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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란 Oct 29. 2022

생애 첫 주택으로 시골 아파트를 샀다

공동명의 아파트 셀프등기 하기

전월세만 전전하던 우리에게 진짜 우리 집이 생겼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세 만기가 다가오자 우리는 이 집을 덜컥 사버렸다. 공동명의로 집을 계약하고 등기 절차를 마쳐 이 집은 진짜 ‘우리 집’이 되었다. 


집을 소유하는 건 나도 어리도 처음이었다. 우리가 아파트를 사다니. 아파트에 거주하는 건 여러모로 편리했지만 그래도 아파트를 매입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꿈에 그리는 숲속의 집을 마련하기에는 아직 때가 아니므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원하는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앞으로 5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갖기로 했기에, 그동안 이사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살 집이 필요했다. 그러기에 이 집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 새로운 집을 알아보고 이사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기도 했다. 집을 샀다고 해서 기분이 날아갈 듯 좋거나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새로운 집을 구입해 그곳으로 이사했다면 집을 샀다는 느낌이 확 와닿았겠지만, 2년째 살고 있는 집의 소유권이 우리로 변경됐을 뿐 달라진 건 없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우리가 처음 전세 계약을 했던 순간부터 집을 팔고 싶어 했다. 당시 매매가 쉽지 않아 우리에게 전세 임대를 했던 것인데, 만기 10개월 전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팔겠노라고 연락이 왔다. 되도록 전세 계약을 연장해서 살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찮으니 우리가 사겠다고 말씀드렸다. 전세 만기일이 도래하자 때마침 전국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고, 이런 시기에 아파트를 구입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우리는 큰 고민 없이 이 집을 계약했다.


같은 단지에 훨씬 저렴한 집이 몇 채 매물로 나온 것을 보았지만 우리는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이 집을 샀다. 집주인이 가격을 더 내리고 싶지 않아 했고, 우리도 굳이 더 깎지 않았다. 나는 우리 집이 마음에 들었다. 이 집에 이사 와서 여유가 생겼고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이 집에서의 평온했던 2년이 그 차액 이상의 가치를 한다고 생각했다. 이사에 따르는 돈과 시간, 노동력도 아까웠다. 2년 전에 집주인이 두고 간, 거의 새것인 에어컨과 냉장고도 잘 쓰고 있었기에 크게 손해 보는 느낌이 들지 않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는 약간의 속 쓰림을 합리화했다.


계약일 저녁, 집주인 부부가 계약을 위해 우리 집으로 오셨다. 계약서를 쓰고 집주인으로부터 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건네받았다. 어리와 나는 처음 집을 소유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기를 직접 신청했다.


등기권리증에 서류 몇 장만 달랑 있는 것이 초라해보여 있어 보이려고 겉표지를 만들었다. ⓒ은서란

※ 공동명의 부동산(아파트) 매수인 셀프 등기 과정 - 매도인 1인, 매수인 2인

 <준비서류> 

* 매도인 : 매도용 인감증명서, 등기권리증, 주민등록초본(주소 변동사항 포함), 인감도장.

* 매수인 : 위임장(매도인 인감 날인), 부동산거래신고서(매도인 도장 날인) / 부동산매매계약서, 토지대장등본(대지권등록부 포함), 집합건축물대장등본(전유부 포함), 주민등록등본(주민번호 표시) 각각 2부, 가족관계증명서(상세) 각각 1부, 부동산거래계약신고필증 2부, 소유권이전등기신청서, 신분증, 도장.

Tip. 위임장은 잘못 기입할 경우를 대비해 3장 정도 넉넉히 받아둘 것을 추천.


모든 업무는 온라인이 아닌 관공서를 직접 방문해 처리했다. 먼저 군청 민원실에 들러 부동산 거래계약 신고서를 작성하고 신분증과 함께 제출해 신고필증을 받았다(직거래로 매매계약을 하는 게 아니라면 부동산 거래 신고는 부동산중개업소에서 하므로 바로 신고필증만 받으면 된다). 이후 취득세 신고서를 작성해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상세), 매매계약서, 부동산거래계약신고필증을 함께 제출해 취득세를 납부했다. 둘 다 생애최초 주택이라 별도의 감면 신청서를 작성하고 취득세를 감면받았다.


이후 등기소에 방문했다. 등기소 내에 있는 농협에서 등기신청 수수료를 납부하고, 정부 수입인지와 국민주택 채권을 구입했다. 모두 현금 납부만 가능하다. 채권은 당장 목돈이 들어가는 게 부담이 되어 조금 아깝긴 해도 15퍼센트 정도 할인율로 구입 즉시 매도했다. 우체국에 들러 등기권리증을 우편으로 받을 우표와 봉투도 구입했다. 다음으로 소유권이전등기 신청서를 작성해 위임장과 등기권리증, 매도용 인감증명서, 매도인 주민등록초본, 부동산매매계약서, 토지대장등본(대지권등록부 포함), 집합건축물대장등본(전유부 포함), 부동산거래계약신고필증, 주민등록등본(주민등록번호 표시), 각종 납부영수증을 첨부해 등기소 민원창구에 제출했다.


주의할 점은 위임장과 소유권 이전등기신청서에 ‘부동산의 표시’ 부분을 작성하는데, 아파트의 경우 적어야 할 내용도 많고 작성 칸도 작아 이 부분 작성이 쉽지 않다. 우리는 다행히 민원실 담당자가 별지에 주소를 출력해준 덕분에 신청서에 ‘별지와 같음’이라고만 적어 제출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작성하다 궁금한 것은 담당자에게 물어보며 등기 신청을 무사히 완료했다. 3일 후 등기 처리가 완료되었고, 드디어 우리에게도 공동명의의 집이 생겼다.


동네 마트에서 상추를 사면 종종 상추에 붙어 함께 오는 달팽이. ⓒ은서란


내가 계속 서울에 혼자 살고 있었더라면 과연 나는 집을 살 수 있었을까?


성인이 되기 전까지 단 한 번의 이사 경험도 없던 나는 이십 대 초반에 독립해 사십 대 중반에 접어들기까지 무주택자로 살며 옥탑방, 다가구주택의 원룸, 다세대주택의 투룸, 아파트, 오피스텔, 상가주택 등 다양한 주거 형태를 경험했다. 당시 부모에게서 독립해 혼자 사는 내 주변의 20~30대를 보면 대부분 임대주택에 살았기에 나 역시 무주택자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내 집 마련의 꿈이 없었다. 20년간 무주택자로 살면서 집 없는 설움을 크게 느끼지도 않았다. 굳이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개념도 없었고, 한 곳에서 오래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상한 집주인을 만나 황당한 일을 겪어도 그건 그 사람이 이상해서 생긴 문제지, 내가 집이 없어서 겪는 설움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애초에 내 소유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이긴 했지만, 살다 보면 어디에나 이상한 사람은 있는 법이니까. 친구는 이런 내게 “집주인이 갑이 아니라 네가 멘탈 갑”이라고 했다. 물론 계약 기간이 만료되고 부동산에 집을 구하러 다닐 때마다 내가 가진 돈이 정말 없음을 매번 느꼈다. 2년마다 보증금은 계속 올랐고, 내 돈은 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다행히 운이 좋아 매번 금액 대비 나쁘지 않은 집을 구해 나름대로 잘 살았다.


내가 만약 그때 대출을 받아서 서울에 집을 샀더라면 어땠을까. 주거 안정을 느끼며 편하게 살았을까? 그동안 낸 월세만 모아도 20년 전 서울에 원룸 아파트 정도는 살 수 있었을 텐데. 20년 전보다 집값이 많이 올랐으니 어쩌면 지금 더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나는 대출이라는 건 꿈도 꾸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로부터 “절대 남에게 빚지고 살지 말아라”, “대출은 절대 하지 말아라”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대출=빚=나쁜 거’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기는커녕 전셋집 구하는 것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다. 전셋집도 이 지역에 와서야 처음 마련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나는 언젠가 서울을 떠날 사람이므로 이곳에 내 소유의 집이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어서 이 정신없고 답답한 도시를 떠나 나에게 맞는 곳에서 나의 속도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집을 소유하면 족쇄가 될 것이라 여겼다. 젊기도 했고, 그곳 생활에 미련도 없으니 계약 기간만큼 살다가 끝나면 또다시 새로운 계약을 하면서 유목민처럼 살았다. 마흔 넘어서의 시골살이를 꿈꾸며.


그러나 시골에서의 집은 도시에서의 집과 그 의미가 달랐다. 내가 첫 번째 시골살이를 했던 두메산골에서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 귀농인 한둘뿐이었다. 허름하고 오래된 집이라도 모두 자기 집이 있었다. 시골에서 무주택자로 살면서 처음으로 주거 불안을 느꼈다. 당장 내일이라도 마을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늘 함께했다. 마을 어른들도 집 없는 나를 곧 떠날 외지인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그곳에서 난 처음으로 내 집을 소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가족이 생겨서인지 잘 모르겠다. 전에는 굳이 젊어서부터 내 집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고, 자가든 영구 임대든 어떤 형태의 집에서든지 노후에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랬던 내가 마흔이 넘은 지금은 다만 몇 년을 살더라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내 집을 가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정을 추구한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집을 산다는 건 돈으로 여유를 사는 것 같다. 마음의 여유, 평화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 그래서 어리와 나는 그동안 외면해 왔던 돈을 더 열심히 모으기로 했다. 우리의 더 큰 평화를 위해. 그리고 주위를 더 잘 돌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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