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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렌 Sep 11. 2020

적성에 맞지 않아도 괜찮아

 

  오후에 누가 찾아 왔다. 두 명의 여학생이었다. 진로체험과 관련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내가 나의 일에 얼마나 보람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그런 질문에 대해 나는 준비된 답변을 가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좋지만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도 나쁘지 않아요. 적성에는 맞지 않아도 잘 할 수 있거든요. 보람이 없어도 일을 할 수 있어요.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면. 하루 여덟 시간 정도는요.”     


  나는 되도록 자기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얻으면 좋겠다고 했다. 퇴근 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니까. 적성은 밖에서 찾아도 된다. 


  “이데올로기보다 늘 생존이 더 중요했어요. 환경이 나빠지면 악한 본성이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건 중요한 문제니까 직업을 갖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여학생 중 한명은 작가가 꿈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글을 오래 써온 사람의 우울을 조금 아는 터라 그 여학생에게 그런 말을 하고 말았다.

  이야기 중에 어쩌다 내 마음도 조금 이야기하게 되었다.     


  “저는 쉽게 지루해하고 쓸쓸해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걸 인생의 기본값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인생의 기본값은 슬픔이고 행복은 잠시 앉았다 떠나는 거죠. 우리는 기본값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큰 괴로움을 느끼는 거 같아요. 우리 마음이 언제나 잃어버린 본전을 찾으려고 하니까. 인생의 기본값을 그렇게 받아들어야 저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어요. 내가 왜 이토록 지루해하고 쓸쓸해하는지. 그래야 저의 감정들은 자연스러운 게 돼요. 우울감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의 기본값을 행복으로 잡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잃어버린 웃음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작가가 꿈이라고 한 여학생이 말했다.     


  “저희들은 아직 어리니까 경험이 없어서 잘 웃는 거고 아저씨는 경험이 많으니까 이미 해본 거라 잘 안 웃는 거 아닐까요?”     


 “그렇게 이해해주면 저야 좋죠.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한 숟가락의 소금을 입에 넣으면 학생은 혀에 대자마자 짜다고 할 거예요. 하지만 노인들은 입속에 넣고 좀 삼킨 다음에야. 아, 짜다. 고 말하죠. 혀의 미뢰가 퇴화되었기 때문이에요. 기능이 망가진 건데 학생처럼 경험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해주면 우리야 좋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사를 끝내고 밥을 먹는데 어머니가 오늘 조상님들 기분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그러시는 거예요. 오늘 한 음식 중에 맛이 없는 게 없다고. 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탕국도 짜고 나물도 간이 맞지 않았어요. 저는 원래 음식에 불평이 없고 주면 고마워서 그냥 먹는 편이라 아무 말 안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 말을 들으니 슬픈 거예요. 그때부터 노인들을 자세히 좀 보았어요. 아는 분은 된장을 밥에 비벼 드시는 거예요. 맛있다고 하면서. 하나도 짜지 않은 것처럼. 미뢰가 망가진 거죠. 그래서 더 큰 자극이 필요해요. 경험이 많아서 심심해진 것이 아니라 감각이 망가진 거죠. 어쨌든 학생처럼 생각해주면 어른들은 고마울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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