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거리는 처지는 날 마음까지 데워주는 한 그릇
나는 매번 비가 오면 우산을 깜빡한다. 워낙 덤벙대는 성격 탓도 있고, 애초에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나가는 버릇도 한몫한다. 그러다 보니 비에 홀딱 젖어 돌아오는 날이 많다. 그럴 땐 아침저녁으로 꼭 씻는 게 일상이 됐다. 여름엔 조금만 걸어도 온몸에 땀이 끈적이고, 거기에 습기까지 더해지면 두 번 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찬물로 씻고 나오면 몸에 남은 물기에 에어컨 바람이 닿아 서늘함은 두 배가 된다. 물기를 털고 나면 금세 뽀송해진 몸에 기운이 도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상쾌한 몸으로 창문을 반쯤 열고 가스불을 켠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는 타닥타닥, 마치 오래된 타자기처럼 일정한 리듬을 만든다. 간혹 바람이 창문 사이로 불어와 커튼 끝자락을 나풀거리게 한다. 눅눅한 공기, 빗방울에 젖은 나무 냄새, 조용히 깔리는 회색빛 풍경. 집 안은 다소 습하지만, 묘하게 아늑하다.
비 오는 날엔 어김없이 따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더위를 유난히 타는 편은 아니지만, 시원한 방 안에서 뜨거운 음식을 먹는 그 '작은 사치'가 좋다. 장판을 켜고, 찬 바람 아래 이불을 덮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 한 숟갈. 그 조합이 주는 위안은 제법 크다. 혼자만의 계절 의식처럼, 비가 오는 날엔 늘 이런 방식으로 저녁을 준비한다.
오늘은 새우 완자탕을 끓인다. 냉장고에 남은 새우를 꺼내고, 곱게 다진 뒤 전분을 섞어 동글동글 빚는다. 다진 파와 마늘, 굴소스 한 숟갈, 후춧가루 조금. 반죽은 심심하게 간을 맞추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촉감이 고소하다. 완자를 빚을 때의 리듬이 좋다. 둥글게 빚고, 또 하나 빚고, 묵묵한 반복이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힌다.
완자들을 국물에 퐁당 빠뜨리면 가볍게 끓는 소리를 낸다. 창밖의 빗소리와 냄비 속 보글보글 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다. 후추를 살짝 더 뿌리고, 채 썬 당근 몇 조각을 띄워 색을 더한다. 국물은 짭조름하게 간을 맞추고, 끓는 동안 나는 잠깐 창밖을 바라본다.
비는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내린다. 어릴 적엔 이런 날이면 장화를 신고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며 물웅덩이를 밟았다. 우산은 거들뿐, 흙탕물이 튀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집에 돌아와 젖은 양말을 벗으면, 엄마가 수건을 건네주며 “또 흠뻑 젖었구나” 하며 웃던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도, 지금도 비 오는 날은 이상하게 따뜻하다.
짭조름하게 간을 맞춘 국물은 흘린 땀을 보충하듯 속을 다독인다. 그 안에 떠 있는 완자들은 고요한 날씨와 잘 어울린다.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을 품에 안고 첫 숟갈을 뜨면, 입 안 가득한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진다. 먹고 나면 입술 위에 남는 짠기 마저 정겹다. 그 순간, 혼자라는 사실도, 오늘 하루의 고단함도 모두 뒤로 밀려난다.
비 오는 날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순간엔 문득, ‘이 장마도 그리 나쁘지 않네’ 하는 마음이 든다. 따뜻한 국물 한 그릇에 위로받는 저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올해 장마는 조금은 괜찮을 것 같다.
새우 한 팩
청경채 1/2개
마늘 2개
생강 1톨
당근 30g
전분 1T (완자용)
전분 2T + 물 50ml (농도 조절용)
참기름 (선택)
물 500ml ~
굴소스 1T
치킨스톡 1t
청주 1T
소금 1/2t ~
후추 한 꼬집
설탕 1/2t
1. 마늘, 생강, 당근은 얇게 채 썬다.
2. 청경채는 밑동을 잘라 준비한다.
3. 새우는 곱게 다져 물기를 제거한 뒤, 전분 1T, 소금, 후추를 넣어 반죽한다.
4. 냄비에 물(500ml)과 분량의 양념을 넣고 끓인다.
5. 국물이 끓으면 약불로 줄인 후, 새우반죽을 동그랗게 빚어 국물에 넣는다.
6. 불을 다시 강하게 올려 1분간 익히고, 익은 완자는 체에 건져둔다.
7. 국물에 채 썬 당근을 넣어 끓인다.
8. 전분 2T와 물 50ml를 섞어 약불에서 천천히 국물에 풀어준다.
9. 농도가 맞춰지면 완자와 청경채를 넣고 10초간 더 끓인 뒤 불을 끈다.
10. 기호에 따라 참기름을 약간 둘러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