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그런 와중에 마지막 출근일도 정해진다. 3주도 채 남지 않았다. 한꺼번에 짐을 옮기면 나의 마음도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 매일 조금씩 짐을 나르기로 한다. 책상 서랍 맨 아래 칸을 열어본다. 10여 년 가까이 모아둔 다이어리들과 탁상 달력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다이어리 안에는 일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무수한 아이템과 회의의 흔적들, 그리고 구석에 적어놓은 나의 한숨과 푸념, 혼잣말들. 탁상 달력에는 매일매일 숫자들로 채워져 있다. 시청률이다. 매일 아침, 시청률을 확인하면 늘 빠지지 않고 달력에 적어두었다. 숫자가 좋은 날도 있었고, 훅 떨어져 말도 안 되는 숫자로 남아 있는 날도 꽤 있다. 이 숫자들에 하루의 희비가 엇갈렸다. 숫자들은 너무나 변덕스러웠기에 믿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평가와 판단은 숫자들에 달려 있었다. 이 녀석들과 씨름하며 10여 년을 보냈는데 이젠 안녕이다. 달력들은 쓰레기통으로, 다이어리는 집으로 가져가기로 한다.
마지막 출근 날짜가 정해지고, 사람들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계속 온다. 대부분 회사 사람들이다. 식사와 차 약속을 잡으니 어느새 마지막 출근 날짜까지 꽉 찬다. 나, 좀 잘 살았나 하는 괜한 생각에 어깨를 으쓱한다. 점심을 먹으며 하는 얘기는 늘 비슷하다. 처음엔 다들 나의 처지와 마지막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그냥 일상을 더듬는다. 그러다 내가 한마디 한다. “이렇게 같이 점심 먹는 것도 마지막이겠네. 그러면 이야기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회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위에 계신 양반들, 잘못은 자기들이 해놓고 왜 아랫사람만...” 같이 화내고 욕하고 위로하고.. 그러다 대화는 묘하게 흘러간다. 한결같이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고 회사의 미래에 대해 비관한다. 나를 위로하는 식사 자리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그 혹은 그녀를 위로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 때문에 만들어진 식사 혹은 커피 시간이 그 혹은 그녀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나에 대한 위로의 다른 방식인 걸까,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떠나는 사람이기에 쉽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일까? 아니면 남아있는 그들의 마음 역시 아픈 것일까? 떠나는 자는 남아 있는 자의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가 끝날 무렵 귀를 닫아야 한다. 그것이 떠나는 자의 선물이다.
이 칼바람은 떠나는 이에게도, 남아있는 이에게도 깊은 상처를 준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