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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hira Oct 09. 2024

<장손-3> 이 땅에 뿌리내린 나무의 계절/세대 변화

데릴사위를 들여온 K-장녀가 낳은 딸, 늘봄의 시선 (스포)

한글날을 맞이하여, 스승의날(세종대왕 탄신일)과도 관련이 깊은 카네이션(성진이가 고모에게 준 꽃)을 다룬 마지막 리뷰 3편을 올려봅니다. 순서 상관없이 읽으셔도 좋습니다. :)


<장손-1> 콩/씨앗을 으깨 두부로 만들고 꽃을 태우는 집안

01. 콩으로 만들어내는 두부 : 가문의 씨를 잇는 남성과 간수를 붓는 여성

02. 남성의 다리와 '절뚝거림'

03. 꽃과 불, 집안의 여성 : 꺾이고 낙화하여 열매를 맺는 땅/흙의 열기

04. 옛 속담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장손-2> 이 집안이 겪었을 이 땅의 역사와 세대감각

05. 나이듦 : 우리나라의 역사와 시대/세대 차이

 + 그들의 이름(名) 뜻에 대한 상상(想像)

 + 집 밖에서 겪었을 한국 역사에 대한 단상(斷想)

 + 진짜와 가짜 : 자녀의 거울인 부모의 초상(肖像)



06. 순환 : 가족의 연결고리와 나무의 계절


한국의 산천을 이토록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 정말 오랜만인 것 같네요. 올해 <파묘>에서 산/고개를 구비구비 차로 돌아들어가는 장면 감탄하면서, 같이 본 지인과 이 길이 혹시 '임도(林道)'인지(*산림경영용 숲길로 법적으로는 도로가 아님)를 궁금해할 정도로 직업병이 좀 있어서, 개인적으론 풍경이 멋진 영화들을 많이 좋아합니다. :)


이 작품 한국의 자연풍광을 멋들어지게 담아냈을 뿐 아니라 세대 변화, 즉 인간의 생애주기계절에 은유하고 있다 여겨졌는데요. 후대에도 또 다시, 그리고 조금은 다르게 반복하며 순환될 거란 이야길 하고있단 점에서 인적으로 21년전 영화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떠올랐습니다. 

참고로 김기덕 감독 권력관계를 이용하여 여배우에게 차마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심각한 짓을 벌였던 미투 사건이 터진 뒤, 결국 코로나19로 머나먼 타국 땅에서 사망했습니다. 성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서 논란이 꽤 많은 감독이기도 하지요. 러나 십여년전 저는 영화 속 배경인 청송 주산지에 답사가볼 정도로 이 작품만큼은 꽤나 좋아했었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전불편하지 않게 본 작품인;;  최근에 배우관련 논란이 또한번 터진;;;)


오정민 감독의 <장손>은 위 작품과 달리 한 인간/세대의 일생을 죽 훑어보는 것이 아닌, 자녀(+사위), 부모와 고모(+며느리,사위), 조부모(+조상)의 3세대 가족들 이야기를 3계절의 시간으로 압축하여 한데 뒤섞어내고 있습니다. 남성여성의 시선을 모두 아우르며 한 가족으로서 이들의 연결고리를 담아낸 것이죠. 마치 을 으깨고 간수를 부어 한데 엉겨붙게 한 두부 공장처럼요. 아마 바로 그 점이 한 세대 전에 만들어졌던 작품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집안에서 으깨어진 남성과 쥐어짜진 여성이라는 다소 불편한 이야기를 다루되, 서로를 바라보는 그 시선만큼은 따뜻한 온기와 아이러니한 유머/해학이 담겨있다고 해야할까요?


여하튼 <장손>이란 작품 안에는 한국 산천의 풍경 뿐 아니라, 아프고 힘겨운 윗 세대들의 한국 역사가 담겨있는데요. 때문에 저도 이야기 꺼내기  불편한 옛 감독의 영화를 입에 올려보았습니다. 한 세대 전 가을 이맘때 쯤에 개봉했던, 영화계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계절에 관한 영화를 언급한 게 부디 <장손>을 만든 이들에게 실례(失禮)가 아니길...


여름은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로 뜨거운 에너지를 가진 3세대(+배우자)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데요. 즉, 윗대에 받아들여지든/아니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며 이미 키가 쑥쑥 자라나 청춘을 지나가고 있는 손주들이 눈길을 끕니다. 부디 가업을 잇는 문제로 받은 종손들 간의 싸움으로 인해, 오손도손 담배/잎을 같이 태우던 참한 데릴사위한테 쏟아진 시래기이 너무 뜨겁진 않았기를... 

해가 바뀐 뒤 다시올 봄/여름을 맞이하기 전, 갓 태어난 늘봄을 안으며 동생에게 두부공장이란 /業을 자신과 남편이 이어가겠다 말해주는 누나 미호. 아마 이들 남매 관계는 큰고모 혜숙-아버지 태근과는 조금 다르게 굴러갈 듯 하네요. 그나저나 사위 재호 작은고모에게 인사치레했던 것처럼 윗세대 사위인 동우가 살고있는 월남 쌀국수를 먹을 수 있을까요? 언젠가 늘봄이네 가족이 배꼽(탯줄의 흔적)을 맘껏 드러내놓고 다니며, 기일(미래의 제삿날)에 영어(English)를 쏼라쏼라하던 유진네 놀러가서 여유로운 여름 휴가를 맞이할 수 있을런지...


가을은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저물어가는 2세대(+배우자)의 아픔갈등을 다루더군요. 할머니란 이 떨어지고 난 자리에서 익어가는 열매인, 할아버지의 자식들이자 그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부모세대의 곪아터지기 직전의 이야기인 것이지요. 누가 이 집안의 결실을 이루었고 서로를 돌보고자 희생/業을 지었는가를 두고서 박터지게 싸우는 형제들입니다. 어쩌면 고모에게 딸이든 아들이든 녀/미래가 있었다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깨끗하게 세탁해놓은 통장을 성진이가 아닌 고모 앞으로 남겼을지도요.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남편을 위해 병실/교회에 모든 돈을 갖다바치는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란 함부로 헤아릴 수 없는 문제일 듯 합니다. 여튼 딸이 성씨가 다른 사위를 위하는 맘을 제끼고, 딸이 아들처럼 여긴 성진이의 이름 앞으로, 혜숙이 그동안 일/노동해왔던 결실을 차곡차곡 쌓아두신 할머니 할아버지.

이로 인해 낙엽이 붉게 물들고 씨앗이 흩날리듯 결국에는 뿔뿔이 흩어지게 된 가족들입니다.


겨울에는 기억이 온전치 않은 할아버지처럼 알 수 없는 기묘한 사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또 눈밭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할아버지는 모국(母國)어가 아닌, 린시절 제강점기에 배워야 했을 이제는 타국(他國) 언어인 일본어(にほんご)자기 혼자만 살아남았음을 토로하는데요. 손자를 아들로 착각해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며 땅 속에 비어있는 조상묘/뿌리원인이기도 한 '동족 상잔'으로 얼어붙은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단단히 여물어버린 이 1세대 할아버지/씨앗은 3세대 장손/씨앗이 결혼을 해서 미래의 4세대 증손주/씨앗 이어가도록 남몰래 일/자본을 만들어두었습니다. 2세대의 아버지/씨앗과 똑같이 할머니 오말녀의 배 속에서 태어난, 씨앗을 남기지 못한 고모/꽃을 꺾어 희생시키는 판을 깔아놓은 다음, 그 열매/종잣돈(seed money)을 건네주고는 눈밭을 걸어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야기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음...... 다른 를 가진 며느리와 손녀사위가 을 갈아서 간수를 부으며 두부를 만들고 있을 공장에는 차마 들르지 못하시는군요. 열매의 불길/에너지가 모두 꺼지고 눈밭에 모든 기억/흔적을 묻은 채, 에 묻어드리지 못한 부모님 묘소 방향의 깊고깊은 산 속(백두대간의 척추/根本/back-bone)으로 걸어들어가는 집안의 기둥, 혹은 대들보 같았던 할아버지. 그리고 그 기나긴 발걸음을 먼 발치에서 찬찬히 아가보는 카메라 시선. 에효...... 설마 본인의 시신 또한 리/흔적찾지 못하도록 이대로 도깨비처럼 연히 사라지하시는 건가요? (feat. <파묘>)



07. 다시, 봄 : 조카 늘봄카네이션을 받은 고모


땅 속 깊이 뿌리내린, 아마도 마을의 당산나무일듯한 커다란 고목 앞에서 사진을 찍은 이 3세대의 대가족은 앞으로는 다같이 모여 하하호호 웃을 날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집안에 아이가 있으니 영화 밖에서는 결국 다시 봄, 즉 4세대의 이야기가 이어질 듯 하네요. 언젠가 또 그 다음 세대의 가족들이 나무 앞에 모여서 하하호호 웃으며 사진찍는 날이 오긴 하겠지요.  나무가 잘려나가거나 뿌리 뽑히지만 않는다면요. (feat. <파묘>)

<묘하게 흥미로운 각 가족 구성원들의 시선, 1-2-3 찰칵~!>

한여름 무더위에 누나 미화의 에어컨 요청은 묵살당했으나, 자신의 씨앗/불알이 익어버린? 데릴사위 재호가 두부공장이란 가업/짐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비록 누나아버지에겐 할머니 할아버지가 막히지 않도록 선풍기만 세게 틀어주었지만,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다음 세대에서는 장손 뿐 아니라 4세대 늘~봄에게도 한 여름이 오면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을 날려줄거라 예상해봅니다. 아마 지나간 여름이 앞으로 살아갈 여름 중에서 가장 시원한 날들일 거라는...

(부디 지구 온난화/기후 환경 생각해서 인테리어용이 아닌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으로 구비하셨기를...ㅋ)


한편, 앞으로는 제사를 살아있는 사람들이 편한 시간(時間)에 올리고, 돔배기처럼 음식을 해외 즉 다른 공간(空間)서 수입해오며, 공장을 (人間)의 노동력이 아닌 자동화로 돌려서 부담없이 도록, 즉 후손들이 (代)를 이어가기 훨씬 수월하게 바뀌어야할 것 같습니. 그렇지 않으면 전통/역사가 아예 사라져버리고 집안의 명맥(命脈)이 끊어게 될테니까요. 이번 세대에는 미화+재호가 종손을 대신해 가업/전통/역사를 이어가겠지만 과연 그 다음 세대인 늘봄이 계속 이어갈런지는...


그나저나 꽃알러지가 있는 고모에게 붉은 꽃 화분을 전하고 불길의 근원을 깨달으며 뒷걸음질 친 종손, 그는 장가를 가서 4세대 종손을 만들도록 할아버지로부터 고모의 자산을 넘겨받았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의 진짜로 슬퍼하는 울음소리를 흉내내다가 갑자기 뚝! 그쳤던 성진은 통장을 보며 희미하게 웃는 듯 보이더군요.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거짓을 연기하는 배우이자, 윗 세대를 거울(상|)처럼 바라보며 자라난 이 집안 후손니다. (feat. <조커 : 폴리 아 되>) 그리고  아래에는 그림자가 생기듯, 할머니의 말마따나 큰 나무 아래에서는 이 자라지 못하는 법인데요. 아마 성진이는 영화배우의 을 쫓을 때에도 가끔씩 고모/고모부를 희생시켰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 떠오를 듯 하네요. 뿌~연 연기 속에 갇혀서 두부공장을 이어가고 있을 누나/매형도 떠오를 거구요.


...... 이 집안의 대문 이름이 '상서롭게 날아오르는(비상하는) 문'이라는 뜻의 '서익문 | 門翼瑞' 이던가요? 할아버지의 바램과도 같은 서로운 햇빛을 받으며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올라가기 위해  떠나는 성진이처럼, 나간 옛 시절/아픔들은 그렇게 훌~ 훌~ 바람처럼 날아가버릴 듯 합니다. 곧 다가올 봄날처럼 햇빛을 찬란하게 받은, 다리에 상흔이 두번 새겨진 장손의 발걸음 금은 고도 아프게 다가오더라는...


+ 한국 <장손>의 성진 | 이탈리아 <키메라>의 아르투


개인적으로 <장손>에서 성진이가 햇빛을 받으며 통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은 이탈리아 영화 <키메라>에서 목이 댕강한 대지의 여신 '키벨레' 석상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아르투와 비슷하단 느낌이 들더군요. 참고로 전  작품이 이탈리아의 남북 갈등을 다루면서 과거 영광의 시대, 즉 자국의 역사인 에트루리안시대/로마제국/르네상스/파시즘을 은유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는 파시스트 논란이 있는 사상 첫 여성 총리 멜로니가 캄파넬라(내각 이양종/bell)를 이어받아 집권했는데요. <키메라>는 감독이 같은 여성 지휘자(director)로서 제국주의의 흥망성쇠와 시대정신을 태양의 움직임/계절에 빗자연철학스러운 작품이라 여겨지더라구요. (feat. 토마소 캄파넬라: 갈릴레이를 옹호한 <태양의 나라> 저자, 로마 카톨릭 신학자)


<키메라> 이탈리아의 정치풍자극-1(태양의 나라)

<키메라> 이탈리아의 정치풍자극-2(엑소더스)

<키메라> 영화보다 잠든 이들에게, 개구리와 봄꽃


참고로 상상의 동물 키메라오이디푸스에게 하루/시간에 따라 변하는 다리 갯수로 간/Man에 대한 수수께끼를 낸 그 유명한 스핑크스를 낳은 엄마(혹은 남매)입니다. 그리고 4가지 동물(사자+인간+독수리+뱀)이 결합된 스핑크스보다 윗세대인 키메라는 사자+산양+뱀의 3가지 동물이 결합한 형태로 봄/여름/가을+겨울3계절을 의미하지요. 3세대를 계절에 담아낸 <장손>과 묘~하게 주제의식이 비슷해서 역시 '지구는 둥글다'는 걸 다시한번 깨달았네요. 그나저나 <장손>의 영어제목이 'Seasons of the House'(집안의 계절들)이 아니라 'House of the Seasons'(계절들의 집안)이라닛?!! 이거 완전 키메라(계절들의 융합체)가 따로 없군요. :D

참고로 <키메라> 또한 묘지와 머리방향/위치, 여름에 피는 (노란색의 해바라기, 미나리아재비 등)의 상징이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담겨있답니다. 여기 나오는 붉은 실 왠지 <장손>붉은 꽃일 것만 같은...


<장손>후반에 고모가 알러지가 있으니 다음엔 조화를 사오라고 말은 했지만, 부모님께 물려받은 집/유산을 스스로 불태우고 남편병수발에 지쳐있는 그녀는 조카가 내민 화해의 손길같은 붉은 꽃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언젠가 고모 혜숙에게도 고향 땅에서 벗어나 화분 흙에 새롭게 옮겨심어진 꽃처럼 조금 가렵고 힘겨워도 다시금 본인만의 인생 2막으로 진짜꽃을 피우는 봄날, 혹은 무언가 결실을 맺는 가을날이 찾아오길 바래봅니다. 뒤늦게 피는 가을 장미도 있긴 하요. 뭐... 상처가 많은 만큼, 꼭 꽃이나 열매를 안맺고 그저 바람에 흩날리는 들풀로 살다가더라도, 그녀 말대로 '믿음이 있다면 나빠보이지 않을 것' 같긴 하더라는...


화분에 심겨진 꽃은 얼핏 카네이션처럼 보이군요. 참고로 네이션은 나무처럼 추운 겨울에 지상부를 버틸 수 있는 기둥(柱)이 있지는 않으나, 뿌리(根本)가 살아있어서 이듬해에 다시금 줄기가 돋아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미국에서는 '어머니의 날' 상징이자, 국제적으로는 '노동절/근로자의 날(May Day)' 상징이며, 1월의 탄생화이기도 하지요. 특히 붉은색은 '당신의 사랑믿습니다'와 '건강을 기원하는 사랑'과 같은 감사/존경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 카네이션과 가정의 달(5월)의 역사/날짜 변화


<장손>에서 제사시간은 마치 독립운동을 하는 것마냥 작당모의한 남매의 계략?으로 밤 12시에서 전날 저녁 9시로 앞당겨졌습니다. 카네이션은 본래 한여름7~8월에 피는 지중해연안 원산으로 5월이 가장 수요가 많은 계절인데요. 자생적으론 햇빛이 길어지고 온도가 높아져야 꽃을 피우지만, 이제는 품종을 개량해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개화기를 앞당겨 사계절 내내 꽃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카네이션은 장미, 튤립, 국화와 함께 세계 4대 절화(꽃다발) 중 하나로 우리나라에일제시대인 1925년 처음 들여왔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1953년에 처음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1992년부터 교배 실험한 끝에 1997년 국산 1호 '샛별'이 탄생했습니다.


'어머니의 날'은 1907년 미국의 한 여성이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인들에게 흰 카네이션꽃을 나눠줬던 것에서 유래하는데요. 1914년 미국의 공식적인 휴일/전통(5월 2번째 일요일)으로 자리잡아,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붉은 꽃, 돌아가셨다면 흰 꽃을 가슴에 달고 하루를 보낸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한국전쟁 끝난 후인 1956년 우리나라에서도 '어머니날'(5.8)을 정해 카네이션꽃을 가슴에 달았드렸습니다. 이를 섭섭해하는 아버지들의 불만으로 1973년부터는 '어버이날'로 바뀌었구요. :D


한편, 1963년 어버이날이자 세계 적십자의 날(5.8)에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이 제2의 부모라는 뜻에서 병상에 누워있거나 퇴직한 교사들에게 안부를 물으러 찾아 걸 계기로 이 때 처음 '은사의 날'이 생겼습니다. 이듬해 '스승의 날'(5.26)로 이름이 바뀌고 1965년에는 세종대왕♥ 탄신일(5.15)로 날짜가 변경되었니다. 그러나 1973년 정부의 서정쇄신 방침에 따라 폐지되면서 국민교육헌장 선포일(12.5)로 통폐합되었다가, 1982년에 다시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스승의 날에도 어버이날처럼 카네이션꽃을 달아드리는 게 우리나라의 전통/국룰?로 자리잡았다는...


'어린이 날'은 1919년 3.1 운동 이후 소년회가 창설되면서 1922년 봄날처럼 '새싹이 돋아난다'는 의미로 5월 1일에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세계 노동절과 겹치다보니 좀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5월 번째 일요일로 옮겼구요. 그러나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자 1930년대 일제로부터 어린이날 행사가 금지되었고, 광복/해방 이듬해인 1946년 5월 첫번째 일요일인 5월 5일에 부활하면서 현재는 요일이 아닌 해당 날짜로 굳어졌습니다.

그나저나 5월에는 성년의 날이랑 부부의 날도 있던가요? 개인적으론 만 20세가 된 대학교 3학년때 성년례에 참여해봤다가 혼전순결 서약서를 보고는 영화 속 유진이처럼 빵~ 터졌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네요. 이거 지금 21세기 맞아?! 하며 깔깔 웃었던... 설마 요즘엔 전통 성년례 절차도 조금은 바꼈겠지요?

하여간 5월은 금전 지출이 매우 많은 시즌이기도... (통장이 텅~)


음... 혹시 이 꽃을 선물한 건 조카 성진에게는 고모어머니이자, 인생의 스승이었단 뜻이었을까요? 경험 가족 간의 불화는 "이 또한 지나가..."서 다시금 어찌저찌 잘 봉합되기도 하던데... 여하튼 조카넘 성진이 또한 조카딸 늘봄에게 화면(TV/폰/스크린)에 멋지게 나오는, 즉 정보화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본(本)을 보여주는 외삼촌이 되어주길 기원해봅니다.


이 리뷰는 데릴사위를 들여온 K-장녀가 낳은 딸, 늘봄의 관점에서 적어보았는데요. 일생동안 힘겹게 일하다 제작년 여름에 돌아가신 막내아들 아버지를 추억하며, 신부(father)가 되어 3대독자의 대를 끊고 맏사위인 제 아버지(father)께 짐을 맡긴 걸 미안해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내 외삼촌의 심정을 상상해보게 되더군요. 그나저나 동생넘아! 누나랑 같이 우리 이제  좀 들자~!


본가(本家)의 명절 풍경과 딸이 귀한 집, 즉 가부장제가 다소간 미러링 집안소회를 담은 에필로그가 세계 호스피스의 날(10월 2째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그럼 <장손> 시리즈는 여기서 이만 총총총...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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