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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May 14. 2024

난 육아 체질이 아니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원래 난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침은 질질 흘리고, 더러운 짓만 골라하며, 시끄럽게 울어대는 아이의 이미지만 그려질 뿐이었다. 게다가 급소인지도 모르고 주먹이나 발로 힘껏 급소를 내리치며, 장난이라고 깔깔대는 모습도 꼴 보기 싫었다. 이렇게 확고해진 이유는 친척 조카들을 두루 만나 오면서 경험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픈 것이구나!'라는 걸 어린 시절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내가 아이를 꿈꾸었다. 아내와 나를 닮은 아이이니 특별할 것이라 여겼다. 인큐베이터에서 아이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새빨간 몸에 몇 가닥 없는 머리털. 힘껏 울어대느라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내 아이가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열심히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를 확인시켜 주는 간호사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분만실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병원에서 창문너머로 아이를 몇 번 정도 면회했다. 몸이 회복된 아내를 부축하여 같이 간 적도 있다. 아내가 말했다.


"눈은 오빠를 닮은 것 같고, 이마랑 귀는 나를 닮은 것 같아. 호호, 귀여워. 그렇지?"


아내는 어릴 적부터 아이를 좋아했다고 했다. 친척 동생들과도 잘 놀아줘서 친척들이 고마워했다고 했다. 내 아이니까 더 이쁘다고 말한다. 나에겐 아직 낯설기만 할 뿐인데도, 아내는 이 핏덩이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품으로 받아들였다. 엄마의 모성애는 역시나 위대한 것이었다.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이제 온전히 아내와 내가 아이를 돌봐야만 했다. 서툰 손으로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켰다. 처음 봤을 때보다 아이 얼굴이 평화로워졌다. 이제야 내 아이가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덩달아 난 육아 체질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외모와는 다르게(?) 난 깔끔한 상태를 좋아했다. 내 몸과 내 집, 내 주변 환경이 정돈된 상태로 있어야 마음이 편안했다. 하지만 아이가 있다면 이는 포기해야 한다. 이유식의 반은 아이 턱을 통해 바닥과 주변 집기들로 흘러가고, 내 어깨는 아이의 침과 토로 범벅이 되어 있다. 장난감은 아무리 정리해도 정리가 되지 않으며, 이유식을 시작한 아이의 응아 냄새는 지독해졌지만, 쓰레기를 곧바로 내다 버릴 여력은 없었다.


  난 게다가 계획형 인간이라 마음속으로 하루를 시간 별로 쪼개어서 스케줄을 미리 점검하는 편이다. 그 말인즉 아이가 언제 일어나서, 언제까지 밥 먹고, 언제까지 야외 놀이를 한 다음, 언제 목욕을 하고, 언제 누워서 잠드는 것 까지를 시간 순으로 미리 예상하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절대로 계획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이가 예상보다 일찍 일어나서 울어 재낄 때가 있고, 밥을 잘 안 먹어서 밥 먹는 시간이 길어질 때도 있다. 놀다가 다쳐서 일찍 집에 들어와야 할 때가 있고,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눈을 말똥 말똥 뜨며, 혼자 뒤집기를 하면서 끙끙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시간이 지연되거나 계획이 틀어져버리면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하루를 망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내는 아이에게 허용적이었지만, 나는 아이에게 엄격한 편이었다. 아내는 아이 옆에서 밀착 케어를 했지만, 나는 아이가 최대한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이가 자전거 타다가 넘어지면 아내는 얼른 안아주었지만, 나는 크게 다친 게 아니면 툭툭 털고 일어나길 바랐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아내는 잔소리를 했지만, 나는 화를 내었다. 행동 교정은 화를 낼 때 분명 더 빠르고 확실히 고쳐진다고 여겼다. 나는 이런 아내와의 차이를 보고 아빠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혹시 아이 낳은 걸 후회하는 건 아닐까?'


아무리 깊게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었다. 아이는 내게 축복이었고 선물이었다. 아이 없는 삶은 이젠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저 내가 서툰 아빠이고, 육아 체질이 아닌 아빠인 것이다. 육아도 체질이 있다는 것을 아내를 보고 알았다. 아내는 아이의 행동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아이가 어떤 옷과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를 고민하며 즐거워했다. 아이가 실수로 우유를 쏟거나, 바지에 볼일을 보거나, 컵이 깨져도 아내는 아이를 오롯이 걱정해 주었다. 의도가 없는 아이의 실수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천천히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주었다. 5년 간 아이를 키워오며 아내는 정말 육아 체질이라는 걸 난 점차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육아 체질이더라도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확실히 아이에게서 오는 스트레스는 나보다 적어 보였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육아 체질이 아닌 아빠는 서툴고 어설펐다. 그래도 아이는 아빠 옆에서 잘 자주었고, 내가 장난치면 목청껏 웃어주었고, 먹을 게 있으면 내 입에 하나씩 넣어주었다. 육아 체질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만의 방식을 포기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 최대한 자율적으로 맡기면, 내가 육아 체질이든 아니든 크게 상관이 없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 함께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아이가 장난감을 어지르면 어디까지 어지를 수 있는지 내버려 두었다. 아이가 실수로 무언가를 흘리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보았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게 있다면, 내 계획을 수정하였다. 아이와 말이 통하고 나서는 아이의 의견을 자주 물어보게 되었다. 동물원을 가면 좋을지, 키즈카페를 가면 좋을지를 물었고, 김밥을 먹으면 좋을지, 국수를 먹으면 좋을지를 물었다. 그렇게 육아 초보 아빠는 5년간 아이와 하나씩 맞춰 갔다. 생각해 보면 육아 체질이 아닌 것이 아니라, 육아에 서툰 초보였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내는 어떻게 그렇게 처음부터 아이를 잘 돌보았을까. 나랑 똑같이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서툰 아빠는 오늘도 아이에게 귓속말을 한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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