 내 비겁하게 죽으려고 했던 몇 번의 헛수고들.
25살의 봄이었다. 자취를 했던 나는 일을 그만뒀었고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갈지 막막했다. 나에게는 ‘병’이 있는데 잘 다니던 회사도 어느 날 갑자기 때려치우는 고질병이다. 다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이 충동적인 행동은 결국 몇 개월 일하고 그만두고를 반복해 쓸 경력을 없게 만들었다.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다 그만하고 싶었고 그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약봉투를 들어 안에 있는 약들을 다 털어냈다. 몇십 알의 약을 보며 ‘이 약을 먹으면 죽을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죽기엔 양이 좀 아쉬워보이 기도 하고 안되면 깊게 잠들었다 일어날 수 있겠다 했다. 그래도 혹시 죽을 수 있으니까 엄마에게 문자로 오후에 집에 와달라고 했다. … 누군가 도어락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였다. 엄마는 널브러져 있는 나를 보자마자 패대기쳤다. 머리를 뜯고 발로 차고 손으로 때리고 그렇게 실컷 맞다 결국 엄마는 가위를 들고 와 긴 머리를 단발로 잘라버렸다. 웃기게도 그때 내가 든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엄마는 나를 포기하지 않네, 모두가 나를 떠나고 외면해도 엄마만이 유일하게 연락할 수 있고 나를 구해줄 수 있었다.
힘든 시간이 지났고 나는 괜찮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고질병은 고쳐질 듯 고쳐지지 않았고 원래 임신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결혼을 하고 더 심해졌다. 정신과약을 먹으면서 아이를 임신한다는 건 아이의 자폐나 기형확률을 높이는 절대금기사항이다. 임신 때 먹어도 되는 약이 있긴 하나 내가 먹고 있는 약은 아니었다. 약에 대한 의존성이 안 그래도 높은 편인데, 하루라도 안 먹으면 손이 떨리고 불안도가 올라가는데 임신을 하면 약을 끊어야 한다. 나는 약을 끊을 자신이 없었다. 몇 번 단약을 시도해 봤지만 돌아온 건 금단증상, 불면과 극심한 불안증상으로 단체생활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임신은 하고 싶었고 신경과에 들러 정신과약을 신경과약으로 대체처방해 달라고 하거나 아예 그냥 약을 안 먹고 버티며 최대한 약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노력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상태가 안 좋아졌다. 표현할 수 없는 이 불안은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희망이 없었고 죽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를 출근하지 않고 마라탕과 소주를 배달시켰다. 소주를 마시고 취하자 또 나는 약봉투에 있는 약들을 다 털어 입안으로 삼켰다. 삼키자마자 엄청난 구역질이 올라와 먹은 약들을 다시 토해냈다. 잠이 와서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온 남편은 거실을 보자마자 내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도 남편을 빤히 쳐다봤다. 남편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계속 뚝뚝 흘러 자꾸 내 얼굴에 떨어졌다. 그렇게 일분 간 서로 쳐다보다가 남편은 나를 꼭 안아주며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엄마는 나를 때렸는데 왜 이 사람은 날 안 때리지, 의아했지만 그런 남편이 고마웠다. 남편은 나보고 쉬라 하고 내가 토한 것을 마저 치우며 집안일을 했다.
다음날 남편이 연차를 내서 나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갔다. 강을 보여주고 싶다고 데려갔다가 주차할 곳이 마땅찮자 결국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동네 주변 맛집을 찾아 잘 나가는 메뉴를 다 시키곤 나에게 먹였다. 다 먹곤 나와 함께 다니던 정신과 병원에 갔다. 나는 왜 이렇게 빨리 왔냐는 의사의 질문에 “약을 다 먹었어요.”라고 말하곤 한참을 죄인처럼 앉아있다가 상담실을 나왔다. 늘 지어주던 2주 치의 약이 아닌 3일 치의 약이 주어졌다. 예전에도 그랬다. 치료받고 있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 앞에서 자살시도했다는 말을 꺼내는 건 정말 힘들다. 나를 살리는 약이 나를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