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릿하지 않은 어향 이야기
‘어향(魚香)’
난 처음에 이 단어를 보고 ‘물고기 향?! 최악이잖아’ 하고 생각했더랬다. 비린내부터 떠오른 이름 탓에 젓가락이 먼저 멈췄다. 하지만 막상 맛본 어향요리는, 그런 이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오히려 입안을 꽉 채우는 풍부한 향과 맛이 의외로 익숙하고, 또 기분 좋게 낯설었다.
어향이라는 단어는 생선 향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 생선은 들어가지 않는다. 어향은 사천요리의 대표적인 다섯 가지 풍미 중 하나로, 매콤하고 짭짤하면서도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양념 스타일을 말한다.
주재료로는 두반장(豆瓣醬), 마늘, 생강, 파, 설탕, 식초, 간장 등이 사용되며, 고추기름으로 향을 더한다. 즉, 생선 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생선 요리에 쓰이던 조리법에서 유래한 풍미라는 의미에 가깝다.
사천 지방은 네 개의 강이 흐르는 내륙 지역으로, 예로부터 민물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민물고기의 특유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사용하던 양념이 바로 이 어향소스다. 그렇게 생겨난 어향 풍미는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요리에 활용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향육사(어향 풍미의 돼지고기 볶음), 어향가지, 어향두부 등, 고기나 채소 요리에 널리 쓰인다. 어향 소스는 매콤함, 달콤함, 새콤함, 짠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재료 본연의 맛을 돋워주는 매력이 있다. 입맛을 돋우는 이 풍미 덕분에 생선은 물론, 채소나 고기 등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린다.
사천은 고온다습한 지역이라, 옛사람들은 음식의 부패를 막고 식욕을 돋우기 위해 고추와 향신료를 많이 사용했고, 뜨거운 기름에 볶는 조리 방식도 많이 발달했다. 그래서 사천요리 하면 흔히 기름지고, 맵고, 자극적인 맛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화끈한 매운맛은 물론이고, 혀를 얼얼하게 만드는 ‘마라’(麻辣) 풍미도 사천의 또 다른 매력이다.
내가 좋아하는 어향가지 요리는 가지를 전분에 살짝 묻혀 튀긴 뒤 어향소스로 볶아낸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익은 가지에 어향소스가 배어들면 밥이 술술 넘어간다. 기호에 따라 밥과 함께 먹어도 좋고, 개인적으로는 꽃빵과 함께 먹는 조합도 추천한다. 아삭한 식감을 더하고 싶을 땐 마늘종을 함께 넣기도 하는데, 어향소스의 풍미와 잘 어우러져 식감과 향 모두 살아난다.
어떤 재료에든 조용히 스며드는 어향 소스는, 그 자체로 요리의 균형을 만들어준다. 자극적인 듯하면서도 은근히 입맛을 끌어당기는 그 풍미는 오늘같이 지친 날의 밥상 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전분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가지, 고슬고슬한 밥 위에 한 숟갈 떠 올려보면 매콤하고 달콤한 향이 먼저 퍼지고, 그 뒤로 짭짤한 감칠맛이 따라온다. 그 순간만큼은 사천의 부엌이 잠시 내 식탁 곁에 내려앉은 것 같다.
그때 내가 ‘물고기 향? 최악이야’라고 생각했던 걸 떠올리면, 이제는 피식 웃음이 난다. 어향은 그런 이름을 달고도 이렇게 매력적이다. 매콤하고 달콤하고, 짭짤하고 새콤한 그 맛은 입안에서 복잡하게 돌다가도 결국엔 하나로 어우러진다. 전분을 묻혀 바삭하게 튀긴 가지, 촉촉한 다짐육, 마늘종의 아삭함까지 더해진 어향가지는 밥 한 공기를 부르는 맛이다. 그저 반찬 하나일 뿐인데, 한입 두 입 먹다 보면 어느새 입 안 가득 낯선 풍미와 익숙한 위로가 함께 남는다.
세상에는 이름과 다르게 생긴 맛, 생긴 것보다 더 좋은 맛이 있다. 이름만 보고 덜컥 선입견을 가졌다면, 내 인생 음식 하나쯤은 놓쳤을지도 모른다. 섣부른 판단은 잠시 미뤄두고, 먼저 한입 먹어보는 용기. 그렇게 나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밥상 위에서 또 하나 배운다.
가지 1개
다짐육(돼지고기 또는 닭고기) 200g
청양고추 1개
홍고추 1개
마늘종 약간
쪽파 약간
대파 약간
마늘 2쪽
전분 1T
소금, 설탕 약간
고추기름 1T
청주 1T
식초 1T (기호에 따라)
꽃빵 or 밥
두반장 1/2T
굴소스 1T
케첩 1T
설탕 2T
1. 가지는 길게 썰어 소금과 설탕(각 1/3t)을 뿌려 밑간 한다.
2. 전분 1T를 묻혀 튀기듯 구워 준비해 둔다.
3. 마늘종과 고추는 작게 썰고, 대파와 마늘은 다진다.
4. 쪽파는 고명용으로 송송 썰어둔다.
5. 다짐육은 핏물을 제거하고, 청주와 후추로 밑간 한다.
6. 분량의 소스를 미리 섞어 준비해 둔다.
7. 팬에 고추기름 1T를 두르고 중불에서 다짐육을 볶는다.
8.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고추, 마늘종을 넣고 볶는다.
9. 청주 1T를 넣고 잡내를 날린다.
10. 미리 준비한 양념장을 넣고 가볍게 끓인다.
11. 소스가 농도가 나오면 가지를 팬에 넣고 양념이 잘 배도록 빠르게 섞어준다.
12. 불을 끈 뒤, 기호에 따라 식초 1T를 넣고 섞어 마무리한다.
13. 송송 썬 쪽파를 올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