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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단편소설] 모태솔로 (6)

말라깽이와 나

by 이돌 Mar 28. 2025

월요일 오후. 상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 어떻게 보지.’ 

교대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딸랑.” 


“어서 오세요” 나는 습관적으로 인사를 했다. 


말라깽이였다. 나를 보고 놀란 듯 멈칫했지만 이내 매장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작은 매장이었다. 그런데 저 놈은 무엇을 찾는지 매장 안을 한참 서성댔다. 벌써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빙빙 돌고 있었다. 그 꼴이 왠지 수상쩍어 나는 팔짱을 낀 채 가자미눈을 하고 말라깽이를 쏘아봤다. 마침내 말라깽이가 어렵사리 무언가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져왔다. 여성 용품이었다.  그 순간, 소파 등받이에 다리 하나를 척 올리고 한심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누나가 떠올랐다.


‘아, 너희 집에도.... 마녀가 살고 있구나!’


말라깽이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물건을 사들고 급히 편의점을 빠져나가는 그의 좁은 등판이 오늘따라 안쓰러워 보였다. 


“야간 알바생이 오늘부터 못 온대.” 교대시간이 되자 점주가 들어오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구해질 때까지 자신이 야간 근무를 대신 맡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도 했다. 점주는 A4 사이즈의 종이에 검은색 유성 팬으로 야간 아르바이트 구함이라고 크게 써서 편의점 유리문에 붙였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씁쓸했다. 


편의점을 나와 아파트로 향했다. 잠시 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십사 층을 누르고는 아무 생각 없이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거의 닫힐 때였다. 손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문이 열리며 몸집이 큰 여자가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급해서 그만.” 그녀가 엘리베이터 안을 좌우로 쓱 훑어보며 말했다. 


그녀를 뒤따라 누군가 들어왔다. 말라깽이였다. 


“야, 내가 그거 말고 다른 거 사 오랬지.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해?”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말라깽이를 매섭게 노려보며 다그쳤다. 


“그럼 다음부터 누나가 하던지” 말라깽이는 엘리베이터 문을 응시하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으휴, 이걸 어따 써” 


말라깽이의 뒤통수에 하던 말을 마저 퍼부은 여자는 15층이 되자 문 앞에 서 있는 말라깽이를 제치고 먼저 쌩하니 내렸다. 말라깽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여자의 뒤를 힘없이 따라갔다. 천천히 문이 닫혔다. 말라깽이의 처지가 새삼 딱해 보였다. 


헬스장으로 내려갔다. 헬스장에 비치된 반팔과 반바지로 갈아입고 기구에 힘없이 앉았다. 곧이어 말라깽이가 들어왔다. 가방을 한편에 휙 던져놓더니만 고개를 푹 수그리고 의자에 앉았다. 여신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러닝머신에서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활력과 생기가 넘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소리에 말라깽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눈을 맞췄다. 말라깽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나도 가볍게 인사를 했다. 


“자자. 힘내서. 한 개만 더.” 

잠시 뒤 우리는 함께 운동을 하고 있었다. 


“와. 자세 좋은데요.” 


“제가 운동한 경력이 좀 되죠. 하하.” 말라깽이가 가시 같은 몸매와 어울리지 않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호탕하게 말했다. 


“목이 타는데 운동 끝나고 우리 맥주나 한 잔 하러 갈까요?” 

말라깽이의 제안이었다. 


“좋죠. 근데 혹시 나이가?” 


말라깽이는 스물두 살이라고 했다. 나와 동갑이었다. 나는 서로 편하게 말하자고 했고 말라깽이도 좋다고 했다. 여신은 갑자기 친해진 나와 말라깽이가 신기했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는 지나쳐갔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

며칠 뒤 헬스장에서 말라깽이는 으레 핑크색 덤벨을 들고 헉헉대고 있었고 나는 의자에 앉아  긴 쇠 봉을 양손으로 잡고 위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헬스장 여신은 바닥에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했다. 헬스장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뒷머리를 쓸어 올려 집게로 고정하고 짧은 회색 반바지에 어깨와 쇄골이 훤히 드러나는 흰색 티를 입은 그녀는 어색한 걸음걸이로 헬스장 안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복장으로 보나 둘러보는 모양새로 보나 헬스 경험이 없는 초보자임이 분명했다. 말라깽이의 눈길은 어느새 그녀의 뒤를 쫓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조급해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처음이신가 보네요. 좀 도와드릴까요?”


“너무 감사하죠. 헬스장은 처음이라......”


‘응? 시작이 좋은데. 나를 좋아하나?’ 

말라깽이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런 말라깽이에게 눈을 한 번 찡긋하고서는 이내 그녀에게 집중했다. 왠지 이번이야말로 모태솔로, 이 유치한 단어와 이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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