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기분 나빠해야 하나?' 생각이 드는 순간들
해외 생활 중 한국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인종차별에 대한 걱정스러운 말들을 많이 듣곤 했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유색인종들이 여러 나라에서 인종 차별을 많이 겪으니 괜찮냐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뉴욕의 좋은 점은 워낙 다양한 인종이 모여 이뤄진 도시라 이미 서로의 문화가 융화되어 차별보단 이해와 존중을 하려 애쓰는 도시란 점이다. 일 년에 한 번씩 크게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고, 차이나 타운엔 여러 인종이 뒤섞여 음식을 즐긴다. 물론 내가 모르는 곳에서, 혹은 내가 겪은 것처럼 알게 모르게 인종 차별이 어느 곳에 선 여전히 발생하겠지만 무작정 배척하기보단 계속 부딪혀보며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 느꼈다.
그럼에도 인종 차별을 겪은 적은 물론 있다. 악감정보단 그들의 무지함에서 나오는 차별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아시아 사람들은 대부분은 중국인이라 생각이 드는지 '어디 나라 사람이야?'가 아닌 '중국 사람이지?'라고 대뜸 물어본다거나 식당에서 대뜸 중국어로 주문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내려 나가려는데 옆에서 '쉐쉐, 쉐쉐'를 연신 말하며 따라오는 게 아닌가. 처음엔 누구한테 하나 싶었는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왔다. 아무 대꾸 하지 않고 걸으니 이번엔 '곤니찌와, 아리가또'와 같이 자신이 아는 짧은 일본어를 뱉으며 계속해서 따라왔다. 이런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곤 했다. 매우 불쾌하고, 약간은 무서운 경험이었다.
그 사람들은 이 행동에 악의가 있기보단, 이 질문과 행동이 무례하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자기가 나의 나라 언어를 (난 중국인이 아니지만 어쨌든)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혹은 자기 딴에 하는 배려로 말을 거는 마음은 알 것은 같다. 나도 한국에서 외국인이 보이면 괜스레 영어로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으니까. 배려로 하는 마음엔 조금 당황하더라도 애써 웃어넘기곤 했지만 곤란한 건 마찬가지였다. 한 편으론 이렇게 어림짐작하여 생각하는 것 자체가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럴 때마다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까. 악의 없는 무례함에 정색을 하며 잘못됐다 집어줘야 할지, 그냥 무시하며 지나쳐야 할지, 웃으며 인사라도 받아줘야 할지 고민했다. 등 뒤에 '난 한국인입니다.'라고 붙이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니 않는가. 매번 다르게 행동해 봤지만 어떤 게 좋은 대처 방법인진 아직 잘 모르겠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유명 인사들이 공식 석상에서 인종 차별을 받는 경우들도 허다한데, 일상생활에서 해외 생활하며 겪는 일반인의 고충이란 말할 것도 없다. 뉴욕에서 같이 어울린 친한 선배 중 한 명은 직장에서 가깝게 지내는 동료들이 눈을 찢는 행위를 하거나, 앞이 보이냐며 장난치는 경우가 있었다 한다. 선배는 그들이 뭘 모르기에 저런 행동을 하는 거라며 대인배의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친한 사이라 이렇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누군가 이런 행동을 한다면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스페인으로 교환 학생을 간 친한 언니는 같은 학교 한국인 친구가 길을 걷다 난데없이 뺨을 맞았다고 한다. 얘기를 듣고 놀란 나는 어떻게 했냐, 신고는 했냐며 물었지만 별도리가 없어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여행지에서 동양인들을 차별했다는 이야기들은 무수히 많다.
이런 사례들을 보고, 들을 때마다 참 속상하고 화가 난다. 차별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온갖 기사와 뉴스에서는 여전히 차별에 대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인종뿐만 아니라 성별, 취향, 성정체성 등 현대 사회는 많은 것들에 집단을 나누고 선을 그어 서로를 이해하지 않는다. 서로가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내버려 둘 순 없는 것일까.
차별하지 않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서로 엉겨 붙여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정한 인종이 다른 집단을 다르다 생각하고 배척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방식인지 알아야 한다. 내가 차별하는 대상도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인간임을 깨닫게 되는 것. 인류 역사에 차별이 없던 시대는 없다. 그래도 언젠간 이 세상에 모든 차별이 없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