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그녀 1
저녁에 입고된 물품을 검수하고 상품을 매대에 진열하고 있었다. 몸이 다 나았는지 그녀가 평소보다 삼십 분 일찍 왔다. 그녀는 지난번에 고마웠다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가라고도 했다. 보기보다 싹싹한 그녀였다. “딸랑.” 편의점 유리문이 열리며 큰 가방을 한쪽 어깨에 둘러멘 여자가 남자의 팔짱을 끼고 들어왔다.
‘불안한데.’ 여자가 좁은 매대 사이를 지날 때마다 여자의 큰 가방이 매대의 상품들을 슬쩍슬쩍 건드리며 위치를 바꿔놓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여자가 과자를 하나 집어 들고 통로를 크게 도는 순간 행사상품으로 진열된 병맥주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매장은 순식간에 유리파편과 맥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머, 죄송합니다.” 깜짝 놀란 여자가 급히 말했다.
“저희가 다 변상할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도 연신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들은 그렇게 계산을 하고 나갔다.
‘저걸 어떻게 치우지.’
난장판이 된 바닥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옆에 있던 그녀가 어느새 창고에서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어어, 놔두세요. 제가 할게요.”
급히 그녀에게 다가가 대걸레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괜찮다며 대걸레로 대충 유리 파편을 모아 쓰레받기에 담았다. 나는 손걸레를 가져와 매대와 상품들에 튄 맥주를 닦았다.
“익숙하시네요.” 걸레질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 정도는 약과예요. 새벽에는 술 취한 손님들이 종종 오시거든요. 이보다 더한 일도 많아요. 술 취해서 주무시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그녀가 바닥을 대걸레로 닦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술 취한 사람들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면 괜히 본인이 처리하려 애쓰지 말고 경찰을 부르라고 했다. 하얀 얼굴에 가녀린 몸매를 가진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씩씩했고 활달했다. 바닥 청소를 끝내고 그녀는 계산대로 갔다. 그리고 늦었다며 빨리 들어가라고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편의점을 나왔다. 편의점 앞을 잠시 맴돌다 유리문 너머 그녀를 힐끔 바라봤다. 그녀는 손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더니 뒤를 돌아 담배를 꺼내 매대에 올려놓고 계산을 했다. 손님이 편의점 유리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나는 등을 돌렸다. 편의점 앞에서 서성대는 것을 왠지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잠시 뒤 고개를 돌려 편의점 안을 살폈다. 매대 상품을 정리하는 그녀가 보였다. 작고 여리여리한 그녀의 체구에 편의점 조끼가 헐렁하게 걸쳐져 있는 것이 꽤 귀엽다고 생각하며 헬스장으로 향했다.
나는 덤벨을 치켜들며 어깨 운동을 하고 있었다. 여신은 육 번 기구에 앉아 있었다. 힙어브덕션. 이름도 어려운 기구였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몸통을 그대로 살짝 앞으로 숙이고 엉덩이를 뒤로 쭉 빼는 느낌으로 앉아 다리를 옆으로 벌렸다 오므렸다 하기를 반복하는 운동이다. 엉덩이의 측면에 있는 근육을 키우는 운동이라는데 자세가 꽤 민망했다. 여신 주변을 맴돌던 말라깽이가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여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 저 녀석 뭐하려고.’
나도 모르게 덤벨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말라깽이가 여신에게 말을 건 것이다. 여신은 당황한 듯했다. 그리고 이내 뭐라고 한마디를 하고는 운동에 다시 집중했다. 분명 지금 쓰고 있는 기구를 얼마나 더 사용할 건 지 등의 시답지 않은 질문이었을 테다. 말라깽이는 고개를 주억대며 자기 자리로 돌아와 나를 슬쩍 바라봤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의기양양한 말라깽이의 저 표정.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쥐고 있던 덤벨을 바닥에 ‘쾅’하고 던져 버렸다.
‘나도 저런 어벙한 표정이었을까?’
운동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씻고 침대에 누우니 손목의 푸른 십자가 문신이 하얀 피부와 유난히 잘 어울렸던 편의점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만 괜찮다면 따로 만나보고 싶었다.
‘내일 물어볼까. 싫다고 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생각에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