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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란 Oct 05. 2022

친구에서 딸로, 피보다 진한 법적 가족이 되다

법정 대리인이 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성인 입양'

나이가 마흔을 넘으면서 몸 이곳저곳이 아프기 시작했다. 마흔 전까지만 해도 아토피 때문에 피부과에 몇 번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병원 갈 일이 거의 없었는데, 마흔 이후엔 부쩍 병원 갈 일이 많아졌다.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갔다가 담낭염 진단을 받아 입원하기도 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정신을 잃을 만큼의 과호흡이 와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이외에도 오랜 두통과 어지럼증이 심해져 한동안 신경과 치료를 받기도 했고, 비 오는 날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머리를 벽에 부딪쳐 응급실에 갔던 적도 있다. 얼마 전에는 대상포진에 걸려 한동안 치료를 받았다.


몸이 전처럼 제어되지 않는 느낌이랄까. 늙어가면서 몸에 조금씩 이상이 생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하지만 병원 갈 일이 자꾸 생기다 보니 큰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서 수술해야 할 경우처럼 보호자가 필요한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되기 시작했다. 어릴 적 나의 보호자는 늘 엄마였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런데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는 내가 늙고 병들면 내 보호자는 누가 되어 주는 거지? 나도 이제 중년에 접어들면서 노년이 정말 머지않은 걸 실감하게 되니 노후를 꼼꼼하게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법정대리인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거동하기 불편할 때 나를 대신해 법률행위를 해야 할 수도 있고,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게 될 경우도 마찬가지다. 환자에게 의사결정 능력이 있는 경우는 환자 본인의 동의로 수술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위급한 상황이면 보호자의 동의 없이도 수술할 수 있다지만, 일반적으로 법정대리인이 없으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렇기에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는 나와 함께 살며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 어리가 그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료법 제24조에 따르면, 환자의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 의료인은 법정대리인에게 이에 대해 설명하고 서면으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말은 법정대리인의 자격이 없는 어리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순간에 수술 동의를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이 실제로 닥친다면 어떨까? 연로하신 부모님을 대신해 혹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법적 보호자가 필요한 순간에 와줄 수 있는 어리와 나의 형제들은 이곳에서 차로 3~4시간 정도 걸리는 지역에 살고 있다. 우리는 타지역에 사는 부모나 형제가 올 때까지 몇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기다려야만 한다.


이 문제로 어리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수술이 늦어져 혹시나 잘못되는 건 아닐까 마음 졸이며 서로의 법적 가족을 마냥 기다리지 않을까. 우리는 서로를 가장 잘 알고 현재 서로의 실질적 보호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남이 될 수밖에 없다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가 서글펐다. 만약을 위해 확실한 법적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농담이 현실로, 친구를 입양했다


어리와 즐거운 일, 슬픈 일을 함께하며 산 지 5년이 지나며 앞으로도 우리가 반려인으로 잘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대로 늙어 죽을 때까지 함께 살기로 한 우리는 법적으로 묶인 가족이 되기로 했다. 법적 가족이 되기로 한 건 무엇보다 위급상황에서 서로에게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누구 한 사람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먼 곳에 살며 어쩌다 한 번씩 보는 형제나 친척이 아닌 함께 사는 서로가 마지막을 정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길 마냥 기다리다가는 이대로 할머니가 될 것 같았다. 그래, 법이 다양한 형태의 가족공동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면 법을 이용하지, 뭐. 세상을 상대로 싸우기보단 기존 틀 안에서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법정대리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심신이 건강한 우리가 당장 제삼자인 서로를 후견인으로 지정하긴 어려우니 남은 건 진짜 가족이 되는 방법뿐이었다. ‘건강가정기본법’에서는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정의하고 있다. 어리와 나는 실질적으로는 가족이지만 건강가정기본법에서 정의하는 가족은 아니니 ‘안 건강한’ 가족이다. 동성 친구인 우리는 혼인할 수도 없고, 혈연관계도 아니니, 법에서 정한 가족이 되려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입양뿐이었다. 민법상 성인 입양은 양부모가 될 사람이 나이만 많으면 가능했다. 그렇게 우리는 입양을 통해 1인 가구에서 피보다 무섭다는 법으로 엮인 가족이 되기로 했다.


입양은 우리에게 단지 법적 가족이 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친구가 딸이 되는 것, 친구에게 엄마가 한 명 더 생기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물론 입양 자체를 가볍게 결정한 건 아니다. 입양을 통해 가족이 되는 순간, 친부모 자식 관계와 같은 법률 효력을 가진다는 것을 잘 알고, 충분히 고민하고 신중하게 결정했다.


우리가 처음 같이 살기 시작하고 안정적인 주거에 대한 고민하던 때, 왜 가족이 아닌 두 사람은 공공임대주택에서 함께 살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현재 1인 가구는 전용면적 40㎡ 이하 평수에서 혼자 살아야만 청약을 신청할 수 있다. 각각 청약저축에 가입한 가족 아닌 2명의 타인이 한집에 살 수는 없다. 가족의 경우 더 큰 평수의 공공임대주택에 살 수 있는 것처럼, 1인 가구 2명의 청약저축을 합쳐서라도 한집에서 살게 하면 안 되는 건가? 1인이 따로따로 사는 것보다 2명 이상이 같이 살면 사회적 돌봄 비용도 줄일 수 있는데 왜 제도는 바뀌지 않는 것일까? 시대가 변했고 이미 다양한 형태의 가족공동체가 있는데, 아직도 현실은 혼인신고를 한 부부와 자녀만 ‘정상 가족’으로 분류한다. 참으로 고루하다. 그래서 그때 난 장난스럽게 말하곤 했다. “내가 당신을 입양해서 임대아파트 들어갈까?” 그리고 그렇게 장난처럼 했던 말이 몇 년 후 현실이 되었다.


입양을 결심한 후 우리는 먼저 서로의 엄마에게 입양 계획을 말씀드렸다. 두 분 다 살면서 법적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다. 나의 엄마는 평생 혼자 살면 어쩌나 걱정했던 딸이 이렇게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사는 걸 보며 안심된다고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사는 것도, 입양하는 것도 반대하지 않으셨다. 엄마의 마음은 그저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딸이 할머니가 되어도 외롭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행복하게 살길 바랄 뿐이다.


어리의 어머니께는 동의 서명도 받아야 하고, 또 자식과의 법적 관계가 끊어지는 건 아니지만 자식에게 서류상 엄마가 한 명 더 생기는 것에 혹시나 거부감을 느끼진 않으실까 조금 걱정되긴 했다. 그래서 어리는 우리가 법적 가족이 되려는 이유를 설명하고, 입양이라는 말 대신 어르신들에게는 좀 더 익숙한 단어를 사용해 ‘양자로 들어가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과거에는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거나 재산상속 등의 이유로 양자 입적을 많이 하기도 했으니까. 어리의 어머니는 원래 자식이 뭘 해야 한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믿는 편이라 별 거부감 없이 입양신고서에 사인을 해주셨다.


성인 입양의 경우, 조건과 절차가 허무할 만큼 간단하다. 양부모가 될 사람이 성년이고, 양자가 양부모의 존속이나 연장자만 아니면 된다. 양자가 양부모보다 단 하루라도 늦게 태어나면 가능하다. 이 조건만 갖추면 A4 한 면에 인쇄된 입양신고서를 작성해 양자의 친부모 동의 서명을 받아 구청·시청·읍면 사무소에 제출하면 끝이다. 만약 양자가 될 사람이 결혼한 상태라면 배우자의 동의도 필요하다.



우리는 D-DAY를 5월 25일로 정했다. 우리와 상관없는 기념일만 가득했던 가정의 달에 우리만의 기념일을 만들기로 했다. 5월의 평일 가운데 다른 가족 기념일을 제외하고 기억하기 쉬운 날로 골랐다. 여러 달을 손꼽아 기다린 끝에 2022년 5월 25일 오전 9시, 우리의 인적 사항과 어리 어머니의 동의 서명이 적힌 입양신고서를 들고 읍사무소에 갔다. 서류 한 장 달랑 들고 읍사무소까지 가는 그 길에 우리는 손을 꼭 잡았다. 이제 법적으로 서로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생기는 거니까 다시 잘 생각해보라며, 후회되면 파양해버리겠다며 서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마음이 이상했다.


읍사무소에 입양신고서를 제출하고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기까지 2~3일 소요된다고 했지만, 다음날 바로 처리가 되었다. (대한민국 행정 처리 속도는 정말 최고다!) 이제 가족관계증명서에도 주민등록등본에도 우리의 관계는 ‘모’와 ‘자녀’로 나온다. 드디어 우리는 동거인에서 법적 가족이 되었다. 친구를 입양하면서 나는 나보다 50개월 나이 어린 딸이, 어리에게는 50개월 나이 많은 양엄마가 생겼다. 결혼도 안 했는데 딸이 생기다니……. 뭔가 신기하면서도 웃기지만 책임감과 함께 기분 좋은 부담감이 생겼다. 어리 역시도 법적 가족으로 묶이니 좀 더 잘살아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제주 시절에 만나 절친이 된 백은 내가 어리와 살면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 편안해 보여 부럽다고 했다. 그래서 나보다 생일이 빠른 그 친구에게 나를 입양하라고 했다. 그럼, 딸도 생기고 더불어 손녀까지 생기게 된다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자고. 현재 법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이라도 입양을 통해 얼마든지 여러 명의 가족을 만들 수 있다. A가 B, C, D를 입양해 엄마(혹은 아빠)와 여러 명의 자녀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아니면 A가 B를 입양하고, B가 C를 입양하고, C가 D를 입양해 딸(혹은 아들), 엄마(혹은 아빠), 할머니(혹은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까지도 만들 수 있다. 결혼과 혈연 중심의 가족 생태계를 교란시켜 버리는 것이다.


나는 예민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어리와 함께 산 지 벌써 6년째다. 그사이 나는 30대를 지나 40대가 되었다. 지금 사는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늘 불안을 달고 살던 내가 지금 이렇게 평온하게 잘 사는 건 이 친구 덕분이다.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고, 우리처럼 사는 가족도 있다. 가족이 뭐 별건가.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서로 외롭지 않게 행복하게 오손도손 살면 그게 가족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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