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이 예민한 사람의 식사 연습> 10화

내가 찾은 식사의 리듬, 그리고 회복의 시작

by 헬레나

치료가 끝나면,

일상도 같이 끝났다가 다시 시작될 줄 알았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그날 저녁부터는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몸도 금방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공복이 조금만 길어져도

배고픔이 아니라 쓰림으로 신호가 오고,

찬 음식 한두 번에

위장이 하루 종일 뒤틀리기도 하고,

근육은 눈에 띄게 줄었는데

위장은 그만큼 버텨주지 못하는 몸.


“왜 나는 남들처럼 편하게 먹지 못할까.”


이 질문을 붙들고 꽤 오래 버티다가

어느 순간 받아들였다.


“아, 나는 그냥 ‘예민한 위장을 가진 몸’이구나.
그 몸에 맞는 사용설명서를 새로 써야 하는구나."

이 시리즈는,

그 사용설명서를 나 스스로 다시 써 내려간 기록이다.


1. 남들 식단표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몸

처음엔 나도

남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했다.

공복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말에

아침을 거르고 점심까지 버텨 보고,

다이어트 정보에 맞춰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을 늘리려 했고,

“샐러드 + 아이스커피” 조합이

건강해 보이니 그대로 따라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비슷했다.

공복을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쓰나미처럼 쓰림과 울렁거림이 몰려오고,

그 고비를 지나고 나면

속은 공허한데 식욕은 사라져 있고,

밤이 되어서야

뒤늦은 폭식과 허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머릿속 정보와

몸이 보여주는 현실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컸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다.

“남들이 쓰는 식단표가 아니라,
네 위장이 이해하는 언어로 된 식단표가 필요하다."

2. 내 몸이 들려준 세 가지 이야기

내가 이 시리즈를 쓰면서

가장 많이 마주한 건

몸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세 가지 패턴이었다.

1. 공복이 약한 사람의 리듬

배고픔보다 먼저 쓰림과 불안이 온다.

한 번 쓰나미가 지나가고 나면

허기는 남는데 식욕은 사라진다.

참다가 먹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식욕이 한 번에 터진다.

2. 찬 음식에 놀라는 위장

아이스커피와 찬 샐러드는

머리로는 “건강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내 위장은 얼어붙는 느낌으로 대답했다.

공복 상태에서 찬 음식은

하루 전체 컨디션을 흔들곤 했다.

3. 단백질이 빠진 식탁의 공허함

겉으로 보기엔

“나름 잘 먹고 있는 것 같은 식단”인데도

힘이 안 났다.

근육은 빠져 있고,

회복 속도는 더뎠다.

의사에게서 “근감소증이 있네요. 다이어트 하면 안 돼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억울함과 함께

“아, 내가 진짜 놓치고 있던 게 있구나”를 깨달았다.

공복, 온도, 단백질.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나는 내 몸의 이야기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


3. “남들처럼” 대신 “이 몸이라서” 택한 것들

나는 지금도 남들처럼

가볍고 예쁜 가방 하나 들고,

그때그때 끌리는 메뉴를 골라 먹고,

하루를 대충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했던 시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이미 충분히 겪어 본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


도시락과 간식을 넉넉히 담기 위해

예쁜 핸드백 대신 백팩을 메고 다닌다.

점심시간에

메뉴판 앞에서 도박하듯 고르기보다,

아침에 미리 준도시락을 준비해 둔다.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건

순간의 “맛있음”이 아니라,

내 위장이 안심할 수 있는 준비된 한 끼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멋을 포기한 게 아니라,

이 몸으로 오래 살아가기 위한 우선순위를 바꾼 것에 가깝다.


4. 내가 스스로 만든, 나만의 식사 기준

이 시리즈를 쓰면서

내 머릿속에 정리된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공복을 무리해서 늘리지 않는다.

가능하면 따뜻하게 먹는다.

식사 시작은 부드러운 단백질과 국물로 한다.

하루에 한 번은, 완벽한 식단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식사’를 선택한다.

거창한 계획표가 아니다.

하지만 이 기준을 붙잡자

하루가 조금 덜 요동쳤다.


아침에 연두부와 난백, 따뜻한 국 몇 숟갈로 시작하고,

점심 도시락에서 단백질을 먼저 먹고,

오후엔 작은 브릿지 간식을 하나 두고,

저녁에는 위장을 정리해 주는 따뜻한 한 끼로 마무리하는 날들.


눈에 띄게 극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예전보다 덜 무너지는 하루”
가 하나둘 쌓여 갔다.

그리고 그게

지금의 나에겐 충분히 큰 변화였다.


5.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았다

치료가 끝나면

어느 날 갑자기 회복도 “도장 쾅” 찍히듯 올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의 회복은

훨씬 더 소소한 모양으로 나타났다.


공복 쓰림이 오기까지의 시간이

아주 조금은 길어졌다는 걸 느끼는 순간,

아이스커피를 마셨던 날과

따뜻한 국을 택했던 날의

저녁 컨디션 차이를 몸이 기억하게 되는 순간,

운동 후에

“아, 예전보다 덜 퍼졌다”를 느끼는 순간.

종이에 적으면 보잘것없는 변화인데

몸으로 느끼면 다르다.

“아, 이 몸이 아직도 조금씩 변할 수 있구나.”

이 깨달음이

나에게는 굉장히 큰 희망으로 다가왔다.


회복은

하루에 한 번씩

내 편을 들어주는 선택을 할 때,

조용히 쌓이는 것 같다.


6. 실패한 날도 포함해서, 내 편이 되어 보기

솔직히 말하자.

나는 지금도 자주 실패한다.

공복을 너무 길게 끌어버리는 날,

회식 자리에서

위장이 싫어할 걸 알면서도 젓가락이 멈추지 않는 날,

도시락을 챙기지 못해

그날 하루를 “타협의 식사”로 채우는 날.

예전의 나는

이런 날이 오면

바로 자기비판 모드로 들어갔다.


“역시 넌 안 되는구나.”

“또 이걸 못 지키네.”


지금은 조금 다른 말을 건네 보려고 한다.

“그래, 오늘은 여기서 무너졌네.
그럼 내일은 어디부터 다시 챙겨볼까?"

이 시리즈의 제목이

“식단 관리 비법”이 아니라

“식사 연습”인 이유가 바로 이거다.


나는 아직도 연습 중이고,

아마 당분간은 계속 연습 중일 거다.


7. 같은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를 당신에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아마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도 공복이 약한 편인데…”

“나는 찬 것만 먹으면 꼭 속이 뒤틀리는데…”

“난 체중은 괜찮은데, 힘이 너무 빨리 빠진다…”

우리는 각자 다른 몸을 갖고 있지만,

어쩌면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리즈는

“이렇게 먹어야 합니다”라는 정답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먹어 보니
이 몸으로도 다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작은 확신을 조금씩 얻었다"
는 기록에 가깝다.

읽는 당신에게 필요한 답은

또 전혀 다른 모양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남들이 말하는 “정답 식단”을 그대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듣고,

공복, 온도, 단백질, 순서를 한 번쯤 정리해 보고,

오늘의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켜 줄

하루 식사 루틴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


8.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연습한다

나는 아직도

도시락이 들어 있는 백팩을 메고 출근을 한다.

아침에는

연두부와 난백, 따뜻한 국으로 위장을 깨우고,

점심에는

내가 전날 밤 준비해 둔 도시락으로

공복과 혈당의 롤러코스터를 막아 보고,

오후에는

작은 간식으로 나를 받쳐 주고,

저녁에는

찌든 하루와 예민한 위장을

따뜻한 한 그릇 위에서 정리한다.

이게 완벽한 식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방식 덕분에

나는 예전보다 덜 쓰러지고,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지금의 나로서는

꽤 괜찮은 회복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위장이 예민한 사람의 식사 연습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조금 서툴고,

가끔 무너져도,

다시 한 번 더 연습해 보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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