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마로 기획하고 타입스크립트로 개발하며, 밤새우며 쓴 맞춤 청첩장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는 일들이 있었다. 초딩 여자라면 의례 다니던 피아노학원을 다니다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입시 전문 피아노 학원으로 옮긴다거나, '운동해야지...'라는 강박에 쌓여서 등록했다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끝에 기어코 지도자과정을 등록한 요가,
그리고 '나는 사진만 찍고 결혼식은 안올리 거야!'라고말하고 다녔지만 어느새 남들이 '광기다 광기...'라고 말했던 결혼식.
돌이켜보면 욕심이 생기던 일들은, 잘, 하고 싶고 재밌어서 온전히 진심을 쏟던 일들이다.
결혼식 로망? 오히려 그런 건 '처음'엔 전혀 없었다. 결혼식을 하는 게 큰 의미인가, 대수인가, 싶었다. 내가 가본 결혼식들은 똑같았다. 신부가 대기실에 앉아 사진을 찍고 30분 만에 식을 하고 밥을 먹고 끝나는 결혼식.
'결혼'식이 아닌 결혼'식'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하기 싫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심지어 우린 이미 같이 살고 있으며, 부모님이랑 왕래도 잦은데? 결혼한다고 달라지는 게 더더욱 없었기에, 더 특별하게 하고 싶었다.
결혼식과 순서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혼식을 빛내주고 뜻깊게 하는 건, 무엇보다 우릴 축복해 주러 와주는 사람들, 하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뜻깊게 부르고 싶었다.
회사를 다녔지만, 사람들에게 모두 청첩장을 드리지 않았다. 하물며 간간히 연락하는 친구들에겐 더더욱 연락하지 않았다. 60살이 넘어서 나중에 결혼 앨범을 봐도, 누군지 알고 여전히 만나는 사람들과, 그날만큼은 더더더욱 함께이고 싶었다.
감히, 시간을 약속하는 백년해로를 선언하는 자리에,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할 사람들만 부르고 싶었다. 어른들의 지인들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우리의 지인들은, 꽉 안아도 어색하지 않을 사람만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해도 이렇게는 못할 듯이 젊음을 태웠다.
우선 한창 코딩에 온 시간을 쏟고 있는 남자친구를 들들 볶아 우리만의 청첩장을 만들었다.
우리가 만든 청첩장의 특징은,
1. 사람마다 다른 문제를 풀어야 청첩장에 들어갈 수 있으며 2. 그 안엔 우리의 8년간의 연애얘기를 적었다. 3. 2부 이벤트를 위한 순서를 안내했다. (퀴즈와 뽑기, 베스트 드레서) 4. 드레스 코드를 알렸다. 5.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마다 그동안 감사의 편지를 썼다.
입장 화면부터 다른 청첩장들과는 다른,
안에는 이런 콘텐츠들을 채워 넣었다.
스토리를 알고, 결혼식에 온다면, 우리가 읽는 혼인 서약서가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라는 심정으로.
청첩장의 기본인 예식장의 위치와 시간, 그리고 결혼사진들, 그리고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하던 드레스 코드.
이벤트를 위해, 쿠팡으로 아크릴 상자를 뽑고 뽑기 공을 사고..., 그 전날까지 선물 포장을 했다.
가장 좋은 상품은 30만 원짜리 호텔 식사권이었고, 가장 단가가 낮은 상품은 귀여운 장바구니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그리고 대망의,
한 사람 한 사람 애정을 듬뿍 담아
따로 쓴 편지
청첩장의 반응은, 다들 자신만을 위한 청첩장에, 그리고 화룡정점인 편지를 읽고 한껏 감동받아했다.
사실, 어느 때보다 진솔하게 편지를 적기도 했다.
삶의 가장 힘든 순간에 함께해 준 친구들에게 허심탄회하게, '그때 네가 있어서 삶을 살았고, 그래서 이렇게 결혼까지 왔다'라고, 고마움을 표현했고,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때에 '더 오래도록 함께 있어 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땐 나도 어려서 잘 몰랐다'라고 그동안 말 못 한 미안함을 전했다. 또는, '그때 너무 질투가 나서 네게 뾰로통하게 굴었었다, 이젠 나도 마음이 많이 자라나서 질투하는 만큼 축하해 줄 수 있게 됐다.'며 궁핍했던 마음을 고백했다.
그래서 청첩장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고, 더 힘들었다.
퇴근하고 남편과 책상에 나란히 앉아 거진 한달간 12시가 넘어서 잠들고 6시에 출근하며, 정말 대학교 때 실습과 과제, 대외활동에 시헌 공부까지하는 듯한, 마치 생명을 깎아먹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이 사람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간신히 견디던 날도 있었고, 지금도 역시 그런 날들이 있다.
결혼식이 끝난 지금은, 더욱,
결혼식의 주인은 신부도 신랑도 아닌, 하객들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들의 진정 어린 박수와 웃음, 환호 속에서 나는 진정으로 기쁠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