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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단편소설] 모태솔로 (5)

편의점 그녀 2

by 이돌 Mar 28. 2025

상품의 바코드를 스캐너로 찍어 물건 값을 계산했고 상품을 정리했다. 여느 때와 같은 오후였다. 한 가지 고민거리만 빼면 정말 그랬다. 


‘주말에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볼까. 이상한 놈 취급하면? 아. 미치겠네.’ 

그렇게 계산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딸랑.” 

문이 열리고 헬스장 여신이 들어왔다. 바로 그 뒤를 키가 크고 몸매가 다부져 보이는 남자가 따랐다. 청바지에 흰 티를 입은 수수한 차림새의 남자였지만 작은 얼굴, 쌍꺼풀 없는 눈, 시원하게 뻗은 콧대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머, 여기서 일하셨네요.” 여신이 나를 보고 반갑다는 듯 말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나는 그녀에게 어색함을 들키지 않도록 신경 써서 대답했다. 


남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여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시원한 웃음이었다. 여신은 생수 한 병을 계산하고는 남자와 팔짱을 끼고 나갔다. 문득 이쑤시개 같이 가는 팔로 핑크색 덤벨을 쥐고 있는 말라깽이가 떠올랐다. 시간이 흘러 교대시간이 됐고 그녀가 왔다. 나는 최대한 시간을 끌며 인수인계를 했다. 


‘말을 할까.’ 

고민하는 사이 인수인계가 끝났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편의점을 나가다 말고 그녀를 보며 토요일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봤다. 


“네? 왜요?” 

여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이 동그래졌다. 


“토요일에 괜찮으면 같이 영화를 보거나 식사를 하거나......” 


‘괜히 말했나?’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니 불안했다. 


그녀는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듯했는데 이내 토요일 점심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마치 큰 결심을 하고 난 사람처럼 그녀는 홀가분해 보였다. 

나는 그렇게 토요일 약속을 잡고 편의점을 나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헬스장으로 갔다. 말라깽이가 운동 기구에 앉아 있었다. 얼마 뒤 갑자기 일어서서 주위를 서성대기 시작하더니 시계와 여신을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말라깽이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 여신에게 다가갔고 횡설수설했으며 실망한 낯빛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짐을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헬스장을 급히 빠져나갔다. 말라깽이의 초라한 퇴장과는 다르게 여신의 퇴장은 우아하고 여유로웠다.      


*****

토요일. 편의점 그녀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평이 좋은 장소를 물색해서 점심을 예약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면바지에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하늘색 재킷을 걸쳤다.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누나가 아끼는 향수를 찾아냈다. 옷장 깊숙이 숨겨놓으면 모를 줄 알았나 보다.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한 만큼 더욱 아낌없이 뿌렸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음식점에 일찍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그녀를 기다렸다. 검은색 바지에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반팔 티를 입은 그녀가 약속시간에 맞추어 나타났다. 그녀의 유난히 하얀 피부가 검은색 옷과 잘 어울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그녀는 긴장한 듯 모든 행동이 조금 어색해 보였다. 


“오는데 막히지는 않았어요?”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했다. 


“아, 네. 괜찮았어요.” 


“취미가 뭐예요?” 


“그냥 책 읽는 거 좋아해요.” 

대화가 끊겼다. 


“뭘 시킬까요?” 메뉴판을 그녀에게 주며 물었다. 


잠시 뒤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식사를 하며 편의점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일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등 공통 주제로 이야기할 만한 것들을 화제로 삼았다. 대화가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는 잘 먹었다고 공손히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에 도착했다. 


“소개팅한다고 하지 않았어? 아직 안 나갔네.” 누나가 물었다.

 

“갔다 왔지.”

누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저게 미쳤나.’ 

나는 방으로 들어와 그녀에게 메시지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다.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네요.” 

지웠다. 너무 형식적인 듯했다. 


“오늘 재밌었죠? 다음에는 더 즐거운 시간 보내요.” 

‘조금 느끼한가?’ 지웠다.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다음 주말에 영화 같이 볼래요?” 

적당히 예의 바르고, 적당히 친근감을 주는 표현이었다. 메시지를 보냈다. 한참 뒤 답이 왔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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