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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Oct 06. 2022

정치질은 회사에서 배우자

#08 김 가의 형제들

세상에는 발도 들여놓으면 안 되는 중소기업이 있다. 하나는 상사가 후임의 자존감 도둑인 회사이고, 나머지 하나는 무시무시한 가족 구성원들로 임원들이 이루어진 회사이다. 공교롭게 내가 다니는 회사는 둘 다 해당한다.




애초에 입신양명의 큰 뜻과 자신감 따위는 없었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무난하게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취업이 무서워 단기 어학연수로 도망친 것에 비하면 결과는 꽤 볼품없었다. 

그래도 작은 회사치고는 직원이 50명 정도 되는 회사라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말하는 제대로 된 사회생활은 다음과 같다.

먼저 회사 내에 점심을 나눠 먹는 여러 파벌이 존재했다. 그들은 서로를 꽤 아니꼽게 봤으며 뒤로는 총무팀 부장을 욕하면서도 앞에서는 온갖 장기를 다 빼내 줄 것처럼 꼬리를 흔들고 다녔다. 사장도 아닌 일개 중소기업 총무팀 부장한테까지 자기 목줄을 쥐여 주는 선배들의 눈물 어린 쇼를 보고 있자니, 내가 진정한 사회생활 비린 맛에 혀를 담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가 사장의 사촌 동생이었다. 사장과 총무부장은 특이한 성씨답게 역시나 피로 맺어진 사이다.

하늘은 나에게 탈출할 구실을 입사 초기에 암시해줬다. 입사하고 처음 전 직원이 가진 회식 자리에서 생긴 일이다.

사장은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대리님께 건배사를 시켰다. 사회생활은 튀지 않는 게 좋은 것이라 배웠던 나는 무난한 건배사를 예상했지만, 첫인상이 매우 얌전해 보였던 대리님은 다른 의미로 파격적이었다.


- 우리 회사가 규모는 작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대기업조차 못 쫓아 오잖아요. 서로서로 가족같이 대하며 앞으로 더 큰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가’라고 선창하면 다 함께 ‘족같이’를 외쳐 주…

 

대리님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옆에 앉아 있는 다른 과장님이 황급히 대리님을 앉히더니 야, 야, 너 그러면 큰일 나, 라고 소곤소곤 대며 대신 다른 건배사를 제안해주었다. 대리님의 건배사가 머리에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EDM 페스티벌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은 전자음악이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족, 족, 족, 족, 족같이……? 가사 한번 돌림노래처럼 끈질기게 도돌이표 됐다. 진짜 족같은 건배사가 아닐 수 없다.



사장은 늘 자리를 비웠다. 우리를 감시하는 역할은 당연히 총무팀 부장이 수행했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을 한다고, 근 이삼십 년을 살면서 갈고닦았던 분별력(이라 쓰고 눈칫밥이라 읽는)으로 난 총무팀 부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의 예시를 묻는다면 나는 늘 부장(이라 쓰고 그 새끼라 읽는)이 먹었던 물컵을 설거지했으며 부장 자리에 놓여있는 갈변의 난을 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심지어 매일 아침 부장이 출근하기 전에 부장 전용 쓰레기통을 깨끗이 비우고 냄새나는 발 받침대를 깨끗이 닦았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늘 슬리퍼를 벗는 그 새끼, 아니 부장은 각도가 조절되는 발 받침대를 책상 밑에 두고 꼬랑내 나는 발을 항상 올려두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내가 정말 야망에 눈이 돌아 발닦개를 자처하는 줄 알겠지만, 물컵 설거지부터 발 받침대 청결까지 내 의지가 포함된 건 하나도 없었다. 전부 내가 막내라서 도맡은 업무의 일부분일 뿐이다. 자발적 봉사가 아니었기에 내 노력의 예시는 한낱 잡무로 평가절하될 수 있지만 개인 시중까지 들고 싶었던 마음은 없었으므로 내 딴에는 지극히 정성 갸륵한 노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장의 총애를 받는 사원들은 흡연자로 한정됐다. 늘 부장을 따라 주차장에서 담배 타임을 갖는 흡연자들은 업무의 정상적인 절차에서 제외됐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출결의서였다. 부장과 그의 친한 떼거리들은 늘 지출결의서에서 빠져나갔다. 일관성없는 경우다. 얼렁뚱땅 굴러가는 회사라고 해도 정말 경우 없는 경우다. 어차피 결재권자가 총무팀 부장이라 부장은 그렇다고 쳐도 친한 사람은 안 써도 된다는 게 말 같지도 않은 특권이었다. 순간 욱해서 나도 흡연자 대열에 들어서야겠다는 야망 어린 아둔한 생각까지 했다.

회사에서 큰 스트레스를 던져주는 건 업무도 아닌 사람이라더니 나의 첫 회사생활은 그렇게 눈꼴사나운 부장으로 막을 내렸다. 점점 도를 지나쳐 개인 잡무를 넘기려는 것을 내가 버티지 못했다. 대리님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가‘족’같은 이곳을 탈출하라고 넌지시 힌트를 주었던 것이다.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하고서도 나는 곧 좌절하고 말았다. 요즘 중소기업에서는 왜 이렇게 직계, 방계 할 것 없이 일가친척들을 회사 주요보직에 앉혀놓는지 모르겠다.

사내 정치질은 이곳이 더 심했다. 회사는 사장과 사장의 친동생, 그리고 이사 자리에 앉아 있는 사장의 장인어른을 중심으로 굴러갔는데 우리 팀의 과장은 늘 그 장인을 뒷담화하면서 잘 보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심지어 자기 부하직원들을 이용해서 생색내는 경우도 많았다.

일명 ‘장인 이사’라 불리던 회사의 구두쇠는 회사 내에서 사용되는 전기와 수도에 언제나 인색했다. 고등학교의 학생주임 선생님처럼 뒷짐 지고 회사 내부를 돌아다니며 여름에는 에어컨을 끄고 겨울에는 히터를 끄는 파렴치한 행동을 반복할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과장은 늘 장인 이사의 인색에 쌍욕을 섞어가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다가도 저 멀리서 장인 이사의 얼굴이 보이면 달려가 세상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커피도 건네고 자기 간과 쓸개도 건네주었다. 제일 꼴 보기 싫은 건, 장인 이사의 개인 업무를 따라다닐 때다. 과장은 장인 이사의 운전기사 노릇을 자처하느라 본인 일은 아래 팀원들에게 싹 다 몰아주고 장인 이사가 어디 외출할 때마다 늘 동행했다. 운전밖에 안 하면서 사무실로 복귀하면 세상 피곤한 척은 혼자 다 했다. 심지어 장인이 마실 숙취해소제를 우리에게 사 오게 하고 직접적인 대령은 본인이 했다. 더운 땡볕에 본인이 편의점에 뛰어나가 사 온 것처럼 헐떡이는 숨은 이곳을 충무로로 착각하게 했다. 실상 이점이 제일 꼴 보기 싫었다. 장인 못지않게 과장도 발로 차주고 싶었다.

사장의 남동생은 두말할 것도 없다. 출근도 느지막이 오후에 하면서 회계팀의 부장씩이나 맡고 있었다. 부장답지 않게 법인세니, 부가세니, 모든 회계업무에는 일자무식이지만 입출금만큼은 꼭 이 남동생을 거쳐서 이뤄져야 했다. 덕분에 월급은 늘 늦은 다섯 시를 넘기고서야 받을 수 있었다. 그래 놓고 회사 직원 중에서 급여가 제일 많은 투톱이 저 장인 이사와 남동생이란 건, 내게 진정한 사회의 불공평함을 가르쳤다.

한번은 다른 직원에게 투정 어린 불만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가히 명언이었다.

“꼬아? 꼬우면 가족 해버려.”

나의 사회생활이 지속되는 한, 어느 직장동료의 이 말은 가슴 속 깊은 곳 잠언으로 모셔두어야 한다.



사장은 성격이 이상해서 무조건 본인이 회식 참여할 수 있을 때만 회식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심지어 직원들이 2차를 갈라치면 자기는 집에 가봐야 한다고 갑자기 화를 냈다. 그러면서 다들 집에 가서 충실히 가정생활을 하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화내는 것은 이해 안 가지만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사장은 직원들이 뒤에서 본인 욕을 할까 봐 본인빼고 직원들을 못 모이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떡 같은 이유가 다 있을까.

그 형의 그 아우라고 늦게 출근하는 남동생도 탕비실에 직원들이 모여있으면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뭐야, 무슨 이야기해? 재미있는 일 있나 봐? 초조한 표정에서는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소망이 아닌 대화를 해체해버리고 싶은 소망이 들어있었다. 우리가 자기 욕할까 봐 겁나나 보다. 내가 이런 꼴 보려고 여기로 이직한 게 아니었는데……

이곳 또한 가족회사란 것을 일찍 알았으면 나는 애당초 면접을 보지도 않고 빨리 탈출했을 거다.

하, 김 씨…… 김 씨가 문제였다. 대한민국에는 김 씨가 너무 많다. 김 씨 성만 가지고 그들이 가족인지 어떻게 알아.

이쯤 되면 야매 관상을 포함하여 회사 내에 닮은 얼굴 찾기를 할 판이다.

인격은 얼굴에 나타난다고, 다년간의 인생 경험을 통해 싸한 인상의 사람은 피하며 살았는데 평안한 얼굴로 남을 꼽 주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저 남동생을 통해 배웠다. 묘하게 사장하고 말투도 닮았다. 두 배로 꼴 보기 싫어지는 회사생활이다. 앞으로 살면서 인상뿐만 아니라 말투 또한 걸러야 한다니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이 김 가의 형제들은 형의 장인어른을 포함하여 나에게 사내 정치질 또한 가르쳤다. 사실 어디를 가든지 무리에 있게 되면 정치질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말이다. 모든 곳에 정치질이 있다고 해도 가족회사가 특히 절망적인 건, 정말 눈곱만큼의 능력도 없는 상사한테 줄을 서야 한다는 것이다. 첫 회사에서는 공론화되면 인권 유린이라 욕먹을 발 받침대 청결 방법을 배웠는데 두 번째 회사인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사내 정치질을 배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직원들의 공통된 적은 장인 이사와 남동생, 더 멀리 나아가 사장도 포함되었다. 그들은 우리를 모이게 만들지 못함으로 우리의 결속력을 두텁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에게 총구를 숨기고 미소를 띠는 법 또한 배우게 했다. 나는 이제 과장 없이도 저 멀리 장인 이사가 보이면 그의 안색을 살피게 된다. 역하게 올라오는 술 냄새를 맡으면 탕비실 냉장고에 몰래 숨겨놓은 숙취해소제를 건네는 넉살까지 배웠다. 편 먹기는 나와 멀고도 가까운 단어다.



어른이 되려면 피치 못하게 익숙해져야 하는 시궁창의 냄새가 있다. 냄새를 피하려 코를 막아보아도 온몸에 냄새가 붙게 되면 내 코는 적응하지 말아야 할 악취에 익숙해진다. 스스로가 시궁창의 냄새와 본연의 냄새를 구분해 내지 못하면 여기서 진짜 시궁창을 벗어날 수 없다. 남들과 같이 시궁창을 건널 땐 내가 풍기는 냄새가 본연의 내 냄새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코에 계속 손을 올려야 한다. 익숙하지 않다는 듯, 상황의 여의찮음을 보여주어야 오해를 벗을 수 있게 된다. 이미 익숙해진 냄새에 슬쩍 손을 내리고 숨을 쉬어도 찡그린 얼굴을 펴서는 안 된다. 다만 그렇게 연기를 하다 보면 본래 시궁창 냄새에 코가 아팠던 나, 그 악취에 익숙해진 나, 그리고 악취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듯 계속 연기하는 내가 서로 충돌하고 만다.


숙취해소제를 건네고 자리에 앉아 하루 수분 섭취량의 사 분의 일인 수분량을 들이마시며 다짐했다.

다음번에는 기필코 가족회사는 피할 거라고.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시원한 냉수가 불타는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






Photo by Floriane Vit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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