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
두 번째 파리 방문의 이유이다.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크루즈 여행이어서 일까. 푸른 하늘 아래 호화 유람선을 닮은 야외 수영장을 보자마자 다른 선택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해 여름, 우연히 접한 한 장의 사진은 그렇게 나를 다시 파리로 이끌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2013> 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상의 모든 수영장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파리의 몰리터 공공 수영장이다.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하며 존재감을 뽐내고,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조차 이 수영장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교의 장이자 세계 최초로 비키니가 선보인 곳, 파리에서 가장 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파리 최초의 호텔 수영장, 바로 “몰리터 파리 Molitor Paris”이다.
46m 길이의 푸르른 야외 수영장을 둘러싼 객실 창문과 층층의 발코니, 건물을 따라 늘어선 선베드, 색색의 테이블과 체어, 그리고 옐로와 블루, 화이트의 컬러풀한 조화는 마치 럭셔리 크루즈선에서 휴가를 보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아직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의 맛보기라고나 할까. 사진 속 그곳은 그야말로 도심 속 바캉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사진 한 장이 가지는 힘은 실로 위대하다. 여행자의 여정을 바꾸며 돌아가게도 하고 쉬어 가게도 한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효율을 따지기보단 무모해 보일지라도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여행, 그 길 위에 놓인 세상에 설레는 건 아마도 내가 아직 젊어서일까.
그 해 여름, 다시 찾은 파리는 설렘으로 반짝였다.
Tip!
1929년 파리의 공공 수영장으로 처음 개관한 몰리터 수영장은 그 역사만큼 오랜 세월의 부침을 겪었다. 1989년, 60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던 수영장이 문을 닫고 2014년 5월, 아코르 호텔 그룹에 의해 지금의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호텔은 수영장의 이름이었던 몰리터를 그대로 사용하여 'Hotel Molitor Paris – MGallery'라는 이름으로 오픈하였으며, 옛 아르데코 양식을 그대로 재현한 수영장은 오로지 몰리터 클럽 회원과 투숙객을 위한 공간이다. 예전의 명성을 잇듯 몰리터는 현재 파리 최고의 핫플레이스이자 각종 이벤트, 행사장소로 유명하다.
*1989년 폐장할 당시 건물 안팎은 거리 예술가들의 그래비티로 뒤덮였는데, 그중 일부는 호텔 개관 인테리어에 재활용되어 곳곳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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