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완도에 다녀오느라 기차를 탔다. 익숙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흔히 기억하는 기차 소리, 그러니까 ‘덜커덩, 덜커덩’하는 규칙적인 리듬이 없어졌다. 아이들은 그것을 ‘쿵딱쿵딱 노래’라고 부르고, 어른들은 추억의 배경음으로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사라진 거다. 책을 보느라 쳐박았던 고개를 들어 귀를 기울여 보니, 바람이 스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마치 전기차가 달릴 때의 ‘거의 무음’과 비슷했다.
자동차의 경우는 이미 익숙하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부르릉’하며 도로를 지배하던 시절은 저물고, 이제는 전기차가 ‘스윽’ 하고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문제는 이 ‘소리 없음’이 때때로 위험을 부르기도 하지만. 보행자가 차가 다가오는 줄 모르고 무심히 길을 건너는 순간이 늘어난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들은 인위적으로 ‘전자음’을 넣는다. 마치, 잃어버린 ‘소리의 존재감’을 보충해 주는 장치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기차는 왜 이렇게 조용해졌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철로의 기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레일을 일정 길이로 이어 붙여 사용했다. 1970년대 한국에서 주로 사용된 레일은 25m(미터) 짜리 레일이 표준이었다. 당시 제강 기술 한계와 운송 문제 때문에 지금처럼 50m 이상 긴 레일을 생산·부설하기 어려웠던 거다. 그러니 연결부마다 ‘틈’이 있었고, 바퀴가 그 틈을 지날 때마다 ‘철커덩’ 소리가 났다. 기억하는 “덜커덩, 덜커덩” 하는 소리가 바로 이 25m 레일 이음매에서 발생했다. 요즘은 ‘장대레일’이라고 해서 수십, 수백 미터짜리 레일을 통째로 깔아버린다. 연결부가 거의 없으니 규칙적인 진동 소리가 사라지고, 대신 ‘슉’ 하는 바람 소리와 부드러운 마찰음만 남는다.
즉, 우리가 잃어버린 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철도의 기술 변화가 만든 ‘생활의 배경음’이다. 자동차가 엔진음에서 전기음으로 넘어가듯, 기차도 소음을 줄이고 승차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산업 기술은 불편을 없애고 안전과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감각은 종종 새로운 적응을 요구받는다. 참고로 장대레일은 보통 200~400m 이상을 현장에서 용접으로 이어서 만들고, 현재는 KTX 구간 등은 수 km 단위로 이어진 연속레일을 사용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소음이 줄어든 게 좋은 걸까, 아니면 우리는 무언가 중요한 걸 잃어버린 걸까. 예전의 기차 소리는 분명 소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여행의 리듬이자 풍경의 일부였다. 엔진 자동차의 소리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불필요한 소리로 치부되지만, 그 덕분에 사람들은 등 뒤에서 다가오는 자동차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결국 소리란, 단순히 듣는 자극이 아니라 ‘살아가는 감각의 언어’다. 너무 조용해진 도시는 안전을 위협하기도 하고, 너무 시끄러운 도시는 사람들의 귀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적절한 소리가 만들어내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차 바퀴 소리 하나에도 시대가 담겨 있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 점점 더 조용한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 있는 ‘덜커덩, 덜커덩’의 리듬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우리가 소리와 함께 살아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언젠가 전기차의 전자음을 듣고 지금 세대가 “아, 저 소리 들으니 옛날 생각난다.” 하고 웃을 날도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