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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Sep 11. 2024

타임스퀘어에서 길을 잃다

[뉴욕 지역 소개 시리즈] 뉴욕 직장인의 기피 대상 1위

뉴욕 하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위풍당당한 자유의 여신상일 수도, 넓디넓은 센트럴 파크일 수도, 킹콩이 매달려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나는 뭐니 뭐니 해도 타임스퀘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밤늦게도 꺼지지 않고 환히 빛나는 수많은 네온사인들이 왜 뉴욕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라고 부르는지 알게 한다. 눈앞을 가득 메운 전광판 속 광고들은 나를 미래 도시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각양각색의 광고들 사이에서 한국의 브랜드와 연예인이 등장할 때면 애국심이 솟아오른다. 특히 연말이 되면 그 화려함은 절정에 달한다. 타임스퀘어의 연말 기념 장식과 광고들이 크리스마스와 새해의 설레는 기분을 더욱 고조시켜준다.


타임스퀘어는 관광지로는 최고의 장소일 것이다. 순식간에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고 매료시킨다. 빨간 계단에 올라 발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면, 이곳이 정말 문화의 교차로임을 실감하게 된다. 각 나라의 광고들이 전광판을 장식하고, 그 아래로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사람들이 넘실댄다. 길 한복판에는 뜨거운 연기를 뿜어내는 음식 카트들이 즐비하다. 그 카트들에서는 소시지, 프레첼, 케밥 같은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바삐 지나가며 저마다 다른 풍경을 만든다.


관광객들은 감탄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셀카를 찍고 있다. 그들은 타임스퀘어의 화려함에 넋을 잃고, 전광판에 등장하는 각종 광고와 조명들을 열심히 찍어둔다. 또 음식 카트 앞에서 프레첼을 사 먹거나, 각종 기념품을 고르는 데 여념이 없다. 반면, 현지인들은 그 모든 것을 무심하게 지나친다.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길을 가로지른다. 그들에게 타임스퀘어는 단순히 혼잡한 출퇴근길일 뿐이다. 그 속에서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네온사인과 광고판은, 그저 일상적인 배경음악처럼 흘러간다.


뉴욕의 직장인들에게 타임스퀘어는 출근길에 피하고 싶은 장소 1위이다. 이른 새벽을 제외하곤 밤낮 가리지 않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기 때문이다. 뉴욕의 대표적인 관광지답게 타임스퀘어는 압도적인 관광객 수를 자랑하고, 그만큼 거리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 또한 넘쳐난다. 특히 인형탈을 쓰고 사진을 찍어주거나, 무료라며 CD를 나눠주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사진을 찍거나 CD를 받는 순간 바로 돈을 요구할 것이다. 거기에다 길거리 공연, 그리고 끝없이 흘러나오는 Empire State of Mind 같은 뉴욕을 상징하는 음악은 정신을 쏙 빼놓는다.



내 얘기를 해보자면, 뉴욕에 온 지 삼일 만에 바로 출근을 해야 했다. 어마어마한 길치인 나는 첫날에 구글맵을 의존해 더듬더듬 찾아갔다. 그런데 구글맵은 가끔 화살표를 엉뚱한 방향으로 가리키곤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그저 지도를 따랐는데, 어색해진 주변에 걸음을 멈추고 눈앞의 풍경을 바라봤다. 갑자기 내 앞에 타임스퀘어가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그래,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출근길에 타임스퀘어를 지나는 거였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직장이 반대 방향이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다시 구글맵을 확인하며 휴대폰을 요리조리 돌려보니, 화살표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느 순간 GPS 신호가 이상하게 잡혔던 것이다. 길치인 내게 구글맵이 사라지다니! 이제는 표지판만 보고 감으로 가야 했다. 얼추 외워둔 회사 주소 기억을 더듬어 보며 숫자가 가까워지는 대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틈새 Tip: 나 같은 길치들은 구글맵을 켤 때 GPS가 방향을 인식할 시간을 주자. 휴대폰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내가 보고 있는 방향과 지도가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사람들로 가득한 타임스퀘어에서 나는 발걸음을 이리저리 피하며 달렸다. 저 멀리 노숙자가 길에서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뉴욕에서는 흔한 일이다. 빠르게 지나가려는데, 그가 나를 보고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흠칫 놀랐겠지만, 지금은 출근이 더 중요했다. 그보다 더 겁나는 건 지각하는 일이었으니 시선은 여전히 표지판에 고정한 채 재빠르게 지나쳤다. 뒤에서 고함치며 날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오직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만 생각했다. 뉴욕의 거리는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로 가득하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드디어 기억해 두었던 직장 주소에 도착했다. 이제야 아는 거리의 풍경이 나타난 순간, 내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구글맵 너만 믿고 갔는데, 날 배신하다니!' 속으로 투덜거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지금이야 이렇게 웃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꽤나 등골이 서늘한 경험이었다. 이런 혼돈의 도시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며, 뉴욕에서 길 찾기를 위한 간단한 팁을 남긴다.



[나와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전하는 틈새 길 찾기 Tip]

맨해튼은 세로로 길게 뻗어 있는 섬이다. 세로로 뻗은 도로는 Avenue, 가로로 뻗은 도로는 Street로 나뉜다. 센트럴 파크를 기준으로 Avenue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숫자가 커지고, Street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숫자가 올라간다. 구글맵이 말썽을 부릴 때는 표지판을 확인하며, 숫자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현명하다. 대부분의 Street는 한 방향 통행이므로, 차도 방향도 잘 보고 다니자!


뉴욕에서 길을 찾는 일은 때론 끝없는 모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매일 새롭게 눈앞에 펼쳐지는 이 거대한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그 혼돈 속에서 조금씩 길을 찾아 나가고 있다. 뉴욕의 길이 익숙해지며 이곳에서의 일상도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출근길은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다. 매일 새로운 에너지를 받으며, 타임스퀘어의 네온사인이 비춰주는 길을 따라 나의 뉴욕 생활은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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