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밑이 빠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물을 붓는 콩쥐. 독이 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콩쥐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최선을 다하며 사는데도 어쩐지 허무한 이 감정의 원인은 도대체 뭘까.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더 정확히는 약간의 열정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는 20대 후반 여자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퍽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열정이야 없을 수 있다 치더라도 죽기살기로 매달려 볼 노력조차 않으니 배부른 소리 한다며 손가락질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쩌랴,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을. 그런데 뉴스를 보니 취업하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는 기실 한 개인의 문제는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한국에서 이십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주는 압박감. 허울뿐인 대학 졸업장과 몇 년의 공백기. 그럼에도 먹고 살아야하니 아등바등 일거리를 전전하며 살아왔다. 지금은 두 업체에서 프리랜서 형식으로 일하고 있다. 하나는 비정기적인 행사 스탭으로 달에 약 110 만원 정도를 번다. 다른 하나는 주말 물류센터 노동자로 달에 약 50만 원 정도를 번다. 합쳐봐야 160만 원 가량.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기에 악착같이 아끼며 살 수밖에 없다.
일을 할 때마다 '나는 왜 여기에 서있는거지?'하는 우울 섞인 의문이 가득하지만, 어떻게든 먹고 살아지니 더 나은 선택지를 위한 노력도 시들해졌다. 처음에는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관심있는 활동들을 하며 바쁘게 살았는데, 이제는 무기력한 마음에 모든 것을 놓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채용공고를 볼 때 '내가 할 수 있을까?'싶은 마음에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일도 늘어났다. 이런 심란한 마음에도 주변에는 티를 내지 않고 밝게 생활하니 주변 사람들은 넌 어디서든 잘할거같다는 낙관적인 칭찬을 던졌다. 안과 밖의 불편한 대치가 계속됐고 결국 상황을, 마음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는 왜 여기 있는 걸까. 먹고 살기 위한 일을 할 때마다, 내 능력이 발휘되지 않는 재미없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가 깎여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깎일 부분마저 사라져 텅 비어버린 것만 같다. 허무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집에 가도,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도, 오랜만에 가족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자꾸만 진짜 나는 이미 없어진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허무해서 삶이 재미가 없어진 건지 삶에 재미가 사라져서 허무에 사로잡힌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궁금하다, 왜 이렇게 인생이 허무할까?
글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 이 글을 쓰면서 무의식 중에 그 답을 찾은 것도 같다. 돈과 자아실현.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원인이다. 돈이 없으니 마음이 급급해지고, 돈 되는 일을 찾다보니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이 두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작금의 상황을 초래한 듯하다. 도전하기 위해선 돈이 엄청 많거나 혹은 돈은 신경쓰이지 않을 만큼 더 큰 열정이 필요하거나, 둘 중 하나의 조건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개 후자의 경우에 놓이게 되는데 그 만큼의 열정이 없는 사람에겐(어쩌면 방향성일지도) 도전에 대한 의지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필자가 이런 케이스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며 적당한 돈이나 벌다가, 진정 원하는 일이 뭔지 모른채로 어쩐지 중요한 걸 놓치는 기분으로 살아가게 된다. 결국 도전하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미움의 화살이 날아가는데 마음은 진실해서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다가 텅 비어버린 게 아닐까?
허무에 잠기고 싶진 않다. 삶에 깨지고 다치는 한이 있어도 '진짜 내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다. 공허한 기분에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내면에서 '나'라는 인간을 되찾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동기로 작용한 게 아닐까. 적어도 내가 가진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원인을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삶을 개선하고 싶다는 욕구가 분명히 있다는 거니까. 공허하다는 건 그만큼 채울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아예 텅 비워져 있다면 더 좋다. 아주 조금씩 채워갈 기회가 더 많을 수 있으니.
밑 빠진 독은 결국 주체성과 방향성이 없는 삶이다. 돈이 없어서 자아실현을 못해서 점점 허무해졌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에 순웅하며 결정하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물론 각자의 꿈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의 영향도 분명 있다만, 사회는 내 감정과 태도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것들을 책임질 수 있는건 오로지 나 뿐이다.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잃었을 때, 일단 멈춰서서 상황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지 네비게이션을 재검색한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길을 잃어 마음이 공허하다면, 일단 멈추고 한 템포 쉬어보자. 고갈된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이것저것 시도해보자. 조금이라도 만족했다면 방향을 정해 스스로 길을 만들고, 한 번 나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