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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un 16. 2024

왜 아빠는 주말이 더 힘들까?(1)

"아직 토요일인데..."

  주말이 되었다. 주말만큼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눈을 뜨고 싶지만, 평일 기상 시간에 익숙해진 몸뚱이가 갑자기 소스라치며 눈을 뜨게 만든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5시 40분이다. 일부러 알람도 꺼놨는데 어떻게 평일 기상 시간에 딱 일어나지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심지어 어제 오랜만에 이직한 회사 후배를 만나 술 마시느라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음에도 눈이 떠지는 시간은 동일했다. 날짜를 확인하여 토요일이 맞다는 사실을 스스로 주입시키니, 몸이 무안했는지 빠르게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이 스르르 감겼다. 분명 이제 막 눈을 다시 감았는데, 무언가 알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잠만 잤는데... 벌써 월요일인 건가?'


눈과 귀가 잠에서 깨 의식이 또렷해졌을 때 아직 토요일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다섯 살 난 딸아이가 내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일어나, 오늘 나랑 놀아야지! 어제도 못 놀아줬잖아!"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핸드폰 시계를 보니 8시 반이다. 아이는 등원 시간에 몸이 맞춰져 스스로 눈을 떴지만, 아빠가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분명한 건 아이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소리에 아내도 잠에서 깼을 테지만, 모른 척 눈을 꾹 감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어제 내가 술 마시고 늦게 왔으니까...'



아이의 입을 닫기 위해서 몸을 빠르게 일으켰다. 아이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빠, 오늘은 어디가?"


자연스레 아이의 아침 준비를 하면서도 주말 계획을 아이에게 간략히 브리핑해 주었다.


"오늘은 이 장난감이랑 옷 사러 가고, 내일은 발레 수업이랑 교회 가자! 어때? 재밌겠지?"


아이는 방방 뛰며 "와~!" 소리를 질렀다.


  아이에게 아침을 챙겨주고, 아이의 비위에 맞춰 여러 가지 놀이를 해주었다. 딸아이답게 소박하고 잔잔한 역할 놀이 같은 걸 즐겨했다. 티니핑에 한창 빠져있는 아이는 하츄핑과 샤샤핑을 제일 좋아하는데, 함께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손님 역할을 하면 되었다.


"와, 하츄핑이 만들어준 케이크 너무 맛있다!"

"이거 나도 같이 만든 거야! 샤샤핑도."

"와! 셋이서 같이 만들어주니까 더 맛있다."


갑자기 흥미가 떨어진 아이는 집 만들기 놀이를 하자고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놀이 중 하나가 집 만들기였다. 왜냐하면 집 안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들고 와 울타리를 치느라 집 안 꼴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벌써 치울 걸 생각하니까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어차피 아내가 일어나기 전까지 시간을 때워야 하므로 함께 하기로 했다. 먼저 나는 빨대를 연결해서 집의 골격을 만드는 역할을 했고, 아이는 집을 채우는 역할을 했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장난감까지 다 들고 와 만들어진 집을 구석구석 채우기 시작했는데, 벌써 거실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내가 뒤늦게 일어나서 집안 꼴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또 집 놀이 하고 있어? 좋겠네!"


아이는 아내의 비꼬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순수함을 내비치며 엄마에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봐봐 집 예쁘지? 여긴 하츄핑 방이야!"

"와! 멋있네~~"


아내는 표정은 심드렁한 채로 목소리만 들뜬 모습을 가장했다. 그리고는 아내에겐 아침 겸 이고 우리에겐 점심인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놀다 보니 벌써 점심 먹을 때가 된 것이다. 그래도 군말 없이 아내가 점심을 해주는 이유는 회사에서 받은 상품권으로 아웃렛에 가서 아이 장난감도 사지만, 아내의 여름옷도 장만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우린 가산에 있는 아웃렛으로 향했다. 가산은 우리 집에서 꽤 거리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마음먹고 가야 한다. 이 날도 어김없이 차가 막혀 두 시간이나 걸렸고, 운전하는 것만으로 벌써 체력의 반이 소진된 것 같았다. 우선 쇼핑을 하기 전에 아이가 떼쓰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장난감 매장부터 들렀다. 딱 한 개만 살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아이는 한참을 고심했다. 한 십 여분 간 이것저것 만져보던 아이는 결국 티니핑 장난감을 골랐다. 어차피 티니핑이지만 그 안에서도 아이는 하츄핑으로 할지, 샤샤핑으로 할지, 조아핑으로 할지, 말랑핑으로 할지, 포슬핑으로 할지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매번 하츄핑만 고르던 아이가 오늘은 어떤 변심이 있었는지 샤샤핑 장난감을 골랐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하츄핑으로 안 사도 괜찮아?"


아이는 굳은 결심을 한 듯 단호하게 "응!" 하고 답하며, 자기가 고른 샤샤핑 장난감을 샅샅이 만져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유모차에 앉힌 뒤 장난감 포장을 뜯어 작동이 되게끔 해서 건네주었다. 아이는 역시나 새로운 장난감에 빠져 있느라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빠르게 옮겨 아내와 내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워낙 쇼핑을 좋아하고 이것저것 입어보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나는 몇 번 입어보고 몸에 잘 맞고 편하기만 하면, 디자인이 어떠하든 할인이 많이 되는 옷들을 골랐다. 나는 회사에서 입을 티셔츠 두 벌과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기 위해 입을 반바지 한 벌을 금방 사들였다. 아내는 이때까지도 옷 한 벌 사지 못하고 계속 옷을 들었다 놨다 하며, 숨겨둔 보물을 찾듯 미간을 찌푸리고는 소매 디자인 하나까지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었다. 점점 아이 신상 장난감 흥미가 떨어지고 집중력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집에 언제가?"


쇼핑한 지 한 시간이 채 안 되었지만, 아이의 집 얘기에 우린 화들짝 놀랐다. 시간을 보니 저녁을 먹을 때가 되어 일단 아이의 배를 채우고자 했다. 지루한데 배까지 고프면 엄청나게 떼를 쓸 것이기 때문이다. 식당가에 가니 미역국 가게가 있었고, 여느 아이나 다름없이 우리 아이도 역시 미역국 정식을 잘 먹었다. 더불어 우리도 건강식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어 속이 편안했다. 저녁을 먹은 뒤 쇼핑을 이어하기 위해서는 이미 장난감에 흥미가 떨어진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손에 쥐어주어야만 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솜사탕을 하나 사주고, 유모차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스케치북 세트를 하나 사주었다. 나무 펜으로 긁으면 자국을 따라 검은색 바탕이 벗겨지면서 화려한 색깔이 나오는 그런 신기한 스케치북이었다. 일단 나도 내 옷은 살만큼 다 샀기 때문에 남은 상품권 금액으로 아내의 옷만 몇 벌 사면 되었지만, 뭔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라 유모차를 끌며 아내를 따라다니고 있는 나 조차도 점차 지치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왕복하며 이 층에서 저 층으로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문득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사람처럼 나는  "어?" 하고는 엘리베이터에서 손가락으로 무언갈 가리켰다. 놀란 아내와 아이는 내 손가락 끝을 따라 눈길을 옮겼다. 거기엔 아웃렛의 층 별 안내도가 있었는데, 지하 1층에 키즈카페가 있었던 것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어느새 키즈카페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불편한 마음이 있던 아내는 내심 안심했고, 아이는 신나서 방방 뛰었다. 아내 혼자 편하게 쇼핑하도록 하고 나는 아이와 함께 키즈카페에 갔다.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아이들이 많이 없었다. 친구들이 없으면 대안으로 아빠를 끌고 다니는 우리 착한 딸아이는 새로운 키즈카페에서 손을 끌고 다녔다. 한 시간가량 아이의 손에 이끌린 채 재미없는 놀이를 재미있는 척하느라 진을 다 뺐다.


  키즈카페도 지겨워진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 어디 있어?"

"아, 엄마 아직 옷 고르고 있나 봐."

"나 그럼 엄마한테 갈래!"

"엄마가 옷 다 사면 여기로 온다고 했는데?"

"아냐, 우리가 엄마한테 먼저 가자."



  8시 반쯤이 지나 키즈카페가 문을 닫을 때가 되어서 아내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까지 딱 옷 한 벌만 사놓은 상태였다. 아직 상품권 금액이 두 벌정도 더 살 수 있는 만큼 남아 있었는데, 오늘 멀리서 온 김에 다 쓰고 가야만 했다. 일단 전화를 끊고 아내가 있는 곳으로 아이 유모차를 끌고 갔다. 아내는 우리 모습을 보고 미안했는지 두 벌을 빠르게 골라서 입어보고 맞으면 이걸 사겠다고 허둥대며 피팅룸으로 급히 들어갔다. 아이가 앉은 유모차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함께 스케치북 두 장을 그리고 나니 아내가 웃으며 산 옷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상품권 다 털었어. 집에 가자!"


9시가 넘어서야 아웃렛에서 나온 우리는 차가 막히지 않아도 한 시간이나 걸리는 집으로 향했다. 운전을 하며 '내일은 혼자서 좀 쉴 수 있는 틈이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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