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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란 Oct 06. 2022

혼인신고보다 간단한 성인 입양

“입양 업무 오래 했지만 친구 입양은 처음 봐요”

법적 가족을 만드는 일은 의외로 너무 간단하다. 그 가족을 해체하는 것도 서류 한 장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 어리를 입양하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입양 사실을 알렸다. 대부분의 반응은 “그게 가능해?”였다. 결혼한 부부가 아닌 싱글 상태에서 어린이도 아니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닌 고작 다섯 살 차이 나는 또래 친구를 입양했다는 것에 다들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통 사람들은 성인 입양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하루라도 먼저 태어나면 입양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게 당연하다. 친구들도 그 부분을 신기해했을 뿐이지 우리가 입양을 통해 법적 가족이 된 것에 관해서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가까운 친구들은 우리가 이미 오랫동안 같이 사는 걸 지켜봤고 이미 가족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엄마는 나의 딸 입양 소식을 듣고는, 엄마에게도 손녀딸이 생겼다며 진짜 가족이 된 걸 축하한다고 전했다.



<국내 성인 입양 알아보기>


국내 입양은 △입양특례법에 의한 입양 △민법에 의한 친양자 입양 △민법에 의한 일반 양자 입양 등 이렇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입양특례법에 따른 입양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입양기관을 거쳐 입양되는 경우로 친양자 입양과 같다. 친양자 입양은 친생부모와의 관계는 종료되어 양부모의 성과 본을 따르고 친자녀와 같은 지위를 갖는다.


일반 양자 입양의 경우 친생부모의 성과 본을 그대로 유지하며 친생부모의 친자녀로서의 지위와 양부모의 양자로서의 지위를 모두 갖는다. 친부모와의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양부모가 추가로 더 생기는 것이다. 어떤 입양이든 미성년 자녀를 입양할 경우에는 가정법원이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양육환경인지 엄격하게 심사하는 만큼 당연히 입양의 요건이나 절차가 까다롭다.


반면 성인 입양의 경우 일반 양자 입양만 가능한데, 조건도 절차도 간단하다. 양자가 될 사람이 성인인 만큼 의사 결정권을 존중해 당사자 간 합의와 양자 친부모의 동의만 있으면 된다. 양부모의 혼인 여부도 상관없으며 양자가 양부모의 존속(부모, 또는 같은 항렬에 속하는 친족)이나 연장자만 아니면(하루라도 늦게 태어나면) 된다. 


이 조건만 갖추면 입양신고서를 작성해 양자의 친부모 동의 서명을 받아 구청·시청·읍면 사무소에 제출하면 끝이다. 만약 양자가 될 사람이 결혼한 상태라면 배우자의 동의도 필요하다. 입양신고서를 제출하고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기까지 2~3일이 소요된다.


양부모와 양자가 합의만 하면 성인을 입양하는 것이 간단한 것처럼 파양도 간단하다. 파양 신고서를 작성해 구청·시청·읍면 사무소에 제출하면 된다.


<법제처 '찾기 쉬운 생활법령정보' 홈페이지 참고>




우리의 입양신고서를 접수 받은 읍사무소 가족관계등록 업무 담당자는 입양하면 상속의 권리와 부양의 의무도 친자와 똑같이 부여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같은 성인 입양 사례는 처음 본다고 했다.


“가족관계등록 업무를 오래 했는데 이렇게 나이 차이 얼마 안 나는 성인 입양 사례는 처음이에요. 성인 입양을 신청하는 사례가 아주 간혹 있기는 한데, 모두 재혼가정에서 배우자의 자녀를 입양하는 경우였어요. 완벽한 타인을 입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성인 입양도 흔치 않거니와 이렇게 나이 차 거의 없는 또래 친구를 입양하는 사례는 처음이라는 말이 아쉬우면서도 왠지 뿌듯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우리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가 아닐까. 가족관계등록부에 어리와 내가 함께 기재된 걸 보니 진짜 가족으로 인정받은 느낌이다. 법적 보호자가 생겼으니 아파도 걱정 없다. 어리에게 당부했다.


“우리가 자연사한다면 아마도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 확률이 높을 테니 뒤처리를 잘 부탁해. 그리고 내 유산은 이제 다 네 몫이야. 하하.”


서류 처리가 완료되고 지역건강보험 가입자였던 어리를 내 직장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매월 납부하던 어리의 건강보험료를 더 이상 납부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동차보험도 운전자 범위를 ‘운전자와 지정 1인’에서 ‘운전자와 부모’로 바꾸니 보험료가 조금 절약됐다. 하지만 그 어떤 혜택보다도 가장 좋은 건 마음이 든든하다는 것. 법적 가족이 된 게 실감이 났다.


우리의 관계는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소개된다. 보통은 같이 사는 친구라고 소개하는데 등기우편물을 받을 땐 동생이라고 하기도 한다. 성이 다르니 가끔은 진짜 동생이 맞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아니, 재혼가정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아직은 주변에 입양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굳이 입양했다고 남들에게 말할 필요도 없고 설명하기도 귀찮으니 다른 사람에게 어리를 딸이라고 소개할 날이 올진 모르겠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다는데 나는 과연 어리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을까? 아직은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시간이 더 지나 가족으로 함께 산 세월이 더 쌓이면 어리를 나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자식은 낳은 정보단 기른 정’이라는 말도 있으니, 잘 키우다 보면(?) 언젠가 나도 엄마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도. 부디 무탈하게만 잘 늙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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