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의 대물림
애착은 대물림된다. 영국의 임산부들을 대상으로 한 피터 포나기의 연구에서 임산부의 애착관계 및 내적 작동 모델을 토대로 앞으로 태어날 아기와 형성될 애착관계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60~70퍼센트에서 엄마와 아이의 내적 작동 모델, 애착이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불안정한 애착 패턴이 나의 자녀에게도 반복된다니,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중 소수는 불안정한 애착의 연결고리를 끊고 안정 애착을 이루었는데,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했을지 예상되는 바다.
어릴 때 종종 감기에 걸려오면 목에 무언가 걸린 느낌이 들었고 밤마다 기침을 그렇게 했었다. 엄마는 내 기침소리에 잠에서 깨었고 약도 챙겨주었지만 그만 기침하라며 쥐어박았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맞기까지 하니 억울했지만 엄마가 때리고 난 후 기침을 최대한 참아보다 기침해도 소리를 작게 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나와 남편은 아직 아이가 없지만 강아지 한 마리를 2년 전부터 키우고 있다. 새끼 때부터 데려와 온갖 물질적, 정신적 사랑을 듬뿍 주며 키운 강아지인데 강아지가 1살을 맞이하고 이젠 성견이라고 불러도 될 나이가 되자 강아지에게 화가 나는 일이 많이 생겼다. 정성으로 키워서 이제 다 컸는데 아직도 미숙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강아지는 어릴 때부터 차만 타면 멀미를 하며 토를 해서 '성견이 되면 덜 해지겠지...' 했는데 아니다. 가까운 거리를 잠깐 드라이브해도 차에서 토를 한다. 그럴 때마다 물티슈로 다 닦고 봉투에 잡아매어서 버리는데 차에서 토해놓고 집에 와서도 다시 토를 몇 번을 하는 것은 무엇인지. 토를 치우다 보니 결국 화가 나서 강아지한테 소리치고 엄마처럼 한 대 쥐어박았다. "왜 너는 다 컸는데도 아직도 토를 하니, 다 컸잖아!"
강아지는 사랑을 많이 받고 커서 버릇도 없고 엄살쟁이에 고집도 센데, "이리 와." 하면 절대 이리 오지 않는다. 기웃거리긴 해도 도망 다니며 밀당하는 모습이 얄밉다. 훈련을 해도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진짜 이리와야 할 때는 안 온다. 산책할 때도 늘 갑자기 잡아서 들고 산책줄을 채워서 나간다. 다른 집 강아지들은 산책하자면 좋다고 난리인데 얘는 도망 다니기 바쁘니 참 웃기는 일이다. 산책할 때도 늘 앞서나가 나를 끌고 다니고 산책하기 싫다고 드러누워 안 가기도 해 산책훈련을 일대일로 따로 받은 적이 있다. 훈련사님이 하는 말이 호기심이 많은데 쉽지 않다고 하셨다. 좀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그놈의 고집, 앞서나가려는 고집은 제재하지 않으면 여전하다. 강아지의 타고난 성질이 있고 좀 유별난 면이 있다고 생각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라고 정리했지만 가끔 '내가 잘못 훈련시켜서 이런 걸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투덜거리면 "난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강아지는 평생 애야."
평생 우리가 돌보아야 할 아이인 강아지를 나는 성견이 될 때까지만 잘 돌보면 스스로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나의 '아이자아'와 '부모자아'가 강아지에게 불쑥 나와 억울한 마음을 토한 것이다. "나는 엄마아빠한테 충분히 사랑도 못 받았는데 넌 사랑을 받았으니 잘해야지.", "10대 때부터 부모님은 나에게 돈 벌어오라고 했어. 넌 이미 다 컸잖아." 그래서 강아지의 미숙한 모습들을 보면 화가 났다.
나라는 사람은 부모님을 참 많이 닮았다. 유전은 무섭다고 당연히 외모도 부모님을 닮았지만 성격도 20~30대 엄마의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감정기복이 심했던 모습, 아빠처럼 사회성 없고 직장생활 못하는 모습 다 너무 닮아서 이런 내가 절망스럽다. 대물림하기 싫은데 결국 대물림할 것 같아서 무섭다. 결론은 내가 변해야 하는데 변하지 못할 것 같다는 한계를 심하게 느꼈고 심연 속에 빠져버렸다. 남편은 나에게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나도 있고 어머니도 있잖아."라고 말을 했고 나는 내가 이 사람까지 같이 수렁에 끌어드리는 것 같아서 그저 불쌍할 뿐이었다. 불쌍한 내 남편. 답이 없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